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07/2025
인조반정의 시초는 1615년 광해군 8년에 일어난 ‘신경희의 옥사’에 있다. 신경희는 병조판서를 역임한 신잡의 아들이자 조일전쟁 초기 충주 탄금대에서 전사한 신립의 조카이다. 1611년 황해도 수안 군수에 등용되었으나 1615년 광해군의 조카인 능창군 이전을 왕으로 추대하려 했다는 대북파의 무고를 받아 투옥됐다가 곤장을 맞고 죽었다. 당시 17살이던 능창군(광해군의 이복동생인 정원군의 셋째 아들)도 강화도 옆 교동도로 유배됐다가 자살하였다.
억울한 죽음 뒤에는 반드시 반작용이 있는 법이다. 능창군의 친형인 능양군 이종(장원군의 장남)의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당시 21살로 혈기 왕성했던 이종은 광해 왕을 몰아내지 않는다면 자신도 어제든지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연산군 정권을 뒤엎은 중종반정이 중종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뤄졌다면 인조반정은 훗날 왕이 되는 이종 자신이 정변 과정에 깊숙이 개입하고 핵심 역할을 했다는 데 차이가 있다.
인조반정의 승자, 구인후 통제사 ① - 바다 지킨 용의 도시, 삼도수군통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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