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원정대

역사원정대 역사원정대 History Expedition - Histoly는 역사의 기록에서 지식을 탐구하고 역사의 현장에서 지혜와 통찰을 얻어 오늘과 내일의 길을 살피는 지식 탐험대입니다. 역사원정대는 역사 기록과 유적을 살피고 저자와 협업하여 책을 비롯한 다양한 역사 콘텐츠를 기획합니다.

인조반정의 시초는 1615년 광해군 8년에 일어난 ‘신경희의 옥사’에 있다. 신경희는 병조판서를 역임한 신잡의 아들이자 조일전쟁 초기 충주 탄금대에서 전사한 신립의 조카이다. 1611년 황해도 수안 군수에 등용되었으...
29/07/2025

인조반정의 시초는 1615년 광해군 8년에 일어난 ‘신경희의 옥사’에 있다. 신경희는 병조판서를 역임한 신잡의 아들이자 조일전쟁 초기 충주 탄금대에서 전사한 신립의 조카이다. 1611년 황해도 수안 군수에 등용되었으나 1615년 광해군의 조카인 능창군 이전을 왕으로 추대하려 했다는 대북파의 무고를 받아 투옥됐다가 곤장을 맞고 죽었다. 당시 17살이던 능창군(광해군의 이복동생인 정원군의 셋째 아들)도 강화도 옆 교동도로 유배됐다가 자살하였다.

억울한 죽음 뒤에는 반드시 반작용이 있는 법이다. 능창군의 친형인 능양군 이종(장원군의 장남)의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당시 21살로 혈기 왕성했던 이종은 광해 왕을 몰아내지 않는다면 자신도 어제든지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연산군 정권을 뒤엎은 중종반정이 중종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뤄졌다면 인조반정은 훗날 왕이 되는 이종 자신이 정변 과정에 깊숙이 개입하고 핵심 역할을 했다는 데 차이가 있다.

​인조반정의 승자, 구인후 통제사 ① - 바다 지킨 용의 도시, 삼도수군통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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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험악한 말로 협박을 해왔다면 조선은 두 가지 카드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하였다. 하나는 일본에 굴복해서 명나라 침공에 협조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열심히 전쟁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
23/07/2025

이웃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험악한 말로 협박을 해왔다면 조선은 두 가지 카드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하였다. 하나는 일본에 굴복해서 명나라 침공에 협조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열심히 전쟁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첫 번째 선택은 할 수 없다. 조선은 국시가 사대(事大)인 나라, 명나라는 부모와 같은 나라였다. 설령 임금이 도요토미의 협박에 넘어가 명나라를 배신하려 한다 해도 문무 관료들은 결코 다르지 않을 터였고, 임금은 단 하루도 권좌를 유지할 수 없는 체제가 바로 조선이었다.

‘통보된 기습’ 1592년 4월 13일 부산포 ② - 7년전쟁, 임진왜란의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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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2025

청태종 홍타이지는 누르하치의 8남으로 8대 버일러 가운데 4위에 위치한다고 하여 4버일러라 불리기도 한다. 홍타이지는 12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20세에 군사를 이끌고 전쟁터를 전전했으며, 35세에 등극하여 17년 동안 재위하였다. 그는 향년 52세로 누르하치를 이은 청나라의 걸출한 정치가이며 군사가였다.

「청사고·태종본기』에서는 홍타이지를 ‘문무에 능했으며 안으로는 정사를 닦고 밖으로는 정벌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용병술은 신기에 가까워 가는 곳마다 승전보를 울렸다’고 평가하고 있다. 대체로 사실에 부합되는 공정한 평가이다. 그러나 이처럼 걸출한 영웅호걸도 유감은 있었다. 청사고에서는 그가 ‘후계자를 정하지 않은 것’과 ‘커다란 훈공을 이루지 못한 것’을 양대 유감으로 지적하였다.

청태종 홍타이지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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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7/2025

일본의 은 생산량은 1530년대부터 크게 늘었다. 조선의 양인 김감불과 노비 김검동이 1503년(연산군 9년) 함경도 단천은광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한 연은분리법(鉛銀分離法)이 1533년 일본에 전수되었기 때문이다. 은광석에는 은과 함께 다량의 납(鉛)이 포함되어 있는데 은과 납을 분리하지 않고서는 은 생산을 늘리기 힘들다. 그런데 김감불과 김검동이 소나무재를 이용해 은과 납을 분리하는 획기적인 기술을 개발하였다. 머리 좋은 조선인이 세계적인 신기술을 개발하였지만 사농공상 나라에서 볼 때는 쓸데없는 짓을 한 셈이었다.

은이 뒤흔든 16~17세기 동아시아 ③ - 오랑캐 홍타이지 천하를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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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 목(박경리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에 나오는 표현이다.)처럼 가느다란 지협(地峽)으로 가까스로 육지와 연결되면서 섬을 면한 통영시내를 북쪽 외곽에서 구도심 쪽으로 넘어가면 높지도 낮지도 않은 고개를 만난다. ...
11/07/2025

두루미 목(박경리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에 나오는 표현이다.)처럼 가느다란 지협(地峽)으로 가까스로 육지와 연결되면서 섬을 면한 통영시내를 북쪽 외곽에서 구도심 쪽으로 넘어가면 높지도 낮지도 않은 고개를 만난다. 고개를 넘자마자 오른쪽 언덕배기에 세병관을 중심으로 한 ‘삼도수군통제영’이 자리 잡고 있다.

현지에서는 이 고개를 ‘토성고개’라고 부르는데 통영의 진산(鎭山)인 여황산의 한 줄기가 바다 쪽으로 흘러내려 온 지맥인 셈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이 고갯길은 철학관이란 이름을 내걸고 신수(身數)를 보는 점집들이 즐비한 낡은 시가지였지만 도로 확장과 함께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다.

통영 토성고개의 전설 - 바다 지킨 용의 도시, 삼도수군통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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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1592, 선조 25년) 음력 4월 13일(양력 5월 23일)은 동남풍이 적당히 부는 맑고 상쾌한 날씨였다. 경상좌수영 산하 부산진 첨절제사 정발 장군은 이날 수하들과 절영도에서 사냥을 즐기고 있었다. 당시 ...
10/07/2025

임진년(1592, 선조 25년) 음력 4월 13일(양력 5월 23일)은 동남풍이 적당히 부는 맑고 상쾌한 날씨였다. 경상좌수영 산하 부산진 첨절제사 정발 장군은 이날 수하들과 절영도에서 사냥을 즐기고 있었다. 당시 사람이 살지 않던 절영도는 울창한 밀림으로 뒤덮여 있었고, 꿩과 멧돼지 등과 같은 야생동물의 천국이었다.

사냥이 끝나가던 오후 5시쯤, 정발 일행은 바다를 뒤덮은 채 달려드는 대규모 함대를 발견하였다. 이날 오전 대마도에서 돛을 올려 북으로 달려온 700여 척의 일본군 수송선단이었다. 순풍에 기대 온종일 항해한 끝에 부산포 앞바다에 모습을 드러낸 참이었다. 형형색색의 깃발 군(群)이 해풍이 어지러이 휘날리고 있었다.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일본군 제1군 1만 8,700명의 병사들이 타고 있었다.

‘통보된 기습’ 1592년 4월 13일 부산포 ① - 7년전쟁, 임진왜란의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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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호공이 건넌 바다는 도대체 어디일까? 필자는 고(古)울산만이라고 판단한다. 고울산만의 실체를 알기 위해 서두를 필요는 없다. 이번에도 잠시 돌아가야 한다. 혁거세 시절의 동해안 지세부터 알아야 한다. 당시의...
07/07/2025

그렇다면 호공이 건넌 바다는 도대체 어디일까? 필자는 고(古)울산만이라고 판단한다. 고울산만의 실체를 알기 위해 서두를 필요는 없다. 이번에도 잠시 돌아가야 한다. 혁거세 시절의 동해안 지세부터 알아야 한다. 당시의 해수면은 현재보다 높았고 동해안의 지형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고 여겨진다. 한반도의 해수면의 변동폭은 생각보다 컸으니 비봉리패총과 동래패총 등이 그 증거이다.

호공이 건넌 바다는 고(古) 울산만인가? ② - [한일 고대사의 재건축]에서 말하는 ‘최초 왜인 호공’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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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7/2025

1540~1550년대 멕시코와 페루, 볼리비아 등 중남미에서 대규모 은광이 발견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560년대, 은광석에서 은을 채취하는 새로운 ‘수은 아말감법’ 제련기술이 개발되면서 생산량이 급증하였다. 세계 은 산출량의 80%를 차지한 중남미 백은 가운데 2/3, 연간 270통은 유럽으로 수출됐고 나머지 1/3, 연간 135톤 정도는 동아시아로 유입되었는데 대부분 중국으로 흘러들어 갔다.

은이 뒤흔든 16~17세기 동아시아 ② - 오랑캐 홍타이지 천하를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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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7/2025

청태조 누르하치는 누구인가?

누르하치는 대청제국의 창시자로서 청나라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강희·건륭성세의 기틀을 마련함과 동시에 광서·선통쇠망의 씨앗도 심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이것이 누르하치가 죽은 지 400여 년이 된 지금도 사람들이 여전히 그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유이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역사학자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연구로 누르하치와 관련된 내용을 대부분 복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문점은 남아 있다. 수수께끼처럼 남아 있는 의문점을 대략 12가지로 분류한다.

https://blog.naver.com/sansuyabooks/223919766406

호공이 건넌 바다는 고(古)울산만인가? ① - [한일 고대사의 재건축]에서 말하는 ‘최초 왜인 호공’의 정체이번에는 두 번째 질문 “호공이 건넌 바다는 어디를 말하는가?”에 집중할 차례이다. 호공이 박을 허리에 차고...
01/07/2025

호공이 건넌 바다는 고(古)울산만인가? ① - [한일 고대사의 재건축]에서 말하는 ‘최초 왜인 호공’의 정체

이번에는 두 번째 질문 “호공이 건넌 바다는 어디를 말하는가?”에 집중할 차례이다. 호공이 박을 허리에 차고 바다를 건넜다는 기록은 동화처럼 느껴지지만 100% 허위는 아닐 것이다. ‘박을 허리에 차고’와 같은 초라하고 구체적인 행색 묘사는 창작의 가능성이 낮다. 호공 기사의 실재성을 일부나마 인정한다면 호공은 분명 박을 차고 ‘어떤 바다’를 건넜다고 보아야 한다.

세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 호공의 고향인 왜땅의 좌표를 확정하기 위해서라도 ‘박을 차고 건넌 바다’를 특정 지어야 한다. 호공이 건넌 바다는 초기신라와 왜 사이의 자연경계일 것인데 이는 곧 바다 건너편이 당시의 왜땅임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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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사 귀국 보고 혼선으로 전란 대비에 실패한 조선 ② - 임진왜란 대비하지 않으면 다시 온다조선통신사 황윤길 일행은 1590년 3월(선조 23년) 한성을 떠나 부산 다대포, 쓰시마(5월 초), 오사카를 거쳐 7월 ...
24/06/2025

통신사 귀국 보고 혼선으로 전란 대비에 실패한 조선 ② - 임진왜란 대비하지 않으면 다시 온다

조선통신사 황윤길 일행은 1590년 3월(선조 23년) 한성을 떠나 부산 다대포, 쓰시마(5월 초), 오사카를 거쳐 7월 말에야 국도 교토에 겨우 도착했다. 그러고도 히데요시가 동쪽 지방 정벌에 나가 있는 바람에 서너 달을 더 기다려야 했다. 9월이 되어 히데요시가 교토로 돌아왔지만 궁궐을 수리 중이라는 이유로 만나지 못하다가 11월 초에야 대면했다. 일본에 사신으로 가서 5개월 동안이나 기다린 끝에 국서를 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https://blog.naver.com/sansuyabooks/223910828486

16/06/2025

은이 뒤흔든 16~17세기 동아시아 ① - 오랑캐 홍타이지 천하를 얻다

1234년 금나라가 몽골에 멸망한 이후 1500년대 중후반까지 여진(만주)족의 역사는 처절하였다. 통일세력을 이루지 못하고 갈래갈래 나뉘어 힘이 약화된 상황에서 원과 명의 가혹한 지배를 받았다. 가난하고 거친 데다 문물마저 낙후됐다는 이유로, 3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중국과 조선, 몽골 등 이웃의 멸시도 톡톡히 감수하였다. 그러나 여진족이 최악의 시절을 보내고 있던 16세기 중후반 경, 세계사적 변화의 물결이 만주 땅으로 흘러들었다. 하얀색 금속 백은(白銀, Silver)이 만든 혁명이었다. 흩어지고 쪼개져서 약해졌던 만주족은 ‘은의 축복’ 속에 다시 뭉쳤고 나아가 독립국가인 후금(後金)을 건설하는 기회까지 포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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