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6/2025
‘존재(存在)는 존재 이전의 존재로 말미암아 존재한다.’
(중략)
우주 만물은 이(理)와 기(氣)의 순리에 속한 채로 어루만지고, 움켜잡고, 집다, 문지르고, 보듬고, 빚고, 매만지고, 다듬고, 채고, 휘고, 꺾는 능동성과 닳고, 갈라지고, 부풀리고, 깎이고. 꺾이고. 흠집 나고, 구부러지고, 닳고, 터지는 피동성을 취한다. 존재는 존재 전의 존재에 의해 현상한다.
이정훈과 그의 작업은 동양적 사유 체계인 이기(理氣) 철학의 선험적 바탕에 있다. 그는 “자연 현상에는 균형과 질서가 존재한다.”를 명제로 ‘웜홀(worm hole)’의 비가시적 존재를 작업의 모태로 서사해 왔다. 블랙홀과 화이트홀의 시공간을 관통하는 웜홀은 우주의 중력과 관성력에 의해 내재하지만 현상 그 자체는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존재 너머 존재 질서이며, 어쩌면 대혼란의 카오스 우주가 세계적 질서를 이룬 코스모스 우주로 변환하는 궁극의 이치임을 이정훈은 신념화했다, 대우주의 무한 원리는 철학자 자크 라캉의 “인간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해진다.”라는 주장처럼, 기정된 우주 질서를 고스란히 수용한 것이 그의 작업 세계이며, 그것의 현재는 배꼽이나 과실의 꼭지라는 매우 단순한 미니멀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는 작가의 ‘상상계’ 혹은 ‘상징계’의 현상으로 그가 어떤 시공간에 안착하는지를 귀띔해주고 있다.
’Void_bagatelle‘는 객관적 인식 체계를 이미지 체계로의 대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플라톤의 이데아(idea) ‘감추어진 현실’을 현재성으로 드러내는 작업이면서, 이미지를 형태가 아닌 물질 그 자체로 파악하고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요소들을 모두 제거하는 과정을 띠고 있다. 이는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 말한 살균된 세계를 벗어나 자연계의 질서에 순응하는 태도와 같다. 외적 형태를 나무의 생명력에 기인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목재의 형태적 변화와 조형을 위한 물리적, 기계적 기법을 넘어, 목재 고유의 물성이 스스로를 창조한 이미지를 수행하는 것이야 말로 이정훈 작업의 실상이자 실체이다.
물질은 그것의 고유한 ‘업(業)’에 따라 ‘체(體)’로 나타난다. 배꼽은 생명을 일으키는 통로이자 살핌의 모양으로 존재한다. 관념, 의지, 의도는 업을 통해서만이 체에 이를 수 있다. 우주를 떠다니는 미립자들이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빅뱅을 일으키고 대우주를 이룬 것과 같이, 우리 앞에 놓인 그 어떤 물질도 의도한 바가 분명할 때 자기 자장(磁場)을 일으켜 체를 이룬다. 그런 맥락으로 볼 때 이정훈의 ’Void‘ 시리즈는 사소한 물질에 생명선을 매는 것에서 시작된 업과 체의 공간 덩어리이다. 그것은 생명의 모호함, 공간의 무한함, 물질의 고유함이 하나의 유기체로 존재하면서 우주의 공간 질서를 이루고 있다. 기능의 각별함을 떠나 사유의 유연함에 기인한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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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Bagatelle in Void: 사소한 존재의 물질적 공간 질료≫는 존재 그 자체로 우주의 만물이 되고자 하는, 어떤 근원성이 되고자 하는 나무의 물성적 몸부림에 호응한 작가 이정훈의 순수이성에 의한 사물이다. 검은 나무 덩어리의 가슴과 옆구리를 파고드는 우주의 방울 자국에 눈을 맞추고 그 속을 살피는 가운데 희미하나마 생명의 시원을 발견하게 되는, 무한한 경이로운 세계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Void_bagatelle’, ‘Void‘는 오로지 그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업(業)과 체(體)의 순환임을, 이정훈의 우주적 몽상임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