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원정대

역사원정대 역사원정대 History Expedition - Histoly는 역사의 기록에서 지식을 탐구하고 역사의 현장에서 지혜와 통찰을 얻어 오늘과 내일의 길을 살피는 지식 탐험대입니다. 역사원정대는 역사 기록과 유적을 살피고 저자와 협업하여 책을 비롯한 다양한 역사 콘텐츠를 기획합니다.

장한식 저자의 [한일 고대사의 재건축 2권, 기마족의 신라·가야·열도 정복사]는 고대 한반도 남부와 일본열도를 뒤흔든 힘(power)의 이동을 추적하는 역사서다. 1권이 이름의 이동을 다뤘다면, 2권은 북방 기마문화...
11/09/2026

장한식 저자의 [한일 고대사의 재건축 2권, 기마족의 신라·가야·열도 정복사]는 고대 한반도 남부와 일본열도를 뒤흔든 힘(power)의 이동을 추적하는 역사서다. 1권이 이름의 이동을 다뤘다면, 2권은 북방 기마문화의 유입과 전파라는 거대한 힘의 흐름에 주목한다.

4세기 경주에는 이전과 다른 거대한 적석목곽분이 나타나고 화려한 금관과 허리띠 장식, 말 관련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저자는 이 북방식 문화의 원류를 중앙아시아의 쿠르간과 중국 북방의 기마문화까지 거슬러 올라가 추적한다. 특히 4세기 고구려와의 전쟁 속에서 모용선비의 일부 세력이 동해안 이동로를 통해 신라 지역까지 진출하여 정치적 변화에 관여했을 것이라는 대담한 가설을 제시한다.

이러한 기마세력의 영향은 김해 대성동고분군과 아라가야 마갑총 등 가야 지역에서도 확인된다. 저자는 중국 라마동 유적과 북방형 고분 등을 연결하며 북방 기마집단이 가야의 정치적 변화와 신라·가야의 분화에도 관여했음을 전개한다.

나아가 이 기마집단은 한반도 남부에 머물지 않고 바다에 익숙한 해양세력과 결합하여 일본열도로 향한다. 육지의 힘과 바다의 힘이 만나며 마침내 일본 고분시대를 상징하는 전방후원분의 확산과 새로운 정치질서의 탄생이라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광개토대왕비의 왜와 고구려의 신라 구원 사건 역시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낸다.

[한일 고대사의 재건축 2권, 기마족의 신라·가야·열도 정복사]는 ‘신라 진출’, ‘가야 정복’, ‘일본열도 정복’이라는 3단계로 힘의 이동을 촘촘히 엮어낸다. 익숙한 유물과 사건들을 거대한 이동의 역사로 연결하는 이 책은 독자들에게 한일 고대사의 비밀을 푸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산수야 출판사에서 출간한 장한식 저자의 [한일 고대사의 재건축 1권, 왜와 임나의 진실]은 고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논쟁을 규정해 온 익숙한 이름들의 실체를 근본적으로 되묻는 책이다. 저자는 오늘날의 국가와 민족 개...
01/09/2026

산수야 출판사에서 출간한 장한식 저자의 [한일 고대사의 재건축 1권, 왜와 임나의 진실]은 고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 논쟁을 규정해 온 익숙한 이름들의 실체를 근본적으로 되묻는 책이다. 저자는 오늘날의 국가와 민족 개념을 고대에 그대로 대입하는 기존의 전제를 내려놓고, 가장 오래된 기록을 기반으로 왜(倭)라는 이름의 기원을 추적한다.

​저자는 바다를 터전 삼아 한반도 남부 해안을 무대로 활동한 이들을 해인족이라는 개념으로 바라본다. 삼국사기의 호공, 연오랑과 세오녀 설화, 포상팔국 전쟁 등을 면밀히 검토하며 한반도에 머물던 한반도왜가 사람들의 이동과 함께 점차 열도왜의 시대로 나아갔다는 가설을 전개한다. 고대인들에게 바다는 국경이 아닌 철과 기술, 문화가 부단히 오갔던 하나의 연결망이자 활발한 생활공간이었다.

​한일 역사학계의 가장 뜨거운 쟁점인 임나(任那)와 임나일본부의 진실도 정면으로 마주한다. 임나를 고정된 국가나 지역으로 보지 않고 사료에 나타난 다각도의 의미를 분석한 저자는 ‘최초임나=초기왜=초기가야’라는 가설에 도달한다. ‘일본부’ 역시 무조건적인 통치 기관으로 전제하기보다 여러 갈등 양상을 통해 그 실체를 다시 묻는다.

27/08/2026

#곤지의시크릿미션 #오사카여행 #양형은저자 #산수야출판사 #곤지 #아스카베신사

[곤지의 시크릿 미션] 저자와 함께 걷는 특별한 하루

1,500년 전 백제를 구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간 백제의 왕자, 부여곤지!

[곤지의 시크릿 미션] 저자 양형은 교수와 함께 고대 한일 교류의 중심지이자 곤지왕을 모신 오사카 아스카베 신사 현장으로 떠납니다.

책 속에서 만났던 역사 현장을 직접 발로 걸으며, 1,500년 넘게 곤지왕을 모셔온 현지 주민들과의 대화부터 책에 미처 담지 못한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생생하게 만나보세요.

📌 탐방 프로그램 개요: 일본 오사카 "아스카베 신사를 찾아서"

운영 기간: 2026년 9월 ~ 2027년 6월 (매월 세 번째 금요일 / 총 10회)
2026년: 9/18, 10/16, 11/20, 12/18
2027년: 1/15, 2/19, 3/19, 4/16, 5/21, 6/18
소요 시간: 08:30 ~ 16:30 (약 8시간, 점심 및 휴식 포함)
집결·해산: 오사카 긴테쓰 아베노바시역 중앙 개찰구 앞
모집 인원: 회차별 15명 (선착순)
참가 대상: [곤지의 시크릿 미션] 도서 구매자 (행사 당일 도서 지참 필수)

🚶‍♂️ 탐방 코스 안내

[08:30] 아베노바시역 집합 ➔ 모리모토 신사 ➔ [11:00] 아스카베 신사 (주민과의 대화·작품 이야기) ➔ 쓰보이 하치만궁 ➔ 에미 후루이치 ➔ 지카쓰 아스카 박물관 ➔ [16:30] 아베노바시역 해산

💌 참가비 및 신청 방법

참가비: 3,000엔 (예정)

※ 참가비 전액은 아스카베 신사 보존을 위한 공개 기부금으로 전달됩니다.

개인 부담: 현지 교통비, 식사비, 음료 등 (약 3,000엔 예상)
참가 준비물: 구매한 [곤지의 시크릿 미션] 도서, 편안한 복장(운동화/트레킹화), 우산 또는 우비, 개인 물병

신청 방법: 이메일 접수 ([email protected])

이메일 필수 기재 사항: 도서 구매 인증 사진, 이름 / 성별 / 나이, 참가 동기, 연락처 (휴대전화 · 이메일), 희망 참가일 (1~2지망 선택)

※ 참가 확정자는 행사 3일 전까지 여행자보험 가입증서를 제출해 주셔야 합니다.

📖 도서 정보

도서명: [곤지의 시크릿 미션 - 고대 일본에서 신이 된 백제 왕자의 역사를 찾아서]
저자: 양형은
출판사: 산수야 출판사

[곤지의 시크릿 미션]을 읽으며 마주했던 1,500년 전 백제 왕자 곤지의 숨결을 이제 일본 현지에서 직접 발로 걸으며 느껴보세요. [곤지의 시크릿 미션] 출간을 기념하여, 30년 넘게 한일 양국을 잇는 가교 역할을...
18/08/2026

[곤지의 시크릿 미션]을 읽으며 마주했던 1,500년 전 백제 왕자 곤지의 숨결을 이제 일본 현지에서 직접 발로 걸으며 느껴보세요.

[곤지의 시크릿 미션] 출간을 기념하여, 30년 넘게 한일 양국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해온 저자 양형은 교수와 함께 오사카 아스카 지역의 역사 현장을 직접 탐방하는 특별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단순한 관광을 넘어 곤지왕을 조상신으로 모셔온 아스카 마을 주민들과의 만남, 책에 미처 담지 못한 비하인드 스토리, 그리고 1,500년 한일 교류의 역사와 문화를 직접 체험하는 뜻깊은 여정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이번 역사 탐방이 특별한 이유
저자 직강 현장 해설: 수백 곳의 유적을 발로 뛰며 곤지의 흔적을 찾아낸 저자의 생생한 고대사 해설

살아있는 역사와의 조우: 곤지왕을 1,500년 넘게 모셔온 오사카 아스카 마을 주민들과의 직접 대화 및 교류

의미 있는 발걸음: 탐방 참가비 전액은 곤지의 역사를 품은 '아스카베 신사 보존을 위한 공개 기부금'으로 전달

🗓️ 탐방 일정 및 코스 안내
운영 기간: 2026년 9월 ~ 2027년 6월 (총 10회 진행, 매월 세 번째 금요일)

2026년: 9/18, 10/16, 11/20, 12/18

2027년: 1/15, 2/19, 3/19, 4/16, 5/21, 6/18

소요 시간: 약 8시간 (08:30 ~ 16:30, 점심 및 휴식 포함)

집결 및 해산: 오사카 긴테쓰 아베노바시역 중앙 개찰구 앞

[08:30] 아베노바시역 집합 ➔ 모리모토 신사 ➔ [11:00] 아스카베 신사 (주민과의 대화·작품 이야기) ➔ 쓰보이 하치만궁 ➔ 에미 후루이치 ➔ 지카쓰 아스카 박물관 ➔ [16:30] 아베노바시역 해산

(※ 아베노바시역 집합 후 모리모토 신사, 아스카베 신사, 쓰보이 하치만궁, 에미 후루이치, 지카쓰 아스카 박물관을 거쳐 다시 아베노바시역에서 해산하는 코스입니다.)

📋 참가 및 신청 안내
모집 인원: 15명 (선착순)

참가 대상: [곤지의 시크릿 미션] 구매자 (행사 당일 반드시 도서를 지참해 주세요.)

참가비: 3,000엔 (예정)

참가비 전액은 아스카베 신사 보존을 위한 공개 기부금으로 전달됩니다.

별도 개인 부담: 교통비, 점심 식사, 음료 (예상 약 3,000엔)

신청 방법: 이메일 접수 ([email protected])

신청 시 아래 내용을 보내주세요
1. 도서 구매 인증 사진

2. 이름 / 성별 / 나이

3. 참가 동기

4. 연락처 (휴대전화·이메일)

5. 희망 참가일 (2개 선택)

참가 확정 안내: 신청자에게 개별 안내합니다.

참가 확정자는 행사 3일 전까지 여행자보험 가입증서를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참가 시 준비사항: 구매한 [곤지의 시크릿 미션], 편안한 복장(운동화 또는 트레킹화), 우산 또는 우비, 개인 물병

[곤지의 시크릿 미션] 책 속에서 만났던 5세기 백제와 왜의 뜨거운 교류의 현장, 1,500년의 시간을 건너 저자와 함께 걷는 이 특별한 길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

14/08/2026

백제 왕자 곤지는 고구려의 침략으로 백제가 멸망 위기에 처했던 461년, 나라를 구하기 위한 비밀 임무를 띠고 바다를 건넌 인물이다. 그는 웅진 백제의 부흥을 이끈 동성왕과 무령왕의 혈연적, 정치적 후원자로서 16년간 일본에 체류하며 선진 문물을 전파하고 야마토 왕권의 기틀을 다졌다. 일본 오사카 아스카 마을에서는 1,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를 '신'으로 모시고 있다.

5세기 후반 백제는 고구려의 거센 압박으로 국가 존망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461년, 개로왕의 아우인 부여곤지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왜국으로 떠났다. 그의 도왜는 단순한 인질 파견이 아닌, 도래인 세력과 야마토 왕...
11/08/2026

5세기 후반 백제는 고구려의 거센 압박으로 국가 존망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461년, 개로왕의 아우인 부여곤지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왜국으로 떠났다. 그의 도왜는 단순한 인질 파견이 아닌, 도래인 세력과 야마토 왕권을 결집해 백제 재건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고위급 외교 미션이었다. 그는 16년간 일본 가와치 지역에 정착하며 선진 철기와 토목 기술을 전파하고 해양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곤지는 웅진 백제의 부흥을 이끈 동성왕과 무령왕의 혈연적·정치적 보호자로서 백제 왕실의 정통성을 받친 핵심 인물이었다. 475년 한성 함락 후 백제로 돌아와 477년 국정을 총괄하는 내신좌평에 임명되었으나, 정변의 그림자 속에서 세 달 만에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나 일본 오사카에는 그의 후손들이 세운 아스카베 신사가 남아 있으며, 마을 사람들은 1,500년 넘게 그를 '아스카 오가미'라는 조상신으로 추모해 오고 있다.

곤지가 수행한 ‘시크릿 미션’은 과연 무엇일까? 곤지가 활동하던 당시 백제는 고구려의 대규모 공세와 왕권 중심 체제에 대한 내부의 반발로 내우외환을 겪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곤지는 일본의 지원을 이끌어 내기 위해...
09/08/2026

곤지가 수행한 ‘시크릿 미션’은 과연 무엇일까? 곤지가 활동하던 당시 백제는 고구려의 대규모 공세와 왕권 중심 체제에 대한 내부의 반발로 내우외환을 겪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곤지는 일본의 지원을 이끌어 내기 위해 바다를 건넜지만, 그의 역할은 단순한 외교 사절이 아니었다. 그는 16년 동안 일본에 머물면서 어떤 임무를 수행했을까? 그가 5세기 한일 고대사의 ‘숨은 주역’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곤지의 시크릿 미션]은 그 오랜 수수께끼에 대한 설득력 있는 답을 제시한다.

5세기 말, 백제는 고구려의 압박과 내부의 혼란 속에서 존망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그 시기에 백제 왕자 곤지는 일본으로 향한다. 그의 여정은 단순한 외교 사절의 방문이 아니었다. 그는 개로왕의 왕비를 보호하며 바다...
05/08/2026

5세기 말, 백제는 고구려의 압박과 내부의 혼란 속에서 존망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그 시기에 백제 왕자 곤지는 일본으로 향한다. 그의 여정은 단순한 외교 사절의 방문이 아니었다. 그는 개로왕의 왕비를 보호하며 바다를 건너고, 일본에서 16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며 동아시아의 역사를 바꾸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곤지의 시크릿 미션]은 이처럼 기록 속에 흩어져 있는 단서들을 하나씩 이어 붙이며, 오랫동안 풀리지 않았던 한일고대사의 퍼즐을 독자 앞에 펼쳐 놓는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역사와 탐험이 함께하는 구성이다. 양형은 저자는 20여 년 동안 공주와 부여는 물론 일본 오사카, 아스카, 규슈 등 백제와 깊은 관련이 있는 유적지를 직접 답사하였다. 수백 곳의 현장을 발로 찾아다니며 고고학 자료와 문헌 기록, 현장 지형을 서로 대조하고 검토하였다. 그 과정에서 독자는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읽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곤지의 발자취를 따라 함께 여행하는 듯한 생생한 경험을 하게 된다.

고대 일본에서 신이 된 백제 왕자가 있다. 일본의 한 신사에서는 1,50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그를 모셔 왔다. 그는 백제 개로왕의 동생이자 동성왕과 무령왕의 아버지, 그리고 외교관이었던 부여곤지다. 곤지는 5세...
03/08/2026

고대 일본에서 신이 된 백제 왕자가 있다. 일본의 한 신사에서는 1,50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그를 모셔 왔다. 그는 백제 개로왕의 동생이자 동성왕과 무령왕의 아버지, 그리고 외교관이었던 부여곤지다. 곤지는 5세기 한일 고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지만, 역사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낯선 이름이다.

​산수야 출판사에서 출간한 [곤지 시크릿 미션]의 양형은 저자가 곤지라는 인물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한 전철역 이름이었다. 20년 넘게 일본 오사카에서 살아왔던 그는, 어느 날 자주 보아 왔던 ‘가와치코사카’라는 역 이름에 포함된 ‘가와치’라는 지명에 호기심이 들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가와치’는 지금의 오사카부 동부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수수께끼투성이인 5세기 일본 고대사와 연관이 있다고 했다. 그 이야기에 호기심이 커져 도서관에서 책들을 뒤져 보다가 ‘곤지’라는 낯선 이름을 발견했다.

곤지는 5세기 말 백제에서 일본에 외교관으로 파견되어 활약한 인물이었다. 5세기 한일 고대사의 수수께끼를 풀 열쇠는 바로 곤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곤지를 향한 여정을 시작했다. 곤지에 관한 역사를 찾는 데 그치지 않고, 거기서 더 나아가 고대의 곤지가 현대의 한일 두 나라에서 지니는 의미를 모색했다. [곤지의 시크릿 미션]은 20년 동안 오랜 여정의 기록이다.

고대 일본의 신이 된 백제 왕자 곤지, 그의 발자취를 따라간 20여 년의 여정 - [곤지 시크릿 미션]

칠천량 패전과 코 베기 속에 거둔 눈물의 명량대첩 - 임진왜란 대비하지 않으면 다시 온다칠천량 해전의 패배로 조선의 수군이 무참하게 와해되자 왜군은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은 채 남해 수로를 통해 순천과 남원으로 진격...
23/07/2026

칠천량 패전과 코 베기 속에 거둔 눈물의 명량대첩 - 임진왜란 대비하지 않으면 다시 온다

칠천량 해전의 패배로 조선의 수군이 무참하게 와해되자 왜군은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은 채 남해 수로를 통해 순천과 남원으로 진격해 갈 수 있었다. 가토 군 등 영남의 서쪽 방면으로 진격해 가던 왜군도 진주성을 거쳐 기세 넘치게 남원과 전주로 이동해 갔다. 도원수 권율 이하 조선 장병들은 적병을 피해 다니다시피 하거나 산성에 들어가 숨기 바빴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의 의병과 백성들이 처절하게 항거하였는데 의병장 곽재우 군은 죽기를 각오하고 창녕의 화왕산성을 지켜내 왜군들은 우회하여 피해 가야만 했다. 함양 안의의 황석산성에서는 안음 현감 곽준과 전 함양 군수 조종도가 군민과 합심하여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가 순절하였다.

​부산포와 칠천량을 장악한 왜군들이 전라도 점령을 위해 전주로 진격해 가기 위해서는 함양에서 장수·진안을 거쳐 반드시 영호남 교통의 요충지인 육십령을 지나야 했는데 황석산성(행정상으로는 경남 함양군 서하면과 안의면의 중간 지점)은 이 길목을 지키는 곳에 있기 때문에 그만큼 전투는 치열했다.

​남원성 전투에서도 왜적의 조총과 화공작전으로 인해 비록 함락은 당했지만 4일간에 걸친 치열한 공방전 끝에 전라병마사 이복남 등 지휘관들이 전원 사투하며 치열하게 저항하기도 하였다.

​남원과 전주를 잃는 것은 사실상 호남지방 전부이자 그나마 보전되어 오던 조선의 생명줄과 같았던 곡창을 잃는다는 점에서 국가 존망에 직결된 문제였다. 실제로 남원성 함락 이후 전라·충청도의 백성들은 혼란에 빠져 각처로 흩어지며 피난하였고, 열읍의 수령들이 달아난 행정 부재 상태가 되어 전라도에서 충청도로 이어지는 수백리 길은 무인지경이 되고 말았다.

​남원·전주 일원을 장악한 왜군은 8월 20일경 지휘관들이 전주에 모여 차후의 행동 방향에 대한 작전회의를 갖고 전라도 전역을 분할 점령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침략군의 지배하에 들지 않은 데가 없게 됨으로써 히데요시가 지시한 재침의 1차적인 목표가 달성된 셈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조상들의 희생 참상도 이때 일어났다는 것이다.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바로 왜군들에 의해 자행된 ‘조선인 코 베기와 살육’ 만행이다. 이와 관련하여 징비록에는 “왜적이 삼도를 짓밟아 지나는 곳마다 모든 집을 불사르고 백성을 죽였으며, 잡히는 대로 빠짐없이 코를 베어 위엄을 보였기 때문에 왜군들이 직산에 이르자 서울 사람들은 모두 도망쳐 버렸다”라고 전하고 있다.

​이는 히데요시가 정유재란을 지시할 당시 “왜군은 조선인의 목을 베지 말고 사병 한 명당 코 한 되(升) 씩을 베어서 소금으로 절여 보내라”라고 지시하고 “조선인의 잘린 코와 귀를 세어 장수들의 전공을 평가하겠다”라고 언급한 데 따른 실행 차원이기도 했다.

​왜군 간부들은 앞다투어 코 베기에 혈안이 되어 산 자와 죽은 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코를 베었기 때문에 왜란이 끝난 후에도 조선에는 한동안 귀와 코가 없이 사는 자가 허다했다고 한다. 당시 우리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은밀히 “이비(耳鼻)야 왔다. 숨어라”라고 했다는 경고가 오늘날까지도 위험한 상황에서 주의를 줄 때 쓰이고 있는 ‘에비야’의 어원이 아닐까 추정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베어 모아진 코가 20만여 개나 되며 이를 모아 묻은 무덤이 현재 일본의 교토 시내에 현존하고 있다.

그러나 그즈음(9월 초) 명군이 한성 고수를 결의하고 전열을 가다듬는 가운데 조·명 연합군이 직산에서 왜군을 격퇴하고 바다에서는 명량해전에서 크게 이겼다. 임진왜란의 3대 대첩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명량해전은 정유년 9월 16일 ‘울돌목’으로도 불리는 진도와 해남 사이의 좁은 물길에서 벌어진 해전이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왜군의 서남해 진출을 제어하는 데 결정적인 전기가 되었던 명량해전은 통제사 이순신의 뛰어남과 탁월한 리더십을 입증한 승전이자 쾌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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