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1/2026
[부유하며 직진하는 노래, ‘바다 사나이’]
임희윤 음악평론가
-
대중음악의 흐름은 겉보기엔 퍽 잔잔하다. 괜찮은 노래들이 순위를 바꿔가며 명멸하는 모습. 역동적이지만 저류(底流)의 격동은 좀체로 드러나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저 아래에서 펄펄 끓던 신선한 아티스트와 노래들은 때로 분출한다. 그래서 세월의 물길을 바꾸고 스스로 분기점이 되며 분수령이 되고야 만다.
지난 세기말, 한국 음악계에 그런 일이 있었다. 해저에 엎드려 있다 수면 위로 봉곳이 솟아오른 저 준봉들. 그들이 댄스 가요와 발라드에 열광하던 한국 대중에게 ‘대한 독립 만세’도 아닌, ‘인디 뮤직’이란 낯선 개념을 각인시키는 데 일조했다. 한국 인디 태동의 큰 흐름 중 하나가 펑크 록이었다. 1996년 컴필레이션 음반 ‘Our Nation. Vol. 1’이 크라잉넛과 ‘말 달리자’로 인디발(發) 히트곡을 쏘아 올렸다. 홍대 앞 지하 클럽에서 발사한 청춘의 로켓은 뜻밖에 성층권 가까이로 날아올랐다.
이듬해인 1997년, 후속작 ‘Our Nation, Vol. 2’에는 노브레인과 그들의 ‘바다 사나이’가 버티고 있었다. 김건모의 ‘핑계’, 룰라의 ‘날개 잃은 천사’로 ‘조선 레게’의 향취를 경험한 당시 대중은, 노브레인의 ‘바다 사나이’에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가벼운 레게 리듬에 헤비한 펑크 록을 천의무봉으로 접목해 냈기 때문이다.
친근하게 시작해 난폭하게 맹진하는 이 곡의 드라마는 2000년 업데이트된다. 기타와 오르간의 스캥크(skank) 리듬이 상쾌한 출항을 알리고 밴조가 목가적 분위기를 더하며 순항하던 마도로스 김의 외항선. 곡은 뒤로 갈수록 뜨거워지는데 레게의 낙천적 엇박은 아첼레란도(점점 빠르게)의 성난 파도를 만나 펑크 록의 거친 질주로 우화(羽化)한다.
이렇게 ‘바다 사나이’는 노브레인 정규 1집 ‘청년폭도맹진가’에 주요 트랙으로 부활한 것이다. ‘청·폭·가’는 두 장의 CD에 18곡을 눌러 담은 기념비적 더블 앨범으로서 평단이 꼽는 한국 대중음악 명반 리스트에 빠지지 않았다. 이성우의 야생적 포효가 차승우의 농익은 기타와 십자포화를 쏟아내는 앨범.
인디 30주년 리메이크에서 이 배의 키는 김마스타 선장이 잡았다. 이성우의 성대를 붙잡고 연마지로 한껏 더 갈아낸 듯한 김마스타의 목소리. 최백호의 ‘부산에 가면’도 기막히게 훔쳐냈던 그 김마스타는 블루스, 포크, 록, 그리고 자신의 독보적 음성으로 태평양을 인도양쯤으로 바꿔 버린다.
편곡 센스도 발군이다. 통기타 개방현의 찰랑대는 음향이 뜻밖의 긴장음을 영롱한 윤슬처럼 띄우면, 오르간과 오션 드럼이 합세해 청량한 제퓌로스의 해풍을 덧댄다. 여름 바다의 사운드트랙으로 제격. ‘아련한 추억 내 청춘아…’에선 마치 배가 잠시 해식 동굴에 닿은 듯 아득한 공간감이 스피커를 감싸고…. 이내 포 온 더 플로어(four on the floor)의 베이스, 통기타 커팅 주법, 클라비넷이 협공으로 펑키한 산미를 피워 올리는 것이다.
곡의 하프 타임을 주심의 호각 소리처럼 가르는 것이 또 김마스타의 ‘어우, 예에~’다. 짧게 치고 빠지는 이것은 단순한 추임새나 여음구가 아니다. 이 곡의 짧고 굵은 킥(kick)이다. 이제 진짜로 마도로스 김은 마스터 김이 되고 이 함장은 한 손을 잠시 키에서 놓은 뒤 하모니카를 잡아 갈매기들과 노닌다. 산뜻한 현악, 약동하는 타악. 노래는 서광 쪽을 향하듯, 원곡보다 한층 더 높은 명도의 희망적 결말로 나아간다.
김마스타는 대구의 통기타 라이브 호프집에서 노래를 시작했다. 그때 그의 나이 15세. ‘액면가’가 대학생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귀 밝은 이들의 극찬에도 대중적 스타덤과는 거리가 멀었다. 병마로 두 번의 고비를 넘긴 뒤로 (의외로) 금주(禁酒)의 성인이 됐으며, 기후가 온화하며 값싸고 맛난 음식이 가득한 태국에서 쌀국수 먹으며 노래하다 가는 것이 김마스타의 꿈이다. ‘인디30’의 프로듀서 김웅은 “홀로 거친 인생을 항해하는 듯한 녀석의 삶과 (노래 ‘바다 사나이’ 속) 마도로스 김의 삶이 너무도 닮아 노래를 청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