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

시간여행 책에서 행복을 찾는 시간여행출판사입니다. 시간여행의 출간 정보와 다양?

무명에 헤매는 이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되기를…. 1980년대 불교신문에 근무하며 편집국장을 역임했던 양범수 씨가 《누가 듣는가 하늘 밖에서 허공 밟는 소리를》(시간여행)을 출간했다. 이 책은 선사들의 깨우침의 노래(...
22/09/2024

무명에 헤매는 이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되기를….

1980년대 불교신문에 근무하며 편집국장을 역임했던 양범수 씨가 《누가 듣는가 하늘 밖에서 허공 밟는 소리를》(시간여행)을 출간했다. 이 책은 선사들의 깨우침의 노래(悟道)와 열반에 이르러 부르는 게송(偈頌)을 모은 책이다. 책에 수록한 100편의 게송은 2008~2009년에 불교신문에 ‘오소자(吾笑子)의 게송 감상’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것이다. 오소자는 역자 양범수 씨의 필명(筆名)이자 호(號)다.
역자는 신라 고려-조선 50인, 중국 선사 50인의 선사들의 선시(禪詩)와 게송을 어떠한 기준을 두지 않고 선정해서 실었다고 했다. 신문에 글을 연재한 뒤 15년여의 세월이 흐른 후 글을 다시 음미해 보고 책을 낼 결심을 했다.
“연재할 때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나 다시 볼수록 선사들의 대기대용(大機大用) 활구(活句)가 가슴 깊이 새겨지고, 세월이 갈수록 소중한 자료가 될 것 같아서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둘 요량으로 편찬합니다.”
팔순을 맞은 역자는 불교계의 원로 언론인으로 한때는 출가수행자의 길을 걸었건 경험이 있어 오도송과 열반송을 심도 깊이 이해하고 해설하고 있다.

空山靜夜道心淸(공산정야도심청)
萬籟俱沈一明月(만뢰구침일명월)
無限世間昏睡輩(무한세간혼수배)
孰聆天外步虛聲(숙영천외보허성)

빈산 고요한 밤도 닦는 마음 맑은데
온갖 소리 잠겨 고요하고 달만 밝네
한없는 세상의 사람들 깊은 잠에 빠져
누가 듣겠는가, 하늘 밖에서 허공 밟는 소리를


“모든 것을 놓아버린 경계, 오직 당신만이 홀로 산속에 있습니다. 풀벌레 소리도 잠들어 버리고 달빛만 괴괴히 비칩니다. 당신도 그저 달빛을 받으며 앉아 있을 뿐, 자신이 있다는 것마저 잃어버린 듯합니다. 너무나 고요해서. 선정의 삼매에 젖어버렸습니다. 자연 속에 조용히 묻혔습니다. 아무런 생각도 없는 가운데 조용히, 아주 조용히 들려오는 천상의 노래 소리를 홀로 듣고 있습니다. 기`가 막힙니다. 홀로 듣기에는 아깝습니다. 그러나 이 순간 세상 사람들은 잠들어 버렸습니다. 누구 하나 깨어 있다면 더불어 즐길 터인데…. 참 아깝습니다.”

중국 선사들의 게송에 대해서도 촌철살인의 해설을 하고 있다.

“작년의 가난은 가난도 아니었고
금년의 가난함이 비로소 가난일세
작년에는 송곳 하나 꽂을 땅도 없었으나
금년에는 그 송곳마저 없다네”


“가진 것 하나 하나 버리다 보니 이제는 바릿대와 입은 옷이 전부랍니다. 이 정도면 마음도 다 비워버렸습니다. 송곳도 없는데 송곳 마련할 전대(錢袋)가 있을 수 없습니다. 평생을 선사로 지냈으나 세상 떠난 뒤 저금통장이 많이 나와서 상좌들이 쌈박질하는 세태에서 볼 때 선사의 면모가 눈에 선합니다. 아마도 푸른빛이 뚝뚝 떨어지는 눈을 가지셨겠죠. 과연 송곳 꽂을 땅도 없고 이제는 송곳마저 없는 자유인이 계시다면 그분은 청복淸福을 받으셨습니다. 얼마나 홀가분하겠습니까? 걸림 없는 삶이라 대도大道를 걷는 걸음이 가볍습니다.”
팔순에 접어들어 인생에 대해 초연하고 초탈한 경지에 이른 듯한 역자는 선사들의 경지에 이르러 이들과 법거량((法擧量)을 나누는 긋하다.

껍질 벗고 한계마저 초월했으니
허공이 부서짐에 그 흔적마저 없네
나무사람 박수치며 노래 부른다 릴∼날라
돌말을 거꾸로 타고 유유히 돌아가네”


“올 때 잘 와야 하고 갈 때 잘 가야 합니다. 오고 감이 사바에서의 전부입니다. 어찌하여 잘못 왔다가는 업연(業緣)의 늪 속에서 헤매다가 평생을 보내고 맙니다. 그러나 갈 때 기분 좋게 가는 길이 있습니다. 선사처럼 평생 일궈 놓았던 것을 연기처럼 날려 보내고 육신마저 부숴버렸으니 남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너무도 가볍습니다. 그래서 노래 부릅니다. 나무 옷 입고 “닐 날라”하며, 그리고 돌로 만든 부도 속으로 육신을 보냅니다. 이렇게 죽기 전에 모든 것을 알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현재에 살면서 미래를 알면 행복한 것입니다. 그것을 깨달음이라 하지요.”

무엇보다도 한권의 책이 무명(無明)에 헤매는 수행자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되기를 바라는 역자는 때마침 역자는 팔순을 맞아 의미를 더한 듯하다. 그래서 가족을 향해서도 “평생 철없는 남편을 묵묵히 뒷바라지 해준 아내 김영선 여사와 사랑하는 아들 양지석, 며느리 이희인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고 밝히고 있다.
역자 양범수(梁汎洙) 씨는 1980년 5월부터 1994년 4월까지 불교신문 근무했으며 취재 차장과 부장을 거쳐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역서로 《금강경》, 《부모은중경》, 《아미타경》, 《신주팔양경》, 《관세음보살보문품》 등이 있다.

무명에 헤매는 이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되기를….

1980년대 불교신문에 근무하며 편집국장을 역임했던 양범수 씨가 《누가 듣는가 하늘 밖에서 허공 밟는 소리를》(시간여행)을 출간했다. 이 책은 선사들의 깨우침의 노래(悟道)와 열반에 이르러 부르는 게송(偈頌)을 모은 책이다. 책에 수록한 100편의 게송은 2008~2009년에 불교신문에 ‘오소자(吾笑子)의 게송 감상’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것이다. 오소자는 역자 양범수 씨의 필명(筆名)이자 호(號)다.
역자는 신라 고려-조선 50인, 중국 선사 50인의 선사들의 선시(禪詩)와 게송을 어떠한 기준을 두지 않고 선정해서 실었다고 했다. 신문에 글을 연재한 뒤 15년여의 세월이 흐른 후 글을 다시 음미해 보고 책을 낼 결심을 했다.
“연재할 때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나 다시 볼수록 선사들의 대기대용(大機大用) 활구(活句)가 가슴 깊이 새겨지고, 세월이 갈수록 소중한 자료가 될 것 같아서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둘 요량으로 편찬합니다.”
팔순을 맞은 역자는 불교계의 원로 언론인으로 한때는 출가수행자의 길을 걸었건 경험이 있어 오도송과 열반송을 심도 깊이 이해하고 해설하고 있다.

空山靜夜道心淸(공산정야도심청)
萬籟俱沈一明月(만뢰구침일명월)
無限世間昏睡輩(무한세간혼수배)
孰聆天外步虛聲(숙영천외보허성)

빈산 고요한 밤도 닦는 마음 맑은데
온갖 소리 잠겨 고요하고 달만 밝네
한없는 세상의 사람들 깊은 잠에 빠져
누가 듣겠는가, 하늘 밖에서 허공 밟는 소리를


“모든 것을 놓아버린 경계, 오직 당신만이 홀로 산속에 있습니다. 풀벌레 소리도 잠들어 버리고 달빛만 괴괴히 비칩니다. 당신도 그저 달빛을 받으며 앉아 있을 뿐, 자신이 있다는 것마저 잃어버린 듯합니다. 너무나 고요해서. 선정의 삼매에 젖어버렸습니다. 자연 속에 조용히 묻혔습니다. 아무런 생각도 없는 가운데 조용히, 아주 조용히 들려오는 천상의 노래 소리를 홀로 듣고 있습니다. 기`가 막힙니다. 홀로 듣기에는 아깝습니다. 그러나 이 순간 세상 사람들은 잠들어 버렸습니다. 누구 하나 깨어 있다면 더불어 즐길 터인데…. 참 아깝습니다.”

중국 선사들의 게송에 대해서도 촌철살인의 해설을 하고 있다.

“작년의 가난은 가난도 아니었고
금년의 가난함이 비로소 가난일세
작년에는 송곳 하나 꽂을 땅도 없었으나
금년에는 그 송곳마저 없다네”


“가진 것 하나 하나 버리다 보니 이제는 바릿대와 입은 옷이 전부랍니다. 이 정도면 마음도 다 비워버렸습니다. 송곳도 없는데 송곳 마련할 전대(錢袋)가 있을 수 없습니다. 평생을 선사로 지냈으나 세상 떠난 뒤 저금통장이 많이 나와서 상좌들이 쌈박질하는 세태에서 볼 때 선사의 면모가 눈에 선합니다. 아마도 푸른빛이 뚝뚝 떨어지는 눈을 가지셨겠죠. 과연 송곳 꽂을 땅도 없고 이제는 송곳마저 없는 자유인이 계시다면 그분은 청복淸福을 받으셨습니다. 얼마나 홀가분하겠습니까? 걸림 없는 삶이라 대도大道를 걷는 걸음이 가볍습니다.”
팔순에 접어들어 인생에 대해 초연하고 초탈한 경지에 이른 듯한 역자는 선사들의 경지에 이르러 이들과 법거량((法擧量)을 나누는 긋하다.

껍질 벗고 한계마저 초월했으니
허공이 부서짐에 그 흔적마저 없네
나무사람 박수치며 노래 부른다 릴∼날라
돌말을 거꾸로 타고 유유히 돌아가네”


“올 때 잘 와야 하고 갈 때 잘 가야 합니다. 오고 감이 사바에서의 전부입니다. 어찌하여 잘못 왔다가는 업연(業緣)의 늪 속에서 헤매다가 평생을 보내고 맙니다. 그러나 갈 때 기분 좋게 가는 길이 있습니다. 선사처럼 평생 일궈 놓았던 것을 연기처럼 날려 보내고 육신마저 부숴버렸으니 남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너무도 가볍습니다. 그래서 노래 부릅니다. 나무 옷 입고 “닐 날라”하며, 그리고 돌로 만든 부도 속으로 육신을 보냅니다. 이렇게 죽기 전에 모든 것을 알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현재에 살면서 미래를 알면 행복한 것입니다. 그것을 깨달음이라 하지요.”

무엇보다도 한권의 책이 무명(無明)에 헤매는 수행자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되기를 바라는 역자는 때마침 역자는 팔순을 맞아 의미를 더한 듯하다. 그래서 가족을 향해서도 “평생 철없는 남편을 묵묵히 뒷바라지 해준 아내 김영선 여사와 사랑하는 아들 양지석, 며느리 이희인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고 밝히고 있다.
역자 양범수(梁汎洙) 씨는 1980년 5월부터 1994년 4월까지 불교신문 근무했으며 취재 차장과 부장을 거쳐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역서로 《금강경》, 《부모은중경》, 《아미타경》, 《신주팔양경》, 《관세음보살보문품》 등이 있다.

엮은이 : 양범수
오소자(吾笑子)는 필명이자 호. 1980년 5월부터 1994년 4월까지 불교신문 근무했으며 취재 차장과 부장을 거쳐 편집 국장을 역임했다. 역서로 《금강경》, 《부모은중경》, 《아미타
경》, 《신주팔양경》, 《관세음보살보문품》 등이 있으며 팔순을 맞아 한국과 중국의 선사들의 게송 《누가 듣는가 하늘 밖에서 허공 밟는 소리를 - 오소자의 선시 감상》으로 출간했다.

글.사진 양범수|쪽수 216 |발행처 시간여행|발행일 2024년 09월 23일
정가 15,000원|판형 150*205 | ISBN 979-11-90301-32-9 (03220)
9월 25일 배본합니다.

#오소자 #양범수 #불교께달음의노래 #게송 #게송

수행하듯 살다 가신 님, 매화꽃이 만발하였다. 수행에는 간절함 말고는 별다른 요령이 없구나  운암 김성숙의 삶을 “물 위에게 그림자 진 구름같이 젖지 않는 구름, 아무리 물결이 뒤집혀도 젖을 수 없는 구름”이요, “...
22/02/2024

수행하듯 살다 가신 님, 매화꽃이 만발하였다.

수행에는 간절함 말고는
별다른 요령이 없구나
운암 김성숙의 삶을 “물 위에게 그림자 진 구름같이 젖지 않는 구름, 아무리 물결이 뒤집혀도 젖을 수 없는 구름”이요, “거리 복판에, 정치의 복판에, 사상의 복판에 서 있는 바위, 아무리 뒤흔들어도 움직일 수 없는 바위”라고 노산(鷺山) 이은상(李殷相) 시인은 칭송했다. 한평생 지조와 절개를 지키며 살았던 운암 김성숙 선생이기에 에게 받을 수 있는 찬사일 것이다.
운암 김성숙 선생은 1898년 3월 10일 평안북도 철산군(鐵山郡) 서림면(西林面) 강암동(江岩洞)의 한 농가에서 부친 김문환(金文煥)과 모친 임천(林川) 조씨(趙氏) 사이에서 3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선생은 할아버지에게서 한문을 익혔다.
삼촌으로부터 독립군의 소식을 전해 들으면서 성숙은 구국의 의지를 불태웠다. 결국,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하고 18세가 되자 신흥군관학교에 입학하고자 집을 나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만주 봉천으로 가서 독립운동가가 되려는 꿈은, 마침 땅을 판 돈을 훔쳐 품 안에 넣고 집을 떠나 함경도 원산까지 갔으나, 그곳에서 어떤 힘센 어른에게 붙잡혀 목적지를 추궁받은 끝에 길이 막히고 말았다.
그는 주인에게 돈을 달래서 품 안에 간직하고 서강사라는 절을 찾았다. 절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도망갈 기회를 엿보다가 새벽에 절을 나서는데, 마침 산등성이에서 경기도 양평 용문사 풍곡 신원 스님을 만났다.


우리 민족의
독립도 다르지 않으리
그 길로 김성숙은 스님을 따라 양평 용문사로 가서 승려가 되었다. 독립군이 되겠다고 집을 나섰다가 스님이 된 것이다. 그 후, 봉선사에서 월초스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으며 만해 한용운 스님과 의암 손병희 선생과 교류한 이야기가 당시 시대 흐름에 분노하게 한다. 출옥하고 난 후, 봉선사 큰스님의 권유에 따라 운허 스님과 법연을 쌓는다.
일제의 감시를 피해 봉선사에 머물던 선생은 김봉환, 김규하, 김정완, 윤종묵, 차응준 등 승려 5명과 함께 금강산 유점사를 거쳐 압록강을 건너서 중국 북경으로 건너가서 독립운동에 투신한다.
1923년 북경의 민국 대학에 입학한 선생은 정치학과 경제학을 전공하면서 선진강국들의 정치정책과 경제정책을 공부하였다. 만국 대학 재학 당시 선생은 고려유학생회를 조직해 회장으로 활동하는가 하면, 창일당(創一黨)을 조직해 《혁명》이라는 기관지를 발간했다.
이후 선생은 일본제국의 수뇌부를 암살하는 독립운동단체인 조선의열단에 가입하여 활동하다 의열단 선전부장에 선출된 선생은 《혁명동맹》의 주필을 맡아 활약했다. 그리고 유학한국혁명청년회(留學韓國革命靑年會)를 조직하고 기관지 《혁명행동(革命行動)》을 발간하였다. 8월 선생은 중국공산당의 광주봉기(廣州起義)에 참여하였다. 같은 해 대한독립당촉성회(大韓獨立黨促成會) 광동지구 분회를 조직하는 데 참여하였다. 이후 선생은 재중국조선 청년동맹을 직접 조직하고 항일운동에 앞장섰다.
반제동맹(反帝同盟)에 가입한 뒤 기관지 《봉화(烽火)》와 잡지 《반일민중(反日民衆)》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는가 하면, 중국군 19로군(十九路軍)에 종군하기도 하였다. 선생은 중국 각지의 독립운동가들을 모아 조선민족해방동맹을 조직한 뒤 선전부장에 취임하였다. 이듬해에는 조선민족전선연맹(朝鮮民族戰線聯盟)을 결성하고 선전부장에 취임했다.
해방 이후 선생의 생활이 어떠했는지 1955년 2월 23일 자 일기는 능히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오늘 200원을 꾸어 쌀을 사 왔다…… 내가 독립운동을 하고 정치를 한다고 돌아다니면서도 가족을 굶기며 살고 있구나.”
3·15 부정선거에 따른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은 붕괴하였으나 장면 정부에서도 선생은 통일 사회당을 창당해 야당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5.16 군사 정변 이후 군정에 의해 공포된 특별 소급법 ‘특수죄처벌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당시 선생은 대한민국임시정부 동지인 장건상과 함께 체포돼 10개월간 옥고를 치러야 했다. 군사혁명재판소의 집행유예 판결로 석방되었다.
통일사회당 창당에 발기인으로 참여하였고, 대표위원으로 추대되었다. 이후 통일 사회당은 신한당에 흡수되었다. 선생은 신한당 발기인으로 참여하였고, 정무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다. 신한당과 민중당의 통합으로 신민당이 창당되자 선생은 신민당에 입당하였으며 운영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이듬해에는 신민당 지도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추위가 한 번 뼈에 사무치지 않으면
어찌 코를 찌르는 매화 향기를 얻을 수 있으리오
선생은 71세의 일기로 1969년 4월 12일 별세하였다. 선생의 장례는 대한민국 정부의 발표에 따라서 사회장으로 봉행 되었다. 조계사에서 봉행 된 영결식에는 국회부의장, 신민당 총재, 총무처 장관 등이 참석해 조의를 표했다.
선생은 경기도 파주 조리면 장탄리에 묻혔다. 승려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선생의 장례가 화장이 아니라 매장으로 봉행 된 것은 선견지명이 있었던 도반 운허 스님의 주장에 따른 것이다.
선생이 별세한 뒤 1년 뒤, 선생의 묘비를 세웠다. 묘비명도 노산 이은상 시인이 지었다.
운암 김성숙 선생은 비바람이 앞을 가리는 여정 속에서도 부정과 불의에 굽히지 않고 지조(志操)와 절개(節槪)의 삶을 살다 가셨다. 선생께서는 “추위가 한 번 뼈에 사무치지 않으면(不是一番寒徹骨) 어찌 코를 찌르는 매화 향기를 얻을 수 있으리오(爭得梅花撲鼻香)”라는 가르침을 몸소 보이셨으니, 비록 선생은 가고 없으나, 애오라지 조국의 앞날만을 생각한 선생의 민족 얼은 후대에 세세생생 계승되리라.

목 차

제1화. 설원의 발자국을 따라서 7

제2화. 가출에서 출가로 31

제3화. 용문사 은행나무 아래서 57

제4화. 봉선사 가는 길 81

제5화. 월초스님과의 법거량 103

제6화. 친일과 항일의 사이 123

제7화. 의암 손병희의 가르침 139

제8화. 만해에 떠서 흘러가는 만월 151

제9화. 봉선사 사하촌에 울려 퍼진 독립만세 165

제10화. 서대문 형무소 창살에 내리는 햇살 183

제11화. 일왕의 생일, 독립운동가의 생일 195

제12화. 수행자의 길, 혁명가의 길 215

제13화. 형제지간, 사제지간 231

제14화. 국사와 불사 247

제15화. 독립운동가의 마지막 가는 길 265

부록. 봉선사 소개 289
사찰 안내 291
운암(雲巖) 김성숙(金星淑) 행장 294


,_봉선사와_태허스님

#글,그림_정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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