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5/2025
안희연 시인의 『줍는 순간』 채널예스 인터뷰 기사가 발행되었습니다. ✨️
2005년부터 2025년까지. 20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친 여행의 순간들을 일컫는 말이 『줍는 순간』이라니, 이것 참 안희연 시인답다고 생각했습니다. 비행기 티켓이 두 개, 때로는 세 개까지 품에 있었다는 시인은 여행을 하며 만난 귀한 순간마다 “너무나 줍고 싶은” 열망으로 꼼꼼히 메모하고, 부지런히 사진을 남겼습니다. 카메라 세 대를 목에 걸고 다녔죠. 그렇게 나를 찌르는 순간을 잔뜩 주워서 돌아오고, 다시 그 순간을 찾아 떠나는 것이 시인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니 『줍는 순간』을 읽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여행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정의해보게 될 테지요. 무엇보다 안희연 시인은 이 책이 “내 여행을 기록하고 싶어지는 책이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저마다의 마음의 지도, 내 여행의 지도를 만드는 시간이기를 하고요.
“삶에 대한 ‘가려움’”(26쪽)이라는 문장부터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가려움, 간지러움, 지겨움 혹은 무표정이 저에게는 다 비슷한 단어 같아요. 출렁임이 살아 있음과 동의어라는 생각이 있고요. 지금 너무 간지러운 상태야, 어딘가 긁고 싶어, 새로운 환경에서 생생하게 다시 살아나 삶에 대한 간지러움을 해소하고 싶어, 이런 생각을 평소에 되게 많이 하는 편이에요. 어딘가 간지럽지만 긁을 수 없는 구석이 분명히 있는데 그것을 시원하게 감정적으로 해소하고 새로운 장면을 보면서 실감하고 싶은 마음이 큰 거죠. 말하자면 죽어 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시인님의 흥미로운 여행 방식이 재미있었어요. 현지에서 영화 보기 같은 것 말이죠. 언어나 영화의 배경을 전혀 모르더라도 그 자체가 여행이더라고요. 그밖에 여행에서 꼭 하는 것이 있으세요?
나에게 엽서 보내기와 현지의 영화 보기는 꾸준히 하고 있어요. 저는 여행이 끝나는 게 늘 아쉬웠어요. 여행지에서 생생하게 했던 경험이 금방 휘발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기도 했고요. 그래서 여행에서 돌아와 일상에 휩쓸려 모든 걸 잊을 때쯤 내가 나를 위해 보낸 엽서가 도착한다는 것이 정말 낭만적이고 좋았어요. 엽서를 보낼 때 내가 경험했던 장소가 현재와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이 되는 순간이거든요. 그래서 여행에서 돌아오면 항상 우체통을 기다리게 됐죠.
“고독의 행성에서 우리가 할 일은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108쪽)라고 했어요. 그리고 시인님은 내가 나이기 위해서 떠나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더라고요.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은 사실 아주 어려운 일이고, 어쩌면 환상에 가까운 일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다만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 역시 내가 나에 이르는 여행 같거든요. 실제로 여행을 하다 보면 좋은 순간은 드물어요. 너무 힘들고 버겁고 짜증나는 순간이 훨씬 많잖아요. 내가 되어 가는 과정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만족하고 나를 좋아하게 되는 순간은 별로 없어요. 늘 후회하고 반성하게 되죠. 그걸 내면화 하는 시간은 더 많고요. 그 사이에서 진자 운동 하면서 자신을 완성해 가는 것이 사는 과정 같아요. 그런 여행의 과정을 통해 삶에서 죽음까지의 시간을 종합해 나가는 것이 여행의 최종 목적이라는 생각을 해요.
일본의 ‘반환원’을 방문하면서 그곳이 “내가 꿈꾸는 시의 모든 것을 갖춘 공간”(283쪽)이라고도 하셨는데요. 어떤 의미인가요?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궤도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제 열차를 타고 제 생명을 다 하면서 어느 종착지로 가는데 그것은 다른 누군가도 마찬가지예요. 다른 열차를 타고 다른 삶의 방향과 속도와 온도로 자기 궤도를 가는 거죠. 그런데 타고 있는 열차의 바깥 풍경이 같은 거예요. 저는 그것이 우리가 마주하는 시라고 생각해요. 결국 책을 쓰고, 시를 쓰고, 여행을 하는 이유가 그것이죠. 제가 목격한 풍경을 기록해서 언젠가 누군가가 이 장면을 보고 자기 장소를 상상하거나 우리가 다른 사람이지만 같은 풍경을 잠깐 보았구나, 하면서 어떠한 포개짐의 순간을 만났으면 하거든요. 그럴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아서 그 장면을 계속 상상하면서 글을 쓰게 돼요.
인터뷰 전문은 프로필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어요.🥳
글: 신연선 / 사진: 표기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