18/09/2025
[수잔이 말한다] 네팔의 Gen-Z는 왜 분노했나?
선한 눈을 가진 이들이 살아가는 네팔이 혁명적 분위기에 휩싸였습니다. 소위 'Gen-Z'라고 불리는 젊은 세대들이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들은 왜 이렇게 분노하고 있는 것일까요? 《지극히 사적인 네팔》의 저자인 수잔 샤키야 작가가 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길지만 일독을 권합니다.
***
네팔은 오랜 독재 왕국 체제를 종식시키고 2008년에 공화국이 됐다. 그 과정에서 국민들이 수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SNS가 존재하지 않아서 외부 세계가 그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공화국으로 전환된 이후 정치인들은 새로운 네팔을 약속했지만, 헌법 제정에만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현재는 하원 의원을 국민이 직접 선거를 통해 선출할 수 있으나, 총리는 국회에서 선출되는 구조다. 이러한 정치 체제 속에서 한 정치인이 무려 다섯 차례나 총리직을 맡은 사례도 있었다. 결국 이와 같은 정치 운영 방식은 국가의 상황을 불안정하게 만들었고, 권력을 잡은 이들만이 번갈아 가며 그 권력을 사적으로 남용하는 결과를 낳았다. 부패한 왕정을 종식시키고 공정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한 이들이 그대로 권력과 부를 독차지했다.
2025년 네팔의 이른바 ‘Gen-Z’는 단순한 반정부 시위라기보다는 오랫동안 누적된 부정부패에 대한 국민적 분노의 표출이다. 시위의 대상이 된 정부뿐만이 아니라 오랜 세월 공직 사회와 정치권 전반에 이어져 온 부정과 기득권 구조는 네팔 국민의 인내심을 시험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잘못된 스위치를 눌렀고, 네팔 사회 전반에 억눌려 있던 좌절과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하면서 거대한 사회적 움직임으로 발전했다.
🇳🇵왜 Gen-Z인가?
‘Gen-Z’ 혁명으로 불리는 이번 시위는 10대에서 20대 사이의, 이른바 Z세대 위주로 일어났다. 이들이 시위의 주역이 된 것은 단순히 젊기 때문만은 아니다. ‘Gen-Z’는 현재 네팔의 중심이 되는 세대다. 네팔의 중위 연령(Median Age)은 25세다. 네팔은 전 인구의 반이 25세 이하라는 의미다. 15세에서 29세 사이의 인구는 약 900만 명이다. 네팔 인구가 3,000만 명인데, 약 3분의 1이 Z세대에 속하는 것이다. 네팔에서 ‘Gen-Z’는 어린 친구들이 아니라 네팔의 사회와 경제를 이끌고 있는 세대인 것이다. 이는 한국의 1980년대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1980년 한국의 중위 연령은 20세, 1990년 중위 연령은 25세다.
그런데 Z세대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3저 호황 속에 고도 성장을 이룬 한국과 달리 네팔의 청년 실업률은 20퍼센트가 넘는다. 실업률이 높으니 취업을 하기 위해 해외로 나가는 경우도 많다. 2020년대 들어 네팔은 매년 인구의 1.5퍼센트인 30~40만 명가량의 인구가 해외로 순유출되고 있다. 네팔의 해외 거주 인구는 약 300~50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전 인구의 10퍼센트 이상이 일하거나 공부를 하기 위해 해외에 나가 있는 것이다.
🇳🇵혁명의 트리거가 된 SNS 차단 조치
네팔은 경제 문제만이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불안 요인을 안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당연히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불만들이 SNS를 통해 표출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최근에는 정치 엘리트 계층의 일상, 특히 그들의 자녀들이 부를 과시하는 생활이 SNS를 통해 공개되면서 젊은 세대의 불만은 더욱 거세졌다. 네팔의 젊은이들은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정치 기득권 자녀들의 영상을 비판적 메시지와 함께 공유하며 ‘네포 키즈(nepo kids)’ 해시태그 운동을 전개했다. 네포 키즈는 ‘nepotism kids’를 줄인 말로, 한국어로 하자면 금수저, 특권층 자녀 등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본 해외의 네팔 청년들은 “나는 해외에서 공부하면서 하루에 10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이들은 내가 보낸 돈을 세금으로 뜯어먹으면서 호화롭게 지낸다”며 분노했다. 해외 노동자가 보낸 송금은 네팔 GDP의 약 4분의 1을 차지한다.
‘네포 키즈’ 운동이 빠르게 확산되자 네팔 정부는 즉각적으로 TIKTOK과 VIBER를 제외한 26개 SNS 플랫폼 접속을 차단했다. 정부는 해외 SNS 기업들에게 1주일 안에 네팔 내에서 등록을 완료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해외 기업들이 네팔에서 정식으로 장사를 하라는 조치 자체는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시기가 문제였다. 이 조치는 사실상 네팔 기득권에 대한 비판을 막기 위해 네팔의 경제와 사회를 뒤흔든 일이었다.
네팔은 아직 온라인 쇼핑이나 디지털 서비스가 한국이나 다른 IT 강국들처럼 활성화되어 있지는 않다. 그래서 네팔인들은 SNS 플랫폼을 통해 거래나 구매를 하는 경우가 많다. 전체 전자상거래의 50퍼센트가 SNS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분석도 있다.
침체된 경제 상황에서 SNS 차단 조치는 언론만이 아니라 일상까지 무너뜨릴 수 있는 일이었다. 여기에 정부의 차단 조치는 최악의 타이밍이었다. 네팔은 보통 10월에 더샤인(Dashain) 축제가 열린다. 한국으로 치면 추석 그 이상의 명절이다. 가족 간의 유대가 깊은 네팔인들은 언제나 가족들과 연락하면서 지낸다. 그런데 이번 조치로 인해 가족과의 연락이 어려워졌다. SNS는 싸고 편하게 해외에 거주하는 가족과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이었는데 소통이 끊겨 버린 것이다. 네팔의 해외 거주 인구는 전체 인구의 10퍼센트 이상이다. 거의 집집마다 해외에 나가 있는 가족이 하나쯤은 있는 셈인데 연락이 끊긴다고 생각해 보라.
청년층은 정부의 SNS 차단 조치에 대해 반대하는 평화 시위를 예고했고, 실행에 옮겼다. 그러나 정부는 그들에게 총을 쏘고 말았다. 19명이 숨졌다. 시위는 혁명이 됐다. 정보 기관부터 정치인이 분노의 타깃이 됐다.
🇳🇵이념이 아니라 개혁이 필요하다
한국의 일부 언론에서는 이번 혁명이 기존의 친중 정권 붕괴 혹은 반공 시위인지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이번 시위는 그런 것과는 관계가 없다. 네팔에는 여러 종류의 공산당이 많고 그중 일부는 오랫동안 정권을 잡아왔기 때문에 그런 오해가 생기는 것 같다.
네팔에서 공산당의 인기가 높은 이유는 사회경제적 요구, 민주화 과정의 정치적 경험, 그리고 외교적 자율성을 추구하는 역사적 맥락이 함께 작용한 결과다. 네팔은 오랫동안 불평등한 토지 구조와 빈곤 문제를 안고 있었고, 공산당은 토지 개혁, 사회적 평등, 교육·보건 확대를 강하게 주장하며 농촌과 서민층의 지지를 얻어왔다. 또한 1990년대 이후 민주화 과정에서 정치적 혼란이 반복되면서, 반군 투쟁을 거쳐 제도 정치에 진입한 마오이스트 세력은 ‘민중을 대변하는 강한 대안 세력’이라는 이미지를 확립했다. 대외적으로는 마오이스트 혁명 이전까지만 해도 주요 정당들이 인도와 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나, 혁명 이후 새로운 이념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균형과 자주성이 강조되었고, 그 결과 중국과의 협력이 현실적 대안으로 부상했다.
특히 인도의 무역 봉쇄나 내정 간섭으로 비쳐질 수 있는 외교적 압박은 국민들의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네팔은 역사적으로 인도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좋게 말하면 의존도가 높고 나쁘게 말하면 종속된 것과 마찬가지다. 북쪽에는 히말라야가 펼쳐 있고 나머지 국토는 모두 인도에 둘러싸인 네팔로서는 인도를 통하지 않으면 경제적으로 고립되어 버린다. 그리고 인도는 그런 점을 활용하여 네팔을 길들여 왔다. 네팔로서는 인도에 좋은 감정만을 가지기 어렵다.
공산당은 이를 민족주의적 정서와 결합시켜 지지를 확장했다. 여기에 중국의 인프라 투자, 일대일로 참여, 교통망 구축 같은 실질적 제안은 네팔의 발전 기대와 맞물려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요컨대 네팔 공산당의 인기는 사회경제적 개혁에 대한 대중의 열망, 정치적 대안으로서의 위상, 그리고 마오이스트 혁명 이후 나타난 대외 전략의 전환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는 이런 열망을 받아 정치인이 된 세력들이 똑같이 부패했고, 혁명의 대상이 됐다. 무능과 부패에 대한 저항에는 이념이 낄 자리가 없다. 네팔 사람들은 공산당이나 친중이라서가 아니라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와 그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네팔인들이 공산주의 사상을 원하고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내세웠던 토지 개혁과 민주공화정 수립을 지지했던 것이다.
🇳🇵공정하고 법 앞에 평등한 민주공화국을 원한다
9월 14일까지 사망자는 72명이다. 전 대법원장이었던 수실라 카르키(Sushila Karki)가 임시 총리로 취임하여 사태를 수습하고 있다. 네팔 사람들은 최초의 여성 대법원장이자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된 그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권력과 부패에 굴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아직 성과가 나온 것은 없지만 2025년 혁명은 기존의 권력에 타격을 주고 흔들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그리고 Z세대의 영향력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희망을 엿볼 수 있다. 1980년대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네팔의 Z세대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해외에 산 지 15년 된 네팔인으로서, 2025년 혁명은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니라 청년들이 부패와 족벌주의, 자유 억압에 맞서 책임 있는 정치를 요구한 중요한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소셜미디어 차단에 맞선 시위와 희생 끝에 과도 정부가 출범한 것은 우리가 투명성, 권력의 책임, 자유 회복을 바란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네팔 사람들은 공정한 기회와 일자리, 서비스 개선, 법 앞의 평등을 원하고 있으며, 해외에 사는 우리에게 가장 큰 바람은 재외투표 보장에 있다. 이미 2018년 대법원이 이를 명령했지만 아직 제도화되지 못한 현실은 바뀌어야 한다.
해외 송금이 경제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재외투표와 함께 영사 서비스, 노동자 권익, 투명한 송금·투자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또한 우리는 네팔 정치에 새로운 얼굴과 세대가 등장해 낡은 정치 문화를 바꾸고 국민에게 더 가까운 정치를 실현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번 혁명이 부패 억제와 청년 일자리 확대, 자유 보장, 그리고 해외 네팔인의 권리 확대를 이끄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2025년 네팔 혁명은 단순한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시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네팔 국민의 간절한 움직임이다. 네팔은 매우 아름다운 나라지만, 어느 나라든 완벽할 수는 없듯이 여러 도전과 과제를 안고 있다. 《지극히 사적인 네팔》에서도 밝혔지만 네팔은 이제 막 민주주의를 시작하는 나라다. 부족한 점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한국인 여러분들이 네팔 국민들의 마음을 공감해 주시고, 그들의 노력과 열망을 존중해 주시면 좋겠다. 이러한 따뜻한 이해와 연대가 네팔인들에게 큰 힘이 되고, 두 나라의 우정을 더욱 깊게 만드는 길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