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9/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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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난다의 시의적절, 그 열번째 이야기!
시인 김연덕이 매일매일 그러모은
10월의, 10월에 의한, 10월을 위한
단 한 권의 읽을거리
왠지 저는 너무 사랑하는 존재에게는 존대를 하고 싶어져요
최대한 말끝을 흐리며 긴 문장을 말하고 싶어집니다
2018년 대산대학문학상을 통해 등단한 김연덕 시인의 『아오리 아니고 아오모리』가 난다 시의적절 시리즈 10월 책으로 출간되었다. 10월은 애매하고 가볍고 아름다운 달. 3분기가 끝나고 한 해가 지나간다는 느낌을 주는 때이자 무엇이 시작되기 직전의 달. 한 해의 중간이라기엔 너무 많이 가버렸고, 끝이라기에는 아직 한 해의 이미지를 결정지을 수 있는 불확실한 달이 두 개나 남아 있는 때. 전반부를 마무리하고 후반부를 준비하는 어쩌면 새로운 시작, 하나의 꿈을 꾸고 다음 꿈을 위해 신체를 텅 비워야 하는 시간이 10월 아닐까 시인은 묻는다. 연덕 시인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10월과 별다른 연이 없었기에 제각각의 얼굴과 마음으로 돌출된 원고들을 묶기 위한 이미지가 하나 필요했다고 고백한다. 또렷하면서도 평범하고 부드러운 이미지. 손안에 들어와 쓰다듬거나 포장하거나 여러 조각으로 잘라버릴 수도 있지만 안쪽부터 구조를 살펴보면 자신보다 큰 몸집과 시간이 들어차 있는 이미지, 10월에 한창일 사과를. 시인에게 사과는 거실에 함께 앉아 먹다보면 방금 먹었다는 것을 잊어버릴 만큼 흔한 과일이지만 사과 한 알은 심장이고 세계 전체이기도 하다. 그렇게 시인은 혼슈 최북단에 위치한 현, 사과 산지로 유명한 아오모리로 떠난다. 흰색처럼 나른한 태도의 노인들, 삼림박물관의 창백한 빛과 항구 공원에서 바라보았던 끝없는 수평선, 모든 가게마다 붙어 있던 네부타 축제 포스터와 그 안에 담겨 있던 축제의 외롭고 화려한 불빛 등…… 복잡한 생물의 뼈처럼 오래된 사랑과 오래된 이야기가 많아 자신을 겸손하게 만드는 도시, 한자로 쓰면 푸른 숲이라는 뜻을 지닌 아오모리로.
시인은 공항에 착륙하기 전 십 분간 비행기 창문을 가득 메운, 가도가도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숲을 내다본다. 나무들이 내는 소리가 조용한지 시끄러운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한 사람이 감각하기에는 너무나 커다란 광경이었던, 여러 이야기와 감정이 느껴지는 색을 본다. 들어본 적 없고 나와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나무들이 표현하는 감정들이 시인의 몸을 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끼며. 어쩌면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내 내밀한 부분들의 아주 옛날 부분이 아오모리에 산 적이 있는 건 아닐까. 나무들이 빼곡하고 조금만 걸어도 수평선이 보이는 골목이 있는 도시. 지금껏 여행했던 모든 도시 중 노인들이 가장 많이 돌아다니던 도시. 고요함이 도시를 감싸고 있지만 그것이 걷는 이의 걸음을 압도하지 않고 그저 가지각색으로 몸을 뻗는 나뭇잎과 푸른 잔영과 햇빛의 형태로 존재하는. 의도도 제안도 없는 자연 속에서 몸의 감각과 하늘의 감각에 집중하며 자유로워지는 곳.
모든 것을 구구절절 말하지는 않지만 하나로 뭉쳐져 있던 풍경에 상처를 내 풍경의 안쪽을, 그 안의 사람을 보게 하는 시. 그렇게 연덕 시인은 다른 온도의 색으로 이뤄진 자신의 각진 내면이 아오모리에서 하나의 빛 그림자로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본다. 일상과 불화하거나 현실의 면면들에서 서걱거리는 나 자신의 모습들과 화해하게 해주는 품이 넓은 아오모리. 이쪽에서도 날것일 수밖에 없는 생생한 삶의 모습을 응시하게 했던,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리움 속에서 이 도시의 현재를 내내 걷고 있을 나를, 그대로 다시 사랑하게 된 화해의 시간을 경험한다. 시인은 아오모리를 말할 때면 최대한 말끝을 흐리며 긴 문장을 말하고 싶어진다고 쓴다. 이렇게 범위가 큰 대상을, 그러니까 도시 전체를 사람과 같이 사랑해본 적 있었나 물으면서. 시인은 이제 아오모리를 사랑하는 사람처럼, 미워하는 사람처럼 신경쓰게 되어버린 것이다. 아오모리가 자신에게 성큼 걸어올 일은 없을 테니까 언제나 성큼 걸어나가는 쪽은 자신일 것이라고. 만나고 있음에도 벌써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진짜인 사랑 속에 살아 있다고 느낄 제 모습을 그리며. “무엇이 시작되기 직전처럼, 1월 1일처럼 느껴지는 10월 1일에 그 장면을 다시 열어본다. 그렇게 나는 공항 문을 열고 나가보았다.”(「거울 앞의 숫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