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8/07/2025
신간안내💮📖
“우리 사이에서 꽃은 그대로였고
우리의 절반만 각자의 빛깔로 퇴색되고 있었다”
달리아꽃의 붉은 빛깔에서 시작된 어긋난 감각,
뒤엉킨 시간의 조각들이 다시 피어난다
권기덕 시인의 시집 『닮은 건 모두 아프고 달리아꽃만 붉었다』가 도서출판 걷는사람 시인선 126번째 시집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이번 시집에서 권기덕 시인은 죽음을 단순한 상징이 아닌 언어와 감각의 새로운 조율 방식으로 제시합니다. 죽음은 삶의 종말이 아니라, 삶을 닮은 또 하나의 질서이며 반복되는 감각의 기록입니다.
이 시집에서 삶은 더 이상 본질적인 무언가가 아닙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꽃 모양을 흉내”(「겨울 해변의 늪」) 내는 언어의 상태이자, 반복되고 어긋나는 형식입니다. “지난 계절의 이팝나무를 보면서 죽은 사람도 사람이라 국어사전을 뒤적거렸다.”(「장마」)라는 구절처럼, 살아 있음은 죽음의 반대가 아니라 죽음을 ‘닮은’ 상태로 제시됩니다. 이 닮음은 정교한 재현이 아닌, 어긋난 반복이자 실패한 흉내입니다.
또한 권기덕의 문장은 자주 주어와 술어가 맞지 않고, 시간과 논리가 단절됩니다. “트랙 위에서 그림자가 돈다 묻은 것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심장으로 변해 간다”(「오르골」)처럼, 이러한 표현은 특정한 풍경을 묘사하기보다 감각 자체의 기형적 형태를 드러냅니다. 이처럼 의도된 파열과 부조리는 오류가 아니라, 새로운 언어의 가능성을 여는 균열입니다. 독자는 바로 그 틈에서 다시 말을 시작할 가능성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처럼 『닮은 건 모두 아프고 달리아꽃만 붉었다』는 독자에게 ‘이해’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시를 읽는 일이 ‘현실’이라는 텍스트에 대한 기존의 이해를 부단히 복수화하는 생산적인 작업임을 환기시킬 뿐입니다.
이러한 시적 태도는 언뜻 모순처럼 보이지만, 바로 그 모순 속에서 시인은 죽음과 삶, 실패와 반복, 침묵과 언어가 교차하는 지점을 포착해 냅니다. 이 시집은 설명을 피하고, 완성보다는 균열 속에 머뭅니다. 말이 끝나는 자리에서 다시 말을 시작하는 감각, 그것이 『닮은 건 모두 아프고 달리아꽃만 붉었다』가 독자에게 건네는 가장 조용하고 깊은 목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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