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0/2025
그곳으로 간 당신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오래도록 기억하는 일. 겨우 그것 하나뿐이라고 생각할 무렵, 이사흘( )의 두 번째 피지컬 앨범 의 디자인 작업을 맡았습니다. 열 개의 트랙을 순서대로 몇 번이고 들었습니다. 읊조리는 듯한 가사는 음의 높이를 타고 번집니다. 어쩐지 번진다는 이미지를 계속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네모난 냅킨 위로 떨어진 눈물 한 방울이 퍼지는 둥근 면적이라거나, 마른 땅에 떨어지기 시작하는 빗방울 몇 개. 그런 장면들 말이에요.
제게 온 슬픔을 관통하듯 같은 모양으로 겹쳐지는 곡들을 반복해서 듣는 일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가도 그녀가 음악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을 이렇게 면밀하게 들여다보게 된 것, 하필 그 순간이 지금이라는 것은 특별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곡의 모서리를 채우는 허밍과 겹쳐지는 목소리는 건네받은 위로 같기도 하고, 어깨를 감싸는 작은 손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분명한 것은 그녀의 음악이 저를 일으켰다는 점입니다. 약속한 기한 안에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는 면에서 실질적으로 몸을 일으키기도 했고, 슬픔을 눈앞에 가져와 선명하게 보여주어, 자꾸만 울다 보니 오히려 마음도 조금은 일어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마웠다는 말을 이제 와서 글을 통해 전해봅니다.
디자인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이러한 과정을 담아 곳곳에 녹여보았습니다.
미온한 백색에 고유의 질감이 느껴지는 종이로 패키지를 만들었습니다. 최대한 담백하게 들어가야 할 내용들을 앉혔고, 두 개의 도무송을 넣었습니다.
첫 번째 도무송, 사각형 속으로 앨범명 가 보입니다. 제가 전달받은 온기처럼 은근한 벚꽃색입니다. 꺼내어 책자를 펼치면, 그 속에는 가사가 담겨있습니다. 한눈에 잘 읽히는 것보다 눈으로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목과 가사의 표상이 될 수 있는 형태를 심볼처럼 오른쪽 페이지에 넣고, 그 형태가 원형의 픽셀로 번지는 듯한 드로잉을 왼쪽 페이지에 넣었습니다. 가사는 드로잉 위로 음의 높이와 길이를 따라 앉아 있습니다. 곡을 들으며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함께 노래하실 수 있을 거예요.
알판이 들어 있는 오른쪽 포켓에 원형으로 두 번째 도무송을 넣었습니다. 그 속에는 또 ㅇ(동그라미)가 있지요. 작업을 하기 앞서 자료를 전달받을 때 의 영문 번역이 fig가 아니라 ㅇ로 되었으면 좋겠다는 사흘의 제안이 내내 마음에 남았습니다. 무화과의 영어 단어보다는 동그란 형태로 남겨지면 좋겠다는 의견이었지요. 동그란 알판 중앙에 난 동그란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CD를 집어들 때, 튀어나온 동그란 검지. 같은 것들을 연결해서 생각하며, 심플하게 영문 타이틀인 ㅇ만을 알판에 출력하고, 그 ㅇ가 보일 수 있도록 원형의 도무송을 넣어보았습니다.
감상부터 스테이트먼트까지 무척이나 긴 소개였는데요.
앨범의 정식 발매는 11월 3일로, 그무렵 발매 기념 선공연 가 있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려봅니다. ❥𓂃𓏧
📷 :Donny Son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