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2013
문라이즈 킹덤 (Moonrise Kingdom, 2012)
영화 의 12살 동갑내기 소년 ‘샘’과 소녀 ‘수지’는 자신들을 둘러싼 현실에서 도망쳐 둘만의 아지트를 찾아 떠나기로 약속하고, 결국 이를 실행에 옮긴다. 1년 전 연극 무대 뒤편에서 우연히 만난 뒤, 펜팔로 사랑을 쌓아온 두 사람이었다. 사실 소년과 소녀는 첫눈에 서로를 알아보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맡겨진 위탁가정에 적응하지 못하는 샘과, 아이를 싫어하는 부모님 밑에서 외톨이로 살아가는 수지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소울메이트였던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좋아했던 아이는 ‘패닉’의 팬이었다. 수학여행을 떠나던 버스 안에서 그 아이에게 잘 보이기 위해 준비했던 패닉의 2집을 틀었을 때, 선생님은 곧바로 역정을 내시며 이딴 노래 당장 끄라고 하셨다. 그 앨범은 함께 듣기엔 너무한, 도전과 실험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 이해 못할 일도 아니었다. 상신 초등학교 6학년 5반 수학여행 버스 안에서 영턱스 클럽이나 HOT가 아닌, 패닉을 원하는 사람은 그 아이와 나뿐이었고,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우리는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달랐지만, 같은 점이 있었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 아이를 이해하는 13살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나는 패닉의 광기 어린 곡들을 이해했지만, 그 가사처럼 솔직해지기엔 소심한 13살이었다. 우리에겐 샘과 수지 같은 서로에 대한 확신도 없었고, 둘만의 공간으로 무작정 떠날 용기도 없었다. 만약, 그때의 내가 조금 더 발칙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밑도 끝도 없이 날라리가 된다며 엄마가 하지 못하게 했던 걸스카우트에도 가입하고, 좋아하는 것까지가 전부인지 알았던 첫사랑과 더 많은 교감을 나누고, 지루한 수학여행을 뛰쳐나와 둘 만의 파라다이스를 찾아보겠다는 무모함도 보였더라면, 나는 좀 더 솔직한 13살을 거쳐온 제법 용기 있는 30살이 되지 않았을까?
01 BINOCUL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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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영화 전체가 예쁘게 만들어진 팬시상품 같다. 비현실적일 만큼 고운 색으로 묘사되는 주위 풍경과, 그 속을 오가는 소년과 소녀의 모습은 시종일관 예쁘고 귀여워서 한 장면씩 전부 떼어내어 간직하고 싶은 기분을 들게 한다. 이렇게 예쁜 영화인 만큼 장면 곳곳에서 아기자기한 가젯들도 많이 등장하는데, 그중 수지가 늘 목에 걸고 다니는 쌍안경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소품이라 할 수 있다.
언제나 쌍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수지에게 샘이 그 이유를 묻자, “멀리 있는 게 잘 보이잖아. 내가 마술을 부리는 것 같아.”라는 답이 돌아온다. 그간의 사람들은 늘 망원경을 가지고 다니는 수지를 이상하다 생각했다. 어딘가 기이한 행동이 왠지 튄다며 소녀를 따돌렸다. 하지만 샘은 달랐다. “그 말 시 같다. 운은 안 맞아도 멋져. 창의성만 있으면 돼.”라며 수지를 칭찬한다. 그리고 그 순간, 멀리 있는 것을 순식간에 가깝게 보이게 하는 쌍안경처럼 수지와 샘의 거리도 한층 가까워진다.
02 PORTABLE LP PLAYER
GE-WILDCAT PORTABLE STEREO PHONOGRAPH
사랑의 도피를 떠나는 소년과 소녀, 다년간의 보이스카우트 활동으로 야영에 익숙한 샘이 생존에 필요한 각종 도구를 챙겨온 것과 달리 수지의 가방 속에는 먹고 사는 문제와는 관계없는 낭만적인 것들뿐이다. 고양이와 동화책, 그리고 포터블 LP 플레이어까지, 수지는 살아남겠다는 생각보다 좋아하는 것들을 샘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길을 나선 것이다.
하지만 처음에는 쓸데없어 보이던 수지의 물건들이 예상 외로 두 사람의 도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내기 시작한다. 모닥불 앞에서 서로에게 읽어주던 동화책은 둘을 더욱 가깝게 하고, 둘만의 공간에서 LP플레이어를 통해 울려 퍼지던 프랑소와즈 아르디의 ‘사랑의 시간(Le Temps de l'Amour)’은 잊지 못할 댄스 타임의 기억과 그 뒤에 이어지는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을 만든다.
수지가 들고 온 LP 플레이어는 말하는 듯하다. 꼭 필요한 것들, 실용적인 것들만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그것은 마치 어린 소년과 소년의 사랑과 같다. 사람들은 ‘굳이 그 사랑이, 혹은 그 음악이 얼마나 필요한 것이냐고 물을지 모르지만, 그 순간 그 장소에서 흐르던 음악과 그 음악으로 무르익은 분위기 덕에 확인한 서로의 마음은 실용성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중요한 순간인 것이다.
SUPERCULTURE vol.22
Editor_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