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2024
✍ '사랑에 대해'
'하느님이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할 때는 우리가 그냥 행복한 망상 속에서 춤추게 놔둘 때다.'
먼 옛날 신들은 필연에 복종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우주에 어울리는 소나기는 숙명만 알고 있다. 모든 것이 완고한 운명의 지배를 받고, 어느 것 하나 넘치는 것 없이 조화를 이룬다. 오만은 응징되고 질서는 회복된다. 나와 당신, 이 세상은 그 질서 안에 존재한다. 그런데 사랑은 어디에 있을까. 적들을 처치하고 차지하는 왕관의 빛에 사랑이 있을까. 아니, 그럴 리 없다. 적으로 죽어가던 한 연인의 사랑도 정량은 없다. 그 부모를 기다리는 아이의 사랑이 그보다 가벼울 수 없다. 결국 최고 사랑의 조건은 무엇인가. 이곳에 사랑은 설 곳이 없다.
프로타고라스는 옳다. 각각은 사랑의 척도다. 세상의 모든 사랑이 ‘사랑’이다. 나의 사랑이 아름답다면, 그들의 사랑도 찬란하다. 모든 곳에 사랑이 넘친다. 그래서 ‘사랑’은 그만 그 모습을 감춘다. 메말라가던 진정한 의미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전쟁의 삭막함이 이곳의 전부다. 사랑 속에서 무엇이 ‘사랑’일까. 사랑은 이곳에도 없다. 정확하게 다시 말하면, 그래서 사랑은 나의 논리 안에서 찾을 수 없다.
기대가 된 곳은 ‘감각’이다. 사랑이었다고 여전히 말하는 나의 느낌, 나의 반성이다. 그러나 사랑은 여기서도 정의될 수 없다. 그 느낌이 정말 사랑으로부터 온 것일까. ‘진짜 사랑’을 구별할 수 있을까. 나는 무기력하게 바다 위에 떠 있다. 이 섬에서 무엇을 발견하든 누군가가 탐낼만한 보물은 아니다.
그래서 사랑은 어디에 있을까. 골머리를 앓았다. 깊은 늪으로 나 스스로 빠져갔다. 결국 여기서 가질 수 있는 태도는 하나뿐인듯하다. 나의 공상은 이렇게 시작된다.
나는 ‘나’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듯 판단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나’를 포함하는 ‘모두의 사랑’에서 믿을만한 ‘보편적 사랑’을 추상할 수 있다. 이끌어 낼 수 있다. 나는 그것을 신의 심판대에 올릴 것이다. 하지만 옳고 그름을 묻지 않는다. 나는 다만 신의 동의를 구한다. 반대하거나 응답하지 않는다면, 사랑의 한계를 경계 지을 것이다. 결국 인정한다면 ‘나는 동의만 구했을 뿐 신의 사랑과 나의 사랑이 정확히 똑같은지, 일부만 포함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이것은 여전히 나의 사랑일 뿐이다’라고 우길 것이다.
비열한 짓이다. 모호함 속 억지인 것을 안다. 그러나 더 이상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필요한 것은 나 스스로 납득할 만한 이유, 사랑에 대한 용기와 자신감이다. 드디어 사랑을 속삭일 수 있다.
모든 사랑을 인정할 때는 해명해야 할 물음들이 있다. 일부만 짚어본다면, 내가 생각하기에 그 문제는 “그 대상을 향한 사랑이 가능한가”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관계 속에서 그 사랑의 행위는 정당한가?” 또는 “그 사랑의 행위를 사회적으로 다뤄야 하는가?”가 문제인 것 같다. 두 번째 물음에 대해서는 짧은 의견이 있지만, 지금은 어울리지 않는다. 간단히 말하면 어떤 ‘개념’이든 우리의 논의 주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다시 돌아가서 사랑은 반드시 어떤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생각될 수 있어야 하므로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표현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뿐이다. 사랑은 정확한 실체를 바라지 않는다. 무엇인지도 모르는 데 우리는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이 때문에 사랑은 균형을 요구하지 않는다. 어느 날의 햇볕이, 늘 그 자리에 있던 꽃이, 야생의 동물들이, 상상 속 무언가가, 어떤 이들에 의해서는 지혜가 사랑받는다. ‘저곳에 나로서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는데, 나는 그 ‘알 수 없음’을 기억한다’는 주장을 사랑은 포함한다. 사랑은 그 ‘알 수 없음’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 ‘알 수 없음’에서 사랑은 언제든 무엇을 새롭게 발견한다. 그러나 새로운 발견은 그 대상을 변화시킨다. 이제 사랑은 시험대에 오르고 두 가지 갈림길에 선다. 하나는 대상의 같은 곳만 보며 언제나 같은 사랑을 하는 것이다. 무언가를 사랑한다면 단절된 상태일 리 없기 때문에 자신도 늘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 또 다른 하나는 새로운 발견의 매 순간 순간마다 ‘또 다른 사랑’을 키워내는 것이다. 그 흐름에 따라 마치 생명의 운동처럼 성장하는 것이다. 그와 함께 자신도 변해가는 것이다.
사랑이 왜 이렇게 복잡해야 할까. 나로서는 시간이 원인인 것 같다. 과거에 죽었고, 현재에 죽어있고, 미래에 죽어 있을 것인 한 사람의 발견 없는 영원한 죽음과 사랑은 다르다. 사랑은 시간 속에서 추억이자 약속이 된다. 그래서 사랑은 멈추지 않는 과정이고, 그 변화의 힘은 시간이다. 사랑은 시간에 무력한 것 같다.
이제 비가 그쳤다. 나의 말은 말라서 모두 하늘로 흩어졌다. 버트런드 러셀의 서양철학사, 그중에서 플라톤에 관한 것들이 나의 항해 지도였다. 끝으로 희망이 있는 곳, 그곳은 사랑이 발견해 낸다. 여기서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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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횡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