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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우드플래닛

삶의 가치를 기억하는 나무! 그 나무 이야기를 전합니다.
태초부터 우리의 삶을 준비한 나무, 그래서 모두기 좋아하는 걸
까요? 전파는 단절하지만 새소리는 더 정갈하게 전하고, 시간과 함께 변화고 때론 사멸하고 때론 영원한 소재 나무! 이제 공간에서부터 작은 소품에 이르기까지 삶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동반자 나무 그리고 매거진 우드플래닛입니다

개운하고 그윽할 것, 관념이 앞서기 전에 구체적일 것,작가의 고유성이 빛날 것,고전이 될 것,그리고적절한 슬픔이 깃들 것. #사진은 나점수 조각가의 책꽂이
30/06/2025



개운하고 그윽할 것,
관념이 앞서기 전에 구체적일 것,
작가의 고유성이 빛날 것,
고전이 될 것,
그리고
적절한 슬픔이 깃들 것.

#사진은 나점수 조각가의 책꽂이

낮과 밤밤은 어둠의 실존가 아니면 낮의 대칭도 아니다. 북극의 밤은 낮의 질량과 밝음으로 골목 후미를 서성인다. 낮과 밤이 한몸으로 뒤척인다. 낮이 밤이고 밤이 낮이다. 원래 사물의 모든 징후는 구분이 없다. 낮과 ...
29/06/2025

낮과 밤

밤은 어둠의 실존가 아니면 낮의 대칭도 아니다. 북극의 밤은 낮의 질량과 밝음으로 골목 후미를 서성인다. 낮과 밤이 한몸으로 뒤척인다. 낮이 밤이고 밤이 낮이다. 원래 사물의 모든 징후는 구분이 없다. 낮과 밤은 시각의 시간차이자, 빛의 순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이 나타난 이유는 빛의 여백에 숨어들어 온전히 쉬고 싶은 몸의 생리적 욕망을 배려하기 위해서다.
일요일의 밤이 짙은 것도 같은 이유다.

태어났다면.,굶지 말기를느낌을 잃지 않기를감정대로 살기를슬프을 가까이 두기를모든 걸 사랑하길그리고 시간이 좀 남는다면하바나의 후진 골목 끝에서보사노바를 듣기를...
28/06/2025

태어났다면.,

굶지 말기를
느낌을 잃지 않기를
감정대로 살기를
슬프을 가까이 두기를
모든 걸 사랑하길
그리고 시간이 좀 남는다면
하바나의 후진 골목 끝에서
보사노바를 듣기를...

8미리 말보로 연기를 4초간 깊게 빨아 들이킨 적 있던가? 이는 타르에 물든 니코틴의 순도에 대한 몸의 갈구이자 슬픔의 물질을 체화하는 행동 반응이다. 최소한 지금까지는 그 어떤 미술도 한 개비 담배 연기에 맞선 기...
27/06/2025



8미리 말보로 연기를 4초간 깊게 빨아 들이킨 적 있던가? 이는 타르에 물든 니코틴의 순도에 대한 몸의 갈구이자 슬픔의 물질을 체화하는 행동 반응이다. 최소한 지금까지는 그 어떤 미술도 한 개비 담배 연기에 맞선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어설픈 가정과 무리한 설정, 아이디어로 개념을 작란(作亂)하고 사물을 장식화한 예술의 끝판이 지구의 종말과 동시성일 것 같은 징후에 절망한다. 한 톨의 쌀과 메말라가는 식물 줄기를 외면하는 상태로는, 경복궁 현판식에 저민 백성의 재난을 감각하지 못한다. 사물의 표면이 상징하는 물질의 메타포를 알아채지 못하는 작가의 세계관은 그저 미미한 경험과 학습의 차용일 뿐이다.

돌 위에 파편하는 폭포의 담대함, 폐를 관통하는 니코틴의 절망은 어떤 몸의 고독한 세계다. 미미한 사물에 기대어 정신을 심화하는 예술은 돌을 부수는 물의 에너지와 독극물질에 맞서는 폐세포의 초감각을 넘어서지 못하면, 폐기물처리장이 무덤이 된다.

‘너는 누구인가?’라는 질의가 속칭 비평이라면, 예술가는 예술에 대해 답해야 한다. 말과 형식을 말소하고 쌀 한 톨에 박힌 씨눈을 싹틔우는 겸허한 태도에 견줄 답이 아니면, 그저 자본에 경도하는 주식 장터의 매개물과 다를 게 뭐 있겠는가.

바람보다 먼저 눕고 일어서고 울고 웃는 바람과 풀을 노래한 김수영의 시정과 물질의 이치에 몸서리치고 있는지를, 신식가구에서도 살펴보아야 한다. 가을 공기에 타르가 기승하는 11월의 어느 날에.

전시 글 중에서

#정명택
#방석호
#송기두
#나점수
아트스페이스3갤러리

예술이란 것이 세상을 반영하는 거 같지만, 궁극적으로는 허구다. 하지만 그것은 필요한 허구다. 연탄이 타려면 빈 공간이 필요하듯이.
26/06/2025

예술이란 것이 세상을 반영하는 거 같지만, 궁극적으로는 허구다. 하지만 그것은 필요한 허구다. 연탄이 타려면 빈 공간이 필요하듯이.

일제와 미제가 공습한 평생 맛보지 못한 우아한 정취와 로맨틱한 감정들. 그리고 미스 김, 미스 박, 또는 유 마담, 필 시스터즈가 부른 의 전국적인 히트, 껌, 축구경기, 아메리칸 스타일, 블랙커피란 이름의 만용과 ...
25/06/2025

일제와 미제가 공습한 평생 맛보지 못한 우아한 정취와 로맨틱한 감정들. 그리고 미스 김, 미스 박, 또는 유 마담, 필 시스터즈가 부른 의 전국적인 히트, 껌, 축구경기, 아메리칸 스타일, 블랙커피란 이름의 만용과 쓰디쓴 후회, 죽이 또는 죽순이란 신조어, 쌍화차, 미팅, 하얀 양산, 담배 소비의 증가, 성냥을 쌓거나 부러뜨리는 나쁜 습관, 퀴즈의 발달, 참새 시리즈, 구석자리에서의 키스, 벽돌깨기. 킹 크림슨의 〈Epitaph)와 신청곡을 적을 수 있는 작은 메모지, 디제이라는 새로운 직업의 등장, 오늘은 왠쥐, 라는 느끼한 발음, 배달과 티켓, 그리고 ”여기 리필 좀 더 주세요“라는 잘못된 영어의 남용 등등...... 근대는 모더니즘은 그렇게 한국인의 삶과 정신을 개조시켰다.

문학을 읽는다는 건, 세상을 얻는 일이다. 6, 7, 8월의 독서클럽은 근대 소설에서 3권 현대 소설 한 권을 골랐다. 외세가 지배한근대라는 모더니즘의 이면에 숨어 비루한, 시궁창을 나딩군 우리들의 척박한 삶을 톺아...
25/06/2025

문학을 읽는다는 건, 세상을 얻는 일이다.
6, 7, 8월의 독서클럽은 근대 소설에서 3권 현대 소설 한 권을 골랐다. 외세가 지배한
근대라는 모더니즘의 이면에 숨어 비루한, 시궁창을 나딩군 우리들의 척박한 삶을 톺아보기로 했다.

“너무 많은 생각에 시간을 헛되이 했다. 모든 것이 허깨비 놀음(幼化) 지나지 않는다지만, 스스로를 속이는 일만 하지 않을 수 있다면 이 허깨비 놀음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으리라. 여기서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면 무...
18/06/2025



“너무 많은 생각에 시간을 헛되이 했다. 모든 것이 허깨비 놀음(幼化) 지나지 않는다지만, 스스로를 속이는 일만 하지 않을 수 있다면 이 허깨비 놀음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으리라. 여기서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면 무너져 사라질 현실이면 어떤가. 아니 어차피 스러질(moral) 것이라면 그냥 마음 놓고 자유롭게 낙하하자.” (작가노트)

조각가 박미화는 낙하한다. 인간은 형편없는 존재이기에, 불완전한 생명체이기에 상승의 이유보다 낙하의 근거가 분명하다. 그래서 작가는 오늘도 낙하한다. 낙화 지점이 궁금하겠지만 지금은 말 할 수 없다.

91년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은 멍든 몸을 이끌고 신을 부르는 무당의 전력투구와 같았다. 다르다면 신을 부르는 대신 몸의 기억을 더듬어 슬픔을 일깨우는 형상들을 불러냈다. 작가의 손에 짓이겨진 흙은 그날그날의 감성을 따라 미지의 소녀로, 사랑을 잃은 젊은 여자로, 분만의 고통으로 사는 어머니로 환생했다. 오래 전에 수장되어 화석이 된 기억의 조각들의 먼지를 털어내고 다시 빛을 비춘 것이다.

“내 기꺼이 어둠의 딸이 되리라. 내 기꺼이 너희 마음을 불편하게 하리라. 황급히 숨겨두었던 너희 그늘을 내 기꺼이 들추어 보이리라. 곱고 어여쁜 자태로 무장한 너희의 푸른 어깨에 내 기꺼이 무거운 돌을 올려놓으리라. 그래서 지금이 아니라 천년의 시간이다.” (작가 노트)

첨단의 시대에 암울한 현상을 그려내는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특별한 이상도, 고매한 이데올로기도 포함되지 않은 가장 근원적인 것, 메마른 일상에서 돌아가 쉴 수 있는 어머니의 집, 그 어머니의 체온과 심장의 고동소리를 느낄 수 있는 어머니의 등이 우리에게 필요해서다.”라고 설명한다.

누구에게나 어머니는 생명의 출발점이고 삶의 근원이다. 어머니는 주름 가득한 피부의 껍질로 존재한다. 박미화가 빚은 여자는 모든 어머니라는 분신들이다. 그래서 같이 슬프고 같이 아프다.

어느 날 작가에게 나무 한 그루가 다가왔다. 잘린 다리는 벌레에게 뜯기고 몸통은 미생물에게 분해 당한 채. 작가는 썩은 가지는 도려내고 곪은 상처를 긁어내어 겨우 몸체만 살렸다. 조각이 아닌 치유를 한 것이다.

“나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삶과 그 주변과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을 형상화한다. 전시장에 설치된 다양한 무리의 형상들은 속도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잠시 눈을 감고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라고 이야기 한다. 전혀 새로울 것도 없는 재료와 기법이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들을 불러올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작가 노트)

작가는 끊임없이 나무와 흙을 통해 누군가를 부른다. 함께 종교를 만들고 샤머니즘을 구가하고 트라우마를 밝힌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삶을 쌓아가는 작가는 자칫 경직성에 함몰될 수도 있다. 일상의 행복을 꿈꾸던 시절에는 없던 고집과 일방성이 자신을 침하시킬 수 있다. 고립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낙하를 멈추지 않는다.

야만의 시대에 믿고 의지할 곳은 없다. 형편없는 인생이기에, 오만한 존재이기에 부조리는 더욱 겹겹이 쌓인다. 하지만 ‘과거와 엄숙한 기억’만이 용서가 되는 이 어불성설의 시대에, 그래도 믿을 수 있는 건 어머니이다. 그들을 죽음의 형상으로 다시 불러 모은 것이 의도가 아니었다고 작가는 말 하지만, 결론은 그렇게 매듭이 지어지고 있다. 시간과 기억의 형상들로.

책꽂이를 정리하던 중 2년 전에 받은 전시 도록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도록은 서울대학교에서 도자를 전공한 최선혜 작가의 일곱 번째 개인전 (공간 쌀, 2023)으로 특이한 점은 작품 설명보다 자신의 삶의 안팎을 에...
16/06/2025



책꽂이를 정리하던 중 2년 전에 받은 전시 도록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도록은 서울대학교에서 도자를 전공한 최선혜 작가의 일곱 번째 개인전 (공간 쌀, 2023)으로 특이한 점은 작품 설명보다 자신의 삶의 안팎을 에세이 형식에 빌려 굴곡, 굴절된 상황을 진솔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전시를 매개로 삶의 현재를 고백하는 일종의 자전적 에세이다.

도록의 제목에서 감지할 수 있듯 작가는 도예가로서 만드는 것이 아닌, 깨뜨리는 사람임을 전제하고 있다. 작가는 현재 경남 사천시에 정착하기까지의 삼십 년에 이르는 삶의 과정을 고백하는 가운데 때로는 가족의 치부를 드러내기도 하고 작가에서 교수로, 교수에서 전업 작가로 되돌아 온 까닭, 공예 작가로서의 한계를 가감 없이 실토하고 있다.

“나는 꽤 노력해서 바구니를 잘 짜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주의했다. 완성되는 항아리 모양의 그것이 늘어날수록 공예인의 숙련에서 멀어지고자 애썼다. (중략) 자기 본연의 역할을 훌륭히 해내는 바구니나 항아리가 아닌, 나의 아픔과 외로움과 죽음에 대한 죽음을, 그러나 결코 스스로 죽을 수 없는 삶을 담는 그릇을 작업해 내고 싶었다.”

작가는 공예라는 마냥 착하고 선하기만 해야 하는, 그래서 그것에 동의하고 습관적으로 행동하는 의지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순수 예술가의 못된 자질과 지독한 에고를 몸에 되새기는 모진 행동을 서슴지 않았음을 털어놓는다.

공예 혹은 공예가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으나, 이미 국가 기관부터 ‘공예산업’, ‘공예유통’이란 미명하에 인간의 초감각적 세계를 기계 산업과 대결하게 하고, 시・공간성 대신 일정한 양산체제에 순응하도록 강요하는 현실에서, 최선혜 작가의 날 것 그대로의 고백은 설득력을 가진다.

어떤 공예가가 같거나 비숫한 모양의 물건을 반복적 행위라는 이름으로 정당성을 부여하고 그것에 의미를 두려 하지만, 이는 작은 현실에서부터 거대한 우주 공간을 넘나드는 인간의 부단한 이기적 유전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매우 순진한 자기변명인 것을 언제까지 모른 척할 것인가.

예술은 아름다움과 추함을 벌거벗은 몸뚱이에 걸치고, 세상의 부조리한 틈을 힘껏 벌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점에서 공예는 어떤 물건을 열심히 잘 만드는, 그러면서도 조형적 자세를 취해서 용도에 부가가치를 더하는 정도로 예우하면 그 정도로 충분하지 않을까.

최 작가는 밥벌이 도예가의 가파른 인생을, 아버지의 지병을 죽음으로 대체되기를 바라는 한 인간의 왜소함을, 있는 도구를 없는 것처럼 다시 만드는 도예가의 한계를 직면하고 오로지 자기 내면에 꽈리를 틀 듯 주저앉아 제대로 살기 위해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 살의 호흡을 전시 도록 에 담아냈다.

이기적인 아픔을 위해 살짝만 스쳐도 넘어져 부서지는 작품을 마주한 지금에서야 나는 예술가라고 외치면서 “진짜 작업에 미친 년‘이 되고 싶다는 말로 에세이는 끝을 맺는다.

‘존재(存在)는 존재 이전의 존재로 말미암아 존재한다.’ (중략)우주 만물은 이(理)와 기(氣)의 순리에 속한 채로 어루만지고, 움켜잡고, 집다, 문지르고, 보듬고, 빚고, 매만지고, 다듬고, 채고, 휘고, 꺾는 능...
12/06/2025



‘존재(存在)는 존재 이전의 존재로 말미암아 존재한다.’
(중략)

우주 만물은 이(理)와 기(氣)의 순리에 속한 채로 어루만지고, 움켜잡고, 집다, 문지르고, 보듬고, 빚고, 매만지고, 다듬고, 채고, 휘고, 꺾는 능동성과 닳고, 갈라지고, 부풀리고, 깎이고. 꺾이고. 흠집 나고, 구부러지고, 닳고, 터지는 피동성을 취한다. 존재는 존재 전의 존재에 의해 현상한다.

이정훈과 그의 작업은 동양적 사유 체계인 이기(理氣) 철학의 선험적 바탕에 있다. 그는 “자연 현상에는 균형과 질서가 존재한다.”를 명제로 ‘웜홀(worm hole)’의 비가시적 존재를 작업의 모태로 서사해 왔다. 블랙홀과 화이트홀의 시공간을 관통하는 웜홀은 우주의 중력과 관성력에 의해 내재하지만 현상 그 자체는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존재 너머 존재 질서이며, 어쩌면 대혼란의 카오스 우주가 세계적 질서를 이룬 코스모스 우주로 변환하는 궁극의 이치임을 이정훈은 신념화했다, 대우주의 무한 원리는 철학자 자크 라캉의 “인간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해진다.”라는 주장처럼, 기정된 우주 질서를 고스란히 수용한 것이 그의 작업 세계이며, 그것의 현재는 배꼽이나 과실의 꼭지라는 매우 단순한 미니멀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는 작가의 ‘상상계’ 혹은 ‘상징계’의 현상으로 그가 어떤 시공간에 안착하는지를 귀띔해주고 있다.

’Void_bagatelle‘는 객관적 인식 체계를 이미지 체계로의 대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플라톤의 이데아(idea) ‘감추어진 현실’을 현재성으로 드러내는 작업이면서, 이미지를 형태가 아닌 물질 그 자체로 파악하고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요소들을 모두 제거하는 과정을 띠고 있다. 이는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 말한 살균된 세계를 벗어나 자연계의 질서에 순응하는 태도와 같다. 외적 형태를 나무의 생명력에 기인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목재의 형태적 변화와 조형을 위한 물리적, 기계적 기법을 넘어, 목재 고유의 물성이 스스로를 창조한 이미지를 수행하는 것이야 말로 이정훈 작업의 실상이자 실체이다.

물질은 그것의 고유한 ‘업(業)’에 따라 ‘체(體)’로 나타난다. 배꼽은 생명을 일으키는 통로이자 살핌의 모양으로 존재한다. 관념, 의지, 의도는 업을 통해서만이 체에 이를 수 있다. 우주를 떠다니는 미립자들이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빅뱅을 일으키고 대우주를 이룬 것과 같이, 우리 앞에 놓인 그 어떤 물질도 의도한 바가 분명할 때 자기 자장(磁場)을 일으켜 체를 이룬다. 그런 맥락으로 볼 때 이정훈의 ’Void‘ 시리즈는 사소한 물질에 생명선을 매는 것에서 시작된 업과 체의 공간 덩어리이다. 그것은 생명의 모호함, 공간의 무한함, 물질의 고유함이 하나의 유기체로 존재하면서 우주의 공간 질서를 이루고 있다. 기능의 각별함을 떠나 사유의 유연함에 기인한 결과이다.

(중략)

전시 ≪Bagatelle in Void: 사소한 존재의 물질적 공간 질료≫는 존재 그 자체로 우주의 만물이 되고자 하는, 어떤 근원성이 되고자 하는 나무의 물성적 몸부림에 호응한 작가 이정훈의 순수이성에 의한 사물이다. 검은 나무 덩어리의 가슴과 옆구리를 파고드는 우주의 방울 자국에 눈을 맞추고 그 속을 살피는 가운데 희미하나마 생명의 시원을 발견하게 되는, 무한한 경이로운 세계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Void_bagatelle’, ‘Void‘는 오로지 그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업(業)과 체(體)의 순환임을, 이정훈의 우주적 몽상임을 기억해야 한다.

10/06/2025
힘없는 자에게는 힘이 폭력이고돈 없는 자에게는 돈이 폭력이고배움 없는 자에게는 지식이 폭력이고배고픈 자에게는 밥이 폭력이고,삶에는 죽음이 폭력이다.
09/06/2025



힘없는 자에게는 힘이 폭력이고
돈 없는 자에게는 돈이 폭력이고
배움 없는 자에게는 지식이 폭력이고
배고픈 자에게는 밥이 폭력이고,
삶에는 죽음이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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