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7/2026
#수학과예술의만남 #그림을통해나를만나다
《그림을 보다 나를 보다》를 출간한 홍채영 작가 인터뷰
Q. 《그림을 보다 나를 보다》는 2018년 《수학과 그림 사이》를 펴낸 후 오랜만에 선보이는 책입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근황이 궁금합니다.
A.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수학과 그림 사이》 출간 이후에는 한동안 도서관과 학교에서 대중 강연을 꽤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미술관에서도 일하게 되면서 전시 기획 등 여러 일을 병행하다 보니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고, 뒤돌아보니 어느새 세월이 훌쩍 지나 있네요. 시간의 흐름만큼은 늘 생각보다 빠른 것 같습니다.
Q. 수학을 전공하고 나중에 미술 공부를 뒤이어 하셨는데요. 이번 책에도 이 두 영역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번 책을 쓰시게 된 계기를 들려주신다면요.
A. 《수학과 그림 사이》 출간 이후에 이번에는 학생들에게 좀 더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수학을 잘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공부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수학자들과 뛰어난 학습자들의 공부법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 사례를 살펴볼수록 특별한 비법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 분명한 목표를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제 삶도 한 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수학과 그림을 좋아했고, 책 읽기를 즐기며 언젠가 글을 쓰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관심과 호기심은 미술사 전공으로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작가가 되고자 하는 구체적인 목표를 갖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 또한 좋아하는 것에 대한 지속적인 호기심이 현재의 방향을 만들어 준 것 같습니다.
이번 책은 바로 그런 고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방법은 결국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꿈꾸는지를 찾는 과정과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저는 그 점이 왜 중요한지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제가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탐구해 온 수학과 미술이라는 두 영역을 통해 풀어내고자 했습니다.
Q. 이 책은 ‘꿈’에 대해 생각해보는 여정을 담았습니다. 꿈이라는 단어는 참 흔하게 말하고 쓰여서 그 희소가치를 잃어버린 듯한데요. 다시 이 단어를 소환한 까닭이 있을까요?
A. 맞습니다. 어릴 때부터 ‘꿈’이라는 단어는 너무 자주 듣고 사용되다 보니 그 의미가 가볍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꿈’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것보다는 막연한 바람으로만 남겨 두는 경우가 많고, 구체적으로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까지 이어지지 못한 채 멈추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10년 후의 자신이 실제로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게 될지를 상상하고 구체화하는 과정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저 역시 이러한 과정을 충분히 거치지 못해, 늦게서야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꿈은 거창한 성공이나 특별한 직업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할 때 가장 몰입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일에 가깝습니다. 저는 그런 질문이야말로 공부의 출발점이자 삶의 방향을 만들어 주는 중요한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소 진부하게 들릴 수 있는 단어이지만, 이번 책에서는 다시 ‘꿈’이라는 단어를 꺼내 이야기해 보고 싶었습니다
Q. 이 책에 등장하는 ‘그림을 본다는 것’의 의미는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세계와 자기 자신을 동시에 응시하는 행위로 느껴졌습니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그림을 본다’는 것은 무엇이며, 이 책을 통해 독자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보는 경험’을 하길 바라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A. ‘그림을 본다’는 것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지만, 저에게는 이미지 속에 담긴 시선과 시간, 그리고 작가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함께 따라가 보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느낌을 받는다는 것은 타인의 시선을 통해 결국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루하다, 재미있다, 마음이 뭉클해진다와 같은 감정이나, 혹은 ‘이건 뭐지?’라는 의문과 호기심이 드는 순간들 역시 결국에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반응하는 사람인지를 알게 해 줍니다.
그런 점에서 그림 감상은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으로 이어집니다. 어떤 그림 앞에서 오래 머물게 되는 이유는 단순히 아름답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 자신의 기억이나 감정이 겹쳐지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림은 외부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내면을 비추는 거울처럼 작동하기도 합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경험하길 바랐던 것도 바로 그 지점입니다. 그림을 이해해야 할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예술가가 보여주는 시선 속에서 자신의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느끼고 표현해 보는 과정을 통해,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을 발견하는 경험을 해보는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Q. 《그림을 보다 나를 보다》에는 여러 화가들과 그들의 작품이 등장하고, 각 부 끝에는 유명한 수학자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실려 있습니다. 이들의 인생에서 어떤 공통점이나 다른 점들을 엿보셨는지 궁금합니다.
A. 화가와 수학자들은 겉으로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활동했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해서 그 길을 끝까지 붙잡고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포기하지 않으며 꾸준히 나아갔다는 점에서 깊은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불확실성을 견디는 힘입니다. 화가는 완성되지 않은 이미지 속에서, 수학자는 아직 증명되지 않은 생각 속에서 오랫동안 머물러야 합니다. 즉, 명확한 답이 없는 상태를 견디면서도 지속적인 몰입과 집요함으로 작업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서로 닮아있는 것 같습니다.
반면 화가의 경우에는 자신이 실패했다고 느끼는 작품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객관적으로 ‘실패작’으로 남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드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의미로 읽히거나 새롭게 평가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학에서는 결과가 증명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분명하게 구분되기 때문에, 수학자는 끊임없는 시행착오와 실패의 과정을 통과해야 합니다. 어떤 시도는 명확하게 틀렸다고 판명되기도 하고,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정답에 가까이 다가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실패가 더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매 단원 끝에 유명한 수학자들의 삶을 다룬 책들을 함께 소개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은 위대한 수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그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의 시간은 수많은 실패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사실 우리 모두가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보편적인 경험이기도 합니다. ‘꿈’을 찾는 과정이나 그것을 이루어 가는 과정 역시 이런 시간들의 연속일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시간을 단순한 좌절로만 받아들이기보다, 실패의 시간을 견디며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내고 그것을 삶으로 이어가기까지 지속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수학자들의 삶 속에서 얻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Q. 요즘 청소년들은 성적과 입시 중심의 진로 압박 속에서,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것과 ‘직업으로서의 가능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작가님이 자신이 좋아하는 수학과 미술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마주한 현실적인 고민들(경제적 문제, 주변의 시선, 실패 경험 등)을 어떻게 잘 헤쳐나가셨는지 들려주세요.
A. 저 역시 처음부터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이 일을 선택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서른이 넘어 늦게 공부를 시작했기 때문에 주변의 걱정도 많았습니다. 그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돈 되는 일을 두고 왜 돈이 안 되는 일을 선택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돈이 되는 일로 만들어 보겠다고 말은 했지만,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저는 수학을 가르칠 수 있었기 때문에 경제적인 부분은 어느 정도 해결하면서 버텨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부해야 할 양이 너무 많아 늘 시간에 쫓기는 삶이었습니다. 미술사 특성상 읽어야 할 책도 많았고, 가야 할 곳도 많아 거의 쉬는 시간이 없었던 기억입니다. 그러면서 기대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는 시기도 있었고, 스스로 방향을 의심하게 되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제 자신에게 끊임없이 물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다 나중에 설령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라고요. 그러면 저는 “지금 하는 공부와 좋아하는 것들을 충분히 경험한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라고 스스로에게 답을 할 수 있어 버텨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박사과정을 마친 뒤에는 저 역시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무엇보다 주변의 불편한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한 동기가 되었고, 그 마음이 글을 더욱 몰입해서 써 내려가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으니, 저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친구들에게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면 해보라고. 그리고 정말 열심히 해서 능력을 갖추게 되면, 적어도 그 일이 너를 굶기지는 않을 거라고.” 말해 줍니다.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Q. 수학과 미술을 접점으로 책을 펴내고 전시를 진행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다음에는 이 두 영역에서 어떤 실험을 해보고 싶으신지요!
A. 비슷한 연장선상에서 일을 해 갈 것 같은데 앞으로는 전시 기획에 좀 더 비중을 두고 활동해 나갈 계획입니다. 2024년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우주의 언어, 수》 전시를 기획·진행하면서 여러 사정으로 충분히 구현하지 못한 부분들이 있어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다음 작업으로 일단 ‘수학이 예술이 되는 순간’이라는 책을 구상하고 있는데 가능하다면 이 내용을 바탕으로 다양한 전시로 확장해 보고 싶다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수학’이라는 개념을 시각적으로 경험하고 체험하게 함으로써, 보다 즐거운 놀이로서 수학을 인식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Q. 끝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전할 메시지가 있다면 이야기해주세요.
A. 이 책을 읽어주실 독자분들께 가장 먼저 전하고 싶은 말은, 공부나 꿈이라는 것이 어떤 정해진 답을 향해 곧장 나아가는 과정만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때로는 돌아가기도 하고, 멈춰 서 있기도 하고, 잘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시간을 지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 역시 결국은 각자의 길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수학과 미술이라는 두 영역을 함께 이야기하면서, 결국 중요한 것은 방법이나 기술 이전에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순간에 살아 있다고 느끼는지를 알아가는 일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공부이든 일이든 삶이든, 오래 지속하게 만드는 힘은 그 안에서 나오는 즐거움과 호기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당장은 불안하거나 확신이 없어 보이는 선택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서 계속 생각하고 시도해 보는 과정 자체가 결국 자신을 만들어 간다고 믿습니다. 그러니 이 책이 누군가에게는 자신을 조금 더 오래 들여다보게 하는 시간이 되고, 또 다른 시작을 할 수 있는 작은 용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