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9/2017
지난 5월 19일에 열린 리틀 워싱턴 선발대회의 참가어린이 부모님께서 보내오신 대회 참가 후기를 올려봅니다. 다시금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가정의 달인 5월은 언젠가부터 내겐 일년 중 참으로 바쁜 달이기도 하다. 아마도 쌍둥이 아들들이 프리스쿨을 다니기 시작한 시점부터 더 바빠진 것 같다. 마더스 데이에, teachers appreciation day며, 학년이 끝나가기도 하니까. 10년동안 때로는 즐겁게, 때로는 스트레스 받아가며 다니던 직장을 쌍둥이를 가지며 그만두게 되었기에, 집에서 살림하는 엄마로서, 현재 내게 주어진 잡인 아이들 교육에 최선을 다 하는 것만이 시간을 보람되게 보내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 최선이란 내 나름의 최선이다. 왜냐하면, 난 결코 매일 악기 연습을 해야 한다고 푸쉬하는 젊은 엄마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들 흔히 보내는 구몬 수학 학습지도 단 한 번 시켜본 적 없는 엄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하는 최선은 학교에서 워킹맘들이 하고 싶어도 못 하는 발런티어를 최대한 많이 하며 봉사하고, 최대한 아이들과 많은 책을 읽고, 최대한 아이들과 밖에서 놀아주고 많은 경험 쌓기이다.
그러던 오월 중순 어느 날, 아는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리틀 워싱턴 선발대회가 5월 19일에 열리는데, 올 해는 이미 늦었을 테지만 내년에 한 번 핸섬한? 쌍둥이들도 참가해 보면 어떻겠냐고 말이다. 아들밖에 없는 나는 사실 속으로 미스코리아니 뭐니 하는 대회는 주로 여자 아이들을 위한 거란 선입관도 있었고, 한편 이 참에 아는 동생 딸래미 대회 응원해 주러 가야지 하고 신나던 참이었다. 그렇지만, 몰랐다면 몰랐다 손 치더라도, 일단 알게 된 이상 담당자님께 한 번 문의 전화라도 드려봐야지 라는 생각으로 전화를 드렸던 것이다. 할까말까 하는 일들은 일단 하는 것이 후회가 적고, 할까 말까하는 말들은 일단 하지 않는 것이 후회가 적다는 말에 동의하며 사는 나이기에…
그랬더니 올 해부터 처음으로 남학생들도 리틀 워싱턴 선발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고 적극 권유해 주신 것이다. 대회 날짜도 일주일 채 남지 않았고, 다른 아이들은 장기자랑 준비도 꽤 했을 것인데, 무엇을 할 것이며, 제대로 된 수트 한 벌도 금방 금방 크는데 싶어 안 사입힌 나로서는 참으로 난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쇠뿔도 단 김에 뺀다고 친절하신 담당자분의 말씀과 격려에 힘입어 얼떨결에 지원서를 내고 등록하고, 장기자랑에 연주할 곡 하나씩 얼렁뚱땅 연습시키고, 더 웃긴 것은 중고 샵에서 아주 저렴하게 재킷 2벌을 구입해서 대충 손으로 수선해 보니 그럴싸해 보이기까지 했다.
결론은 할까말까 하는 일들은 일단 하는 것이 후회가 적다는 나의 믿음을 백 배, 천 배 다시 한 번 확신하게 되는 정말 멋진 추억거리를 만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올 해 7살이 된 아이들이 생각보다 잘 해 주어서 수상도 했지만, 그 외에도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해 준 소중한 계기가 되어 준 것이다.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대학까지 서울에서 마치고, 석사과정부터 유학을 오게 된 나는 교포이던 남편을 만나 미국사회에 정착하게 되면서부터 늘 이 곳에서 살게 된 이상, 교포들 뿐만아니라 이 곳 사회 주류들과도 즐겁게 교제하고 또한 아이들이 뿌리를 잊지 않도록 잘 교육해야 겠다는 강박관념? 을 항상 갖고 있었던 터였다. 그런데, 카톨릭 신자인 나는 어쩌다 보니, 역시나 카톨릭 초등, 그리고 중학교에서 교육받으면서 좋은 경험과 추억을 가진 남편과 함께, 우리 아이들 역시 카톨릭 학교에 보내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종교의 특성때문인지 전교생 중에 한국 가정은 참으로 귀해서 아이들이 한국 문화에 노출되는 정도가 내가 바라던 것보다 훨씬 적어, 늘 목마르던 터에 여름 방학 중에 한글 학교를 보내는 것이 유일한 한글 공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왜냐하면 학기 중엔 팀스포츠를 열심히 하고 있어 주말에는 게임 스케쥴이 겹쳐 한글 학교를 포기하게 된 것이었다. 게다가 한국 아이들에겐 비인기종목인 팀스포츠를 하다보니 2년이 다 가도록 한국 아이들을 눈씻고 찾아보기가 힘든 참이었다. 사실 그것도 다니다 보니 점차로 알게 되었지만. .
그런데, 리틀 워싱턴 선발대회에 참가한 아이들이 약간 어눌한 발음이긴 하지만, 또박또박 한국어로 자기 소개를 참으로 귀엽게도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는 입상을 목적으로 참여한 것이 아니었기에, 아이들에게 인터뷰 중에도 절대로 과장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대답하고, 어린이다운 자연스러운 모습이 최고라고 생각했기에 고의적으로? 연습을 시키지 않았던 것이었다.
대회가 끝나고 2위라는 예상 외의 큰 상을 받은 우리 아들은 며칠 후 이렇게 얘기를 했다. “엄마, 내가 만약에 한국어로 저는 000입니다. 올 해 7살이고, 어느 학교에 다니며 우리 가족은 이러이러합니다… 라고 했으면 내가 1등했을까?” 라고 말이다. 사실 우리 애들이 올 여름방학에 다닐 한글학교에서 더욱 열심히 공부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런 힌트를 준 점도 있지만, 지나간 대회를 다시 되돌아보며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아들을 보며, 한편으론 더 열심히 한글공부와 대회 준비를 시키지 못한 엄마로서의 죄책감과 아울러 참으로 감사한 대회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나와 달리 이 땅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어떻게 아이덴티티를 제대로 확립해 갈 지, 어떻게 부모로서 도와주어야 할 지 늘 마음 한 구석 걱정이었던 내게 엄청난 교육의 효과를 기대치 않게 갖게 된 것이다. 더군다나 대회 초입에 있었던 전통 사물놀이 공연도 너무나 멋졌었고, 한국 무용이랑 태권도를 장기자랑으로 준비해 온 다른 친구들을 보는 것도 일석이조였다는 생각이다.
또한 개인적으로 이젠 온라인으로 주로 뉴스 기사를 읽고, 못 하는 영어지만 주로 영어로 된 현지 신문이나 뉴스만을 보던 내가, 이번 대회를 계기로 한국일보를 꼼꼼하게 읽어 보게 된 것이다. 마치 한국일보가 주최사였기 때문에 홍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겠지만, 내겐 특정한 한 회사를 홍보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직원도 아니고, 돈을 받는 것도 아니기에.. 어쨌든 한국일보를 온라인으로 읽다 보니, 지역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 현대작가 전시회도 가게 되었고, 또 무엇보다도 동양인이면서 전문인인 프로페셔널들이 이 땅에서 자라나는 후학들을 위해 만든 비영리 단체에 대해서도 알게 된 것이다. 나도 나름 공부하고 맨 땅에 헤딩하며 잡 구하고, 전문분야에 한동안 일하면서 눈물 콧물 흘리면서 늘 내 마음을 이해해주고 이끌어 줄 멘토가 아쉬웠는데, 그런 카운셀링을 해 주는 그룹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그래서 당장 남편에게도 가입하고 힘들게 얻은 지식과 경험들을 나누면 좋겠다고 권할 수 있었다.
빅 4(PricewaterhouseCoopers)에서 일하던 시절, 당시 New England region 전체 택스 부서 파트너였던 우리 팀 파트너 분이 항상 강조하시던 말씀이 지식도 좋지만, 큰 그릇이 되어 나누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은 사람이라고… 그래서 늘 우리 아이들에게 마음 한 구석 늘 바랬던 것이 본인의 성장과 함께 지역 사회와 교포사회에 봉사하고, 나누는 기쁨을 알면서 커 가기를 기도했다. 작년 땡스기빙 때는 음식 한 보따리를 싸들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fire station 에 가서 작은 가슴 두근 두근하며 초인종을 누르고 정말 정말 반가와하는 fireman 아저씨들과 음식을 나누고 사진을 찍기도 하면서..
본업과 더불어, 리틀 워싱턴 대회를 열심히 준비하느라 체중까지 몇 파운드 줄어드신 국장님과 홍 계수 담당자님 그리고, 무대 뒤에서 우리 아이들은 이제 고등학생, 대학생이예요 하시면서 머리 질끈 묶고 청바지 입고 피아노 밀던 어떤 직원분, 땀 흘려가며 열심히 한국말로, 영어로 사회보던 사회자분들 모두 모두 너무 감사했고, 봉사의 기쁨이 어떤 것이란 것을 몸소 실천해 주셨다고 생각한다. 또 나이어린 아이들이 좀 더 젊은 대학생 형 누나들과 있으면 기다리는 동안 덜 긴장할 거라고 생각하셔서 그런 도우미들을 구했었다는 대회 후의 여담도 들으면서 정말 이 땅에서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마음으로 준비해 주셨구나.. 하며 감동도 받았더랬다.
한국 교포가 대표적으로 많은 도시인 워싱턴이긴 하지만, 한국 교포들에게 이런 대회가 있다는 소식을 아이들을 이뻐라 해 주시는 학교 welcoming director와, 아이들 홈룸 선생님들과도 함께 나누었다. 사진과 기사 링크들과 함께. 또 칭찬도 많이 받으며 한국인이라는 걸 다시 한 번 어깨를 으쓱하며 자랑스러워하는 아이들을 보니 대회에 출전하기를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드는 즐겁고도 바쁜 2017년 5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