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6/2025
“평화는 경쟁이 끝났을 때 오는 것이 아니라, 신뢰가 시작될 때 자라나는 것처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멀리 가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일. 그 자리에 뿌리내리고, 계절을 견디며 살아갈 때 비로소, 그저 제자리에 서서 바람을 맞고, 햇빛과 흙과 물을 기억하는 나무가 된다. 크고 멋진 나무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
너와 나, 우리가 함께 우거져 울창한 숲이 되면 되니까.“
#무지개신학교 #장소에뿌리내리기 #박경미 #한티재
#한티재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시처럼, 요즘 우리는 무엇을 이렇게까지 바라본 적이 있었을까? 모든 것이 빠르게 지나간다. 정보도, 일상도, 관계도 그렇다. 가만히 머무는 일은 점점 사라졌고, 그저 흘러가는 것을 뒤쫓는 데 익숙해졌다. 박경미 교수의 책 『장소에 뿌리내리기』는 그런 우리 일상에 조용히, 삶을 다시 ‘뿌리내리는 일’로 이끈다.
뿌리를 내린다는 것. 사람과 사람 사이, 나와 자연, 그리고 신과의 관계 속에서 조금씩, 조용히 이어지는 일. ‘희망’과 ‘기대’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 기대는 내가 만들고 싶은 미래를 상상하는 마음이라면, 희망은 누군가의 선의에 기대어 기다리는 일이라는 말. 내 뜻이 아니라, 타인의 자유를 믿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욕구의 충족과 대가를 바라는 세상이 되어버린 우리 사회에서, 싹이 돋을지 모르는 말라버린 나무에 묵묵히 물을 주는 마음은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인지도 모르겠다.
돈, 공동체, 존재, 그리고 평화에 관한 이야기들이 서로 엮이며 조용히 스며들 때, 우리는 애써 외면해 온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왜 우리는 이렇게 풍요로운데도 불안하고 고독할까? 모두가 부자가 되기를 혈안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타인의 희생으로 부를 축적하는 행위와 폭력이 당연시되는 세상 속에서, 예수의 오병이어는 하늘에서 떨어진 기적이 아니라, 사람들이 가진 것을 꺼내어 함께 나누었기에 기쁨이 생겨났다는 설명이 더 진실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사람들은 우리를 이 자리에 있게 한 창조주의 뜻에 응답하며 살아가는 일을 잊어버렸다. 계획과 통제에 익숙한 현대인의 삶은 평화를 가져다줄 줄 알았으나, 무한한 경쟁과 타인을 믿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어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평화는 경쟁이 끝났을 때 오는 것이 아니라, 신뢰가 시작될 때 자라나는 것처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멀리 가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일. 그 자리에 뿌리내리고, 계절을 견디며 살아갈 때 비로소, 그저 제자리에 서서 바람을 맞고, 햇빛과 흙과 물을 기억하는 나무가 된다. 크고 멋진 나무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
너와 나, 우리가 함께 우거져 울창한 숲이 되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