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과 산

월간 사람과 산 휴머니즘과 알피니즘 구현을 목표로 1989년 창간한 산악 아웃도어 언론/매체/미디어로서 사람의 건강 행복 증진과 산의 생태환경 보호로 지속가능한 지구를 아름답게 만드는게 목표입니다.

월간 은 1989년 창간 이래 산악문화 창달을 위해 외길을 걸어왔습니다. 우리의 산줄기, 1대간 9정간의 백두대간을 되찾고자 지속적으로 노력해왔습니다. 그리고 한국산악문학상을 제정, 이 땅에 산악문학의 꽃을 피우는데 앞장 서 왔습니다. 또한 황금피켈상아시아, 골든클라이밍슈즈상 등을 제정하여 아시아 산악발전을 위해 혼신의 힘을 쏟고 있습니다. 알피니즘과 휴머니즘의 기치 아래 발전해 온 은 앞으로도 보다 유익하고 알찬 내용으로 1500만 등산인의 길잡이가 되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사설(社說) ㅣ감사원, 이인정씨 국민훈장 산림청 감사하고, 문화체육관광부, 체육훈장 추진 중단하라.○객관적 산악발전 유공 실적 부재와 부도덕 부적격 인사에게 훈장은 어불성설산림청은 2022년 10월 이인정씨에게 산림...
12/09/2025

사설(社說) ㅣ감사원, 이인정씨 국민훈장 산림청 감사하고, 문화체육관광부, 체육훈장 추진 중단하라.

○객관적 산악발전 유공 실적 부재와 부도덕 부적격 인사에게 훈장은 어불성설

산림청은 2022년 10월 이인정씨에게 산림사업 및 보호유공자 명분으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 했다. 모란장은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사회 등 분야에 뚜렷한 공적을 세워 국민의 복지향상과 국가 발전에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5등급 중에서 2등급 국민훈장이다.

1등급 무궁화장에 이은 2등급 모란장은 건국훈장 대통령장급에 해당하는 고위급 훈장이다.민족자본 형성에 기여한 독립운동가이며 유한양행 설립자 유일한 박사는 5등급 중에서 3등급 독립장을 받았지만 이인정씨는 그보다 높은 2등급 모란장을 받았다.


○실체 없는 아시아산악연맹은 이인정 대외 활동용 단체 불과

산림청은 훈장에서 이인정씨의 소속을 아시아산악연맹으로 하였다. 이 단체는 이름이 거창한 만큼 그럴듯한 홈페이지에 연간사업을 기재하거나 건강보험 가입 직원 1명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정체불명의 이 단체를 장기간 회장 타이틀을 내세운 이인정씨 개인이 대외 활동을 위한 임의 단체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훈장을 수여 하는 소속 단체를 아시아산악연맹으로 산림청은 특정하였다. 이것만 보더라도 산림청은 이인정씨의 공적 조서에 대하여 진지하게 심사하지 않았음을 예상할 수 있다.


○감사원, 이인정 국민훈장 로비 의혹 산림청을 감사해야

이처럼 산림청은 서훈 대상자의 공적을 조사하고 검증해야 할 기관이지만 이를 나태하게 했다. 관련 직원은 당연히 문책받아야 한다. 대체 이인정씨의 공적이 무엇이기에 독립운동가 유일한 박사(3급)보다 더 높은 국민훈장 2급의 훈장을 받는단 말인가. 본지는 ‘훈장 로비’를 산림청에 했다는 여러 소문과 제보가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이씨는 경기도 가평의 자신의 풀xx 별장에 정치 사회 언론의 다양한 사람을 불러들여서 접대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훈장 로비’설에 대해 산림청은 정확히 답변해야 한다. 아울러 감사원은 이 훈장 사건에 대하여 산림청을 특별 감사하여야 한다.

국민훈장은 “뚜렷한 공적”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으로 명시한다. 이것은 절대적인 우수한 가치성, 모범 공익성, 희소성, 상대적 우위성 등으로 평가하여 공평성을 보장해야 누구나 납득을 한다. 그러나 산림청은 과연 이 기준을 이인정씨에게 적용했는지 아니면 추상적으로 ‘혁혁한 공로’라고 평가했는지 답해야 한다.


○자칭 산악계 ‘대부’ 이인정측 제공 보도자료

“산악계 ‘대부’ 이인정 회장은 1980년 마나슬루 원정대 대장으로 한국 최초의 등정 성공을 이끌었으며 국립산악박물관과 국립등산학교 설립에 기여했다. 2005~2016년 대한산악연맹 회장을 지냈고 현재 아시아산악연맹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전문산악인 출신으로 한국인 최초로 국제산악연맹 명예 회원으로 추대됐으며 국제클라이밍 대회 한국 유치와 대한체육회 이사와 대한체육회 남북체육교류위원장 활동도 해왔다.
10여 년 동안 한국등산학교 교장역임, 7년간 주한네팔영사 역임, 그리고 2010년부터 아시아산악연맹을 이끌어오면서, 국내 산악문화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체에 걸쳐 산악문화 교류에 혁혁한 공을 세운 공로로 이번 2022년 산의 날에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자칭 “산악계 대부”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실체도 없는 유명무실한 아시아산악연맹을 내세워 아시아 전체에 산악문화 교류에 공을 세웠다고 자화자찬이 목불인견이다.

실제 산악계 대부는 최홍건 전 한국산악회장이다. 그는 서울법대 산악부부터 산업자원부 차관, 공공기관장 재직 이후에도 평생 산악운동발전에 헌신한 훌륭한 분이다. 후배 산악인들에게 도덕적인 산악 철학을 모범적으로 정립을 하였다. 특히 어려운 형편의 산악인 지원과 산악인 사고시 가용한 네트워크를 총동원하여 묵묵히 수습한 분이다. “산악인은 자신의 선행이 언론에 드러난다면 산악인이 아니다” 라는 미덕을 몸소 실천하였다.

더불어 산악계를 위하여 조용히 막대한 지원을 한 조창권 전 한샘 부회장이 있다. 바로 이러한 분들이 산악계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훈장을 받는 것이 옳은 것이다.

○이인정 국민훈장 모란장 부적합 이유

이인정씨가 국민훈장 수훈자로 부적합 이유를 본지가 취재한 몇가지 내용을 인용한다.

▶이인정씨 성추행 폭언 폭행 수년간 상습범

“이씨는 수 많은 여성산악인 후배들을 성추행 했고 후배 산악인에게 따귀 때리기 폭행 폭언을 상습적으로 한 악질인데 대부로 둔갑했다. 당사자들이 수치심으로 괴로워할 때 이를 수년간 목격하고도 L재벌 사위에 빌붙어 방관한 이인정 측근 꼬봉, 똘마니들도 한통속이다.” = 히말라야 8천미터 14개 등정자

“이인정씨가 그토록 산악계 발전에 기여를 했다고 하는데 명백한 허위 사실이다. 그러면 왜 지금 한국산악계는 1년에 히말라야 원정대 1팀 조차도 조직이 안되고 지리멸렬 했나. 한국산악계를 몰락으로 이끈 것은 이인정씨가 대한산악연맹, 한국산악회, 한국대학산악연맹 같은 산악단체를 사유화 하였기 때문이다.” = △△대학산악부 회원


▶대한산악연맹 무법천지 혼란 사태 갈등 조정 중재 부재

“이인정씨의 독재적 행태는 산악계를 분열과 갈등을 악화 시켰다. 7년전 대한산악연맹은 극심한 혼란으로 대한체육회로부터 관리단체로 지정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 사건의 발단은 이인정측이 선거에 패한 것이 주요 원인이다.
이인정씨 집권 12년동안 산악연맹 회장 선거는 밀실에서 20명도 채 안되는 각시도 회장들이 박수로 통과한 것이었다. 그러나 선거제도를 변경하여 대한산악연맹 회장 선출 방식이 각 분야별 선거인단110명이 최초의 민주적인 선거로 개혁세력이 장기집권한 이인정측 후보(노익x 여론조사기관대표)를 꺾었다.
선거에 패한 이인정측(선봉장 이철x는 서울도봉구의회의장 재직시 인허가 댓가로 1억8천만원 수뢰하여 처벌 받은 자)은 신집행부에 반격을 가하여 김종길 회장과 전임원 23명을 탄핵했다. 탄핵을 했으면 연맹 정관상 60일 이내에 회장 선거를 해야 하지만 이 탄핵은 불법이었기 때문에 대한체육회에서 회장 선거를 승인하지 않았다. 2년 6개월 이상 집회 시위, 민.형사 고소고발 재판 등으로 대한산악연맹은 혼란이 지속되었지만 당시 대한체육회 이사 이인정씨는 단 한번도 양측을 중재하거나 수습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산악계 대부든 원로든 갈등 해소와 통합을 하는 성숙한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했다. 전혀 그렇지 못한 자가 무슨 산악계 발전에 기여했다고 훈장이란 말인가.” = 대한산악연맹 전 부회장


▶국고횡령, 청소년참가자 성추행 재판 사과와 재발방지 대신 숨기기 급급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매년 2억원을 대한산악연맹의 해외 청소년오지탐사대에 14년간 지원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중단이 되었고 임원들조차 그 영문을 알지 못했으나 문체부 특감에서 비리를 적발한 것이다. 매년 2억원씩 3년간 6억원을 푸x여행사에 해외행사를 진행한 것처럼 허위로 매출 서류를 조작하여 국고를 횡령하는 비리를 저질렀다. 문체부는 특감 결과 보고서에서 을 명시하였다.

또 다른 사건은 이 청소년오지탐사대(단장 노익x)에서 리더가 참가 청소년을 성추행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어 형사처벌을 받은 사건이 발생했다.

이러한 엄청난 사건이 모두 대한산악연맹 이인정 회장이 현직일 때 일어난 사건이다.
그러나 이인정 회장은 기관의 장으로서 당연히 해야할 공개 사과하거나 재발 대책을 발표 하지 않았고 숨기기에 비빴다. 이런 자는 대부가 아니라 졸부인데 국민훈장 모란장은 어불성설이다. = 지방산악연맹 전 회장

이처럼 이인정씨가 개인적으로 또 기관의 장으로 그 수준이 공익적 마인드가 저급하고 파렴치한 지경인데 국가의 최고 명예인 훈장을 수여함은 언어도단이다.

○예산낭비 산악박물관 국립등산학교 설립기여는 상이 아니라 벌을 받아야

산악박물관 국립등산학교 설립에 기여했다는 이인정씨측의 주장은 자기 무덤 파는 격이다.국내용 히말라야 14좌 8천미터 이벤트를 위해 개설한 산악박물관과 국립등산학교는 현재 예산낭비 대표 사례 시설로 당장 폐쇄해야 할 흉물이다. 세계적 산악인 배출 운운하며 국고를 탕진한 것은 대국민 사기극이다. 기재부는 이 부분을 살펴서 산림청 예산이 허튼 곳으로 새지 않도록 하길 바란다.
‘세계적인 산악인’이라면 평가의 기관, 단체, 기준, 전문성, 객관성을 보장하여야 한다. 그러한 절차적 정당성도 전혀 없이 추상적으로 ‘국내용 세계적 산악인’을 만들어서 국민 혈세를 투여함은 훈장이 아니라 엄중한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외신은 물론 해외 전문지에 단 한 줄도 안 나오는데 세계적인 산악인으로 포장함은 사기극이나 다름 아니다.
이인정씨는 자신이 산악인 박영석 엄홍길을 키웠다고 오랫동안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녔다.'국내용 세계적인 산악인’ ‘국위선양’ 그 부도덕한 결과가 현재 한국산악계가 몰락을 자초한 원인이다. 어느 사회단체이건 도덕을 무시하는 무리가 독재를 일삼고 국고를 횡령하는 조직은 쇠락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한국 산악계의 현실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이인정씨 체육훈장 청룡장 추진 당장 중단 해야

산악계에서는 지난해부터 이인정씨에게 체육훈장 최고등급 청룡장 수여에 대해 회자되었다. 그 시점이 조만간 실행된다는 언급이 요즘에 부쩍 많다. 이게 사실이라면 문체부는 당장 중지해야 한다. 그 이유는 위의 산림청 국민훈장 모란장에서 이미 밝혀진 바와 같이 산악계가 몰락하고 부도덕 불명예로 전락하게 한 장본인이 체육훈장 최고 청룡장 서훈 추진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체육훈장은 5등급으로 그중에서 최고등급은 청룡장이다. 올림픽 금메달 2개 혹은 올림픽 금은동 메달을 따는 정도의 공로가 있으면 수훈을 한다. 산악 등반의 경우 히말라야 8천미터 14개봉을 등정한 경우가 해당된다. 이상의 경우 명백한 정량적인 성적과 점수가 평가 기준이 된다.
이인정씨는 여기에 해당 되지 않기에 정성적인 평가를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청룡장은 30년 이상 국가체육발전을 위해 기여한 자 또는 전문체육 발굴·육성, 국민체육 활성화 등 체육을 통한 국가 사회발전에 기여한 자 혹은 국위선양 선수를 지원 양성한 유공자라고 규정한다.

문체부는 이인정씨의 체육훈장 공적조서가 접수된다면 산악 전문언론사, 산악시민사회단체(단, 이인정씨 수하 대한산악연맹, 한국산악회, 한국대학산악연맹 제외)에 그 공적 사실을 자문 받기 바란다.



○선한 산악 이미지로 부귀영화 누린 L재벌그룹 사위는 야인으로 가라

이인정씨는 L재벌그룹 사위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정치 사회 언론에 막강한 인맥이 있다. 숭고한 산악의 선한 이미지와 콘텐츠로 그는 대외적으로 부귀영화를 다 누렸다. 그 스스로 혹은 그의 측근들은 ‘산악계 대부’라고 하지만 절대 다수 산악인들은 그를 산악계 몰락의 장본인, 부도덕한 노욕이 넘치는 자라고 비판한다.
신정부 이재명 정부는 ‘진짜 대한민국’이 슬로건이다. 이인정씨는 더 이상 산악계에 출몰하지 마시고 조용히 자숙하며 야인으로 인생을 마무리 하길 바란다. 늙어서 물러날 때를 모르는 사람의 말로는 비참함이 지척에 있다.
이씨는 새로운 세력에게 강제로 밀려나기 전에 스스로 그간의 잘못을 사죄하고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 그것이 산악 사필귀정 “빛나는 산 혁명”을 희망하는 대다수 산악인들이 이씨에게 보내는 마지막 선한 마음일 것이다. 이인정씨가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면 산악계는 르네상스가 될 것이다.



1989년 창간 2025.09월호 온라인판 사설입니다.

(계속하여 ‘이인정 사이비 산악왕국 대해부’가 특집기사로 연재됩니다. 관련 제보를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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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 산악발전 유공 실적 부재와 부도덕 부적격 인사에게 훈장은 어불성설 산림청은 2022년 10월 이인정...

한국산서회와 함께하는 인문기행 | 익산ㅣ  1300여년 전 백제와 무왕을 만화경처럼 보여주는 왕도필자 박기성은 (사)한국山書會 회장이다. 서울大 문리대OB산악회장으로 〈사람과 산〉 편집장을 지냈다. 저서로 「삼국사기...
03/09/2025

한국산서회와 함께하는 인문기행 | 익산

ㅣ 1300여년 전 백제와 무왕을 만화경처럼 보여주는 왕도

필자 박기성은 (사)한국山書會 회장이다. 서울大 문리대OB산악회장으로 〈사람과 산〉 편집장을 지냈다. 저서로 「삼국사기의 산을 가다」, 「명산」, 「울릉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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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도시 익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익산토성 주차장은 익산이 백제 역사유적지를 넘어 세계적으로 내놓을 만한 오랜 삶터임을 자랑하고 있었다. 오금산(125m)에 있다고 오금산성, 나당전쟁 기간 ‘고구려 유민들의 수용소(?)’ 보덕국 소재지의 성이라 하여 보덕성으로도 불리는 야산을 오르니 잔디 푸른 토성벽과 울창한 낙락장송이 평화롭다.
둘레 690m의 중간 크기 성은 판축(版築)으로 쌓은 것이었다. 2017 년 발굴조사에서 건물터, 수도(首都)라는 뜻의 “수부(首府)”가 찍힌 기와, 집수정(集水井) 등이 나왔는데 성 안 물이 빠져나가는 남문터 일대는 나중에 석축으로 보강했음이 드러나 그렇게 복원하는 중이다. 고려시대까지 이용되었음을 증거하듯 성문 좌측 문확(門確)돌이 보인다.

산 위 전망대에서 보았던 ‘서동생가(薯童生家)터’ 안내 그림 속의 마룡지로 내려가다 논배미 가운데 있었던 용샘을 들른다. 새로 지은 사모정 아래 화강암으로 네모 반듯 테두리를 두른 우물, 판자로 뚜껑을 해 덮어 놓았는데 열어보니 꽤 깊다. 안내문에서는 서동이 어렸을 때 이용했던 샘이라고 한다.
5년 전이라면 샘 옆 도랑을 따라 내려가면 되었을 마룡지를 빙돌아 주차장을 찾아간다. 〈디지털익산문화대전〉 ‘서동생가터와 마룡지’를 보면 꾸며놓기 전의 시골스런 옛모습이 잘 나와있다(2020년 4월 midiaway 제작). 이른 봄의 항공사진으로 마룡지와 용샘들, 익산토성과 미륵산을 한 앵글에 담았다.



“〈삼국유사〉무왕(武王)조에는, 무왕의 어머니가 (과부가 되어 서울) 남쪽 연못가에 살던 중 연못의 용과 통하여 아들을 낳고 이름을 서동이라 하였다 한다. 여기서 ‘남쪽 연못’이 바로 이곳 마룡지다. 서동의 어릴 적 이름 맛동과 ‘용의 연못’을 합치면 용이 된 서동의 연못이라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서동생가터 안내판 내용이다.

“익산에 무왕의 왕궁이 있었다는 속설에 대한 이유가 바로 나왔네. 무왕의 아버지가 여기 호족의 딸과 혼인했고 둘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왕이 되었다 아니겠어? 이전의 법왕과 혜왕은 둘 다 재위 일이년이었을 정도로 왕권이 약했는데 새 왕은 외가인 익산 세력과 손잡고 왕권을 강화, 대내외로 힘을 떨쳤는 바 그 일환이 여기 왕궁을 만든 거겠지. 전설에서 놀라운 점은 ‘마서(薯)’자의 마가 맛동의 마는 물론 마파람의 마로도 해석된 다는 거야. 그리고 샘은 흔히 여성의 음부를 의미하는바 박혁거세 신화에는 용이 알영(閼英)의 우물에 나타나 아이를 탄생시켰다고 했어. 여기서는 무왕의 아버지 혜왕이 용샘에 나타나 무왕을 태어나게 했는데 그 남쪽에 이 저수지가 있었다지.”

전설은 고고학적으로도 뒷받침된다. 2023년 익산시가 서동생가 터 유적 정비를 하는 가운데 북주(北周 557~581)의 동전 오행대포(五行 大布) 다섯 닢이 든 항아리를 발견했던 것이다(〈연합뉴스〉). 무령왕릉에서 양나라 오수전(五銖錢)이 나온 것처럼 백제는 원래 무덤에 동전을 넣는 풍습이 있었다.

“무왕이 여기서 태어나 왕궁리에서 살다가 쌍릉에 묻혔다… 와! 익산 정말 대단한 고을이네요. 역사적 인물의 중요 개인사가 다 익산에 있어요.”

마룡지는 처음 와본다는 이가경씨의 탄성이다. 전설과 자연, 유적과 증거가 화문석처럼 짜여있는 익산은 정말 유네스코 세계유산 도시가 되고도 남을 것 같다.
여나므 그루 왕버들이 솜털 같은 꽃가루를 날리는 데크길을 따라 연못가를 도노라니 ‘무왕이 꿈꾸는 새로운 세상’ 이야기가 그림동화 연작으로 나그네를 맞이한다. 여름이면 홍련(紅蓮)이 지천이라던 연못은 그러나 어찌 된 셈인지 연근 수확 다음날처럼 썰렁~ 하릴없이 물결만 치고있다. 그래 다시 ‘그림 이야기’로 눈길을 돌리자 다섯째 대목… 선화공주가 신라 궁궐을 떠나면서 가져온 금덩어리를 꺼내놓으매 서동이, “이건 내가 마 캐던 뒷산에 무더기로 쌓아둔 거랑 같은 거네” 하는 부분이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익산의 옛이름 금마저(金馬渚)와 저 오금산(五金山)의 어원이 또 튀어나 온다.

열넷째 대목은 미륵사 창건 설화였다. 신라와 전쟁을 벌여 잃어버린 땅을 거의 다 찾은 무왕이 그 와중에 다치고 죽은 백성들을 위로할 방법을 생각하다 사자사(師子寺) 가는 길 큰 못에서 미륵삼존(彌勒三尊)을 만났는데 옆에 있던 왕비가 여기 절을 세우면 좋겠다 하여 시작됐다는 것이었다.
백제 30대 임금 무왕(600~641)은 이름처럼 싸움을 잘 한 임금이었다. 당시 백제는 26대 성왕의 패사(敗死)를 전후하여 한성(漢城)과 한남정맥 동쪽, 진천·옥천을 잃고 수세에 몰려 있었는바 무왕의 등장으로 잃어버린 영토를 상당히 회복했으니 바로 함양 일대—속함(速含), 앵잠(櫻岑), 기잠(歧岑), 봉잠(烽岑), 기현(旗懸), 용책(冗柵) 등 6성이 었다. 운봉 부근의 아막산성(아영면)을 공격하고 마천성(馬川城)을 개축했다고도 한다. 이로써 재기의 발판을 마련, 다음 임금 의자왕 때 미후(獼猴) 등 40여성의 항복을 받고 대야성을 함락할 수 있었으나 “잃어버린 땅을 거의 다 찾은”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백제와 신라는 다시 전쟁 모드에 접어들었다. 그래 국가 총동원 체제를 세우고 부처님의 힘으로 적군을 물리치고자 대규모 불사(佛事)를 일으켰는바 미륵사 창건은 그 한 방편이었다.
동양 최대의 사찰로 일컬어지는 미륵사는 미륵삼존을 기리는 절 이라 ‘3탑 3금당의 3원(院) 병렬식 가람’이라는 독특한 구조로 설계 되었다. 하지만 중점은 가운데 있었으니 좌우의 석탑과 달리 높다란 목탑을 세웠으며 금당 또한 가장 화려했고 사방은 회랑으로 둘렀다. 3원은 그러나 뒤편에서 1강당으로 통합되어 3면 승방에 둘러싸여 있었다.
국보 11호인 서탑 남쪽 연못 나무그늘 아래서 미륵산을 바라본다. 하나는 붕대를 둘렀고 하나는 매끔한 두 탑이 뒷산과 짝을 이루어 풍경을 완성한다.
6층밖에 안 남은 14.2m의 서탑은 날로 쪼그라드는 노인 같고 1993년에 생(生)으로 만든 9층 24m 높이의 “허망과 허상 복원탑” 은 풍경소리만 요란하다. 60m에 이르렀으리라는 장려한 목탑이 있다면 탑 셋만으로 ‘뫼 山’자를 그렸겠지만 그렇다고 이 땅에 미륵이 현신(現身)했을까.
정수리가 서쪽으로 살짝 기울어 피노키오 고깔모자 같은 미륵산(429.6m)에는 1822m 둘레의 산성이 있다. 저기를 올라 사방을 굽어보면 그 장쾌함 비할 바가 없으리라. 그럼에도 아직까지 한 번을 밟아보지 못한 산, 오늘은 기필코 오를 것이다.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 구불구불 산길을 걸어 만난 데는 포곡 식으로 쌓인 성의 가장 낮은 부분, 동문이다. 옹성(甕城)으로 되어 있으며 10m 거리 양쪽에 치성을 두어 동쪽으로는 도저히 공격할 엄두를 못 내겠다. 가파르게 치오르는 성벽을 반시계돌이로 돌아 정상 장대지에 이른다.
안내판에는 이 성을, 위만에게 나라를 뺏기고 남쪽으로 가 한왕(韓王)이 되었다는 준왕의 기준성(箕準城)이라고도 한단다. 아무 증거도 정황도 없으면서. 일반적으로는 무왕 때 쌓았다고 여기는바 2004~6년 성 가운데 건물지에서 “금마저성(金馬渚城)”, “묘봉원(妙奉院)”, “대사(大寺)” 등의 명문(銘文) 기와가 나왔다. 전설로는 왕건이 후백제 신검군을 공격해 항복을 받아낸 데라고 한다.

전라북도는 금강과 만경강, 동진강 세 강으로 나뉜다. 금강과 만경강 사이에는 군산과 익산이 있고 만경강과 동진강 사이에는 김제와 전주, 동진강 남쪽에는 고창과 정읍이 있다. 따라서 신검이 여기 미륵산성을 뺏겼다면 30km 남동남쪽의 전주에 도읍한 후백제가 망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을 것이다.
이윽고 국보 298호 왕궁리 오층석탑으로 향한다. 이렇게 순서를 뒤로 미룬 이유는 이 탑이 “옛 백제 영토 안에서 고려시대까지 유행하던 백제계 석탑양식의 고려 전기 작품”이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볼꺼리는 달랑 탑 하나뿐인 데다 작년 이맘때 고향 다녀오며 들른 데였던 까닭에 후순위로 밀린 게 당연했다.
그런데 가보니 그게 아니었다. 가람터였던 현장이 궁장(宮牆) 두른 왕궁으로 탈바꿈, 정면 일곱 칸, 측면 네 칸의 정전(正殿) 터와 공방(工房), 창고, 정원, 후원, 화장실 유적 등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고 있었다. 더하여 2021년 왕궁리유적전시관에서 이름이 바뀐 백제 왕궁박물관은 막 문을 닫는 중이었으니 땅을 칠 노릇이었다. “정관 12년(무왕 39년) 백제 무광왕(武廣王)이 지모밀지(枳慕蜜地)로 천도하여 정사(精舍)를 새로이 경영하였다” 한 중국 육조시대 기록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가 저 안에 있다고 하는데.
동서 길이 240, 남북 490m의 왕궁 영역 반을 할애한 후원구역은 ∩형 곡수로(曲水路)에 둘러싸여 있었다. 곳곳의 집수조(集水槽)는 물의 양과 방향을 조절하고 있었으며 남쪽 건물구역과의 경계에 강자갈을 깔고 괴석(怪石)을 벌여 고대 정원 시설을 해놓았다. 20m는 될 것 같은 고도차를 어떻게 극복해 물을 끌어올렸는지 모르겠지만.
오층석탑과 그 뒤의 금당, 강당은 백제 말기나 멸망한 뒤 왕궁터 위에 올라간 것이었다. 특히 석탑 자리는 애초에 왕궁 건물이 있 었는데 거기 목탑을 세웠다가 허물고 석탑을 쌓은 데라고 했다. 1989년부터 30년에 걸친 발굴 노력이 세상에 유례가 없는 진실을 밝혀주고 있었다.
〈관세음응험기〉에 따르면 “정관 13년(640년) 기해(己亥) 벼락이 쳐 제 석정사의 법당과 탑 등이 모두 타버렸으나 탑의 심초(心礎)에 들어 있던 경판과 사리는 무사해 다시 절에 봉안했다”고 한다. 연구자들은 이 절을 미륵사로 여기는바 보물 1991호인 금제(金製) 사리봉 영기(舍利奉迎記)에 “기해년 정월 삼가 깨끗한 재물을 희사하여 가람을 세우고 사리를 받들어 모셨다”는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 고 제석정사는 1942년 “帝釋寺”라는 명문 기와가 나온 제석사로 본다.


왕궁리 5층석탑 동쪽 2.5 km 지점에 있는 제석사는 왕실 전용 사찰로 추정되는 절이다. 중문과 탑, 금당, 강당터가 푸른 잔디로 남아있는데 탑지 네 귀퉁이의 호석(護石)이 독특하고 그 중 하나에는 성혈(性穴)이 있다. 바위에 판 동그란 구멍으로 미륵사지 주춧돌의 윷판형 성혈을 비롯 미륵산 북쪽의 낭산리, 호암리 등 인근에는 성혈이 많다.
〈구당서(舊唐書)〉는 “백제왕이 동서 양도(兩都)에서 살았다”고 하였다. 남북이면 더 좋았겠지만 어쨌든 사람들은 이를 근거로 백제가 부여와 익산 두 곳의 왕궁을 경영했다고 본다. “首府”명(銘) 기와는 부여 관북리와 익산에서만 나왔다.
왕도 익산의 시가지는 금마면 소재지 고도리(古都里)에 있었으리라고 한다. 면 남쪽 경계의 보물 46호 석조여래입상이 증거다. 금마천 동서 200m 거리에 마주보고 서있는 석상으로 적당한 이름이 없어 여래를 갖다붙인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여래는 아니다. 안도현은 둘을 ‘사랑하는 바위’로 보았다.

“내 애인은 바위 속에 누워 있었지 / 두 손 가슴에 모으고 눈을 감고 있었지 / 누군가 정으로 바위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 들렸지 / 내 애인은 문을 밀고 바깥으로 걸어나왔지 / 바위 속은 환했지만 바깥은 어두웠지 / 내 애인은 옛날부터 나를 알아보지 못했지”

일대는 육칠십년대 논으로 개간하기 전까지 뻘밭이었다고 한다. 금마천을 따라 남쪽으로 10km만 가면 나오는 만경강변 춘포(春浦)까지 밀물 때면 배가 드나들었다 하니 저 사랑바위는 등대와 다 름없는 부두 표시거나 배를 매는 돌이었을 수도 있겠다.
서쪽 1.8 km 거리의 쌍릉에 이르니 하늘이 붉어지고 있다. 직경 25m, 높이 4m의 대왕릉과 서북 180m 지점의 소왕릉을 보고 나오니 불현듯 소왕릉의 주인이 선화공주일까 아닐까 궁금해졌다. 미륵사탑 사리봉영기에는 사리를 바친 이가 ‘왕비인 좌평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선화공주 이야기는 〈삼국유사〉 무왕조에 나왔다. 하지만 이 책은 설화집이지 역사책이 아니다. 그럼에도 사리봉영기가 나온 2009년 도하 신문들은 “미륵사 창건, 선화공주와 무관하다”, “서동요 설화 재검토 필요” “서동요와 선화공주 설화를 그렇게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을까” 같은 엉뚱한 기사들을 쏟아냈다.
〈삼국사기〉 열전에는 온달 설화가 있다. 온달이라는 어수룩한 평민 총각이 공주와 결혼, 영달한 뒤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으러 나섰다가 장렬하게 전사한다는 줄거리다.
그러나 이는 시대와 장소를 명시하지 못한 ‘이야기’일 따름이다. 공주의 아버지 평강왕은 고구려 세계(世系)에 이름이 없고 비슷한 평원왕은 온달이 구토(舊土) 수복 허락을 받은 양강왕(양원왕) 다음이 아니라 전 임금이며 전사지 아단성은〈삼국사기〉지리지에 없다. 그럼에도 내용은 지극히 감동적이어서 평양은 물론 경주에도 널리 알려져 있었을 것인바 서동 설화도 같은 종류로 보아야할 것이다. 글쓴이는 모름지기 옥석을 가릴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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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창간 2025. 6 월호 지면 기사입니다.

https://www.sansa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884

연·아 OUT ㅣ연예인 아웃도어 거품 OUT당신은 아직도 거품으로 된 신발과 자켓을 두르고 자연을 찾으시나요? 연예인 모델 아웃도어 거품은  자연과 산악인 모독이다!! 당신은 아직도 연예인이 광고하는 고가 아웃도어 ...
27/08/2025

연·아 OUT ㅣ연예인 아웃도어 거품 OUT

당신은 아직도
거품으로 된
신발과 자켓을 두르고 자연을 찾으시나요?

연예인 모델 아웃도어 거품은
자연과 산악인 모독이다!!

당신은 아직도 연예인이 광고하는 고가 아웃도어 거품으로 된 신발과 자켓을 두르고 자연을 찾으시나요?





한국만의 톱스타 연예인 아웃도어 모델 ,
메이저 방송 신문 광고는 아웃도어 거품의 주범

선진국의 최고 연예인은 화장품. 전자제품 등 모델에 등장 하지 만 아웃도어 용품 모델을 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특히 그 나라의 톱스타가 아웃도어 모델로 메이저 신문 방송에 광고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합니다. 바로 아웃도어 거품의 주범입니다.

자연에서 조차 브랜드를 과시하려는 저급한 수준의 사람을 이용한 바가지 상술입니다. 톱스타 연예인 모델은 막대한 광고비 지출이기에 대량생산 대량유통을 목적으로 합니다. 당연히 과다한 탄소배출과 물소비 증가의 자연파괴이며, 대량 폐기물 발생으로 친환경에 역행합니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반환경적인 이유로 아웃도어제품의 유명인 모델과 방송광고 같은 과소비를 기피합니다. 친환경 파x고니아 제품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한국기후에는 부적합
비닐같이 갑갑한 기능 고x텍스 허실 발의 무좀, 등에 땀띠 유발
가능성 높아

중국.베트남.방글라데시 등에서 저임으로 만들어서 한국에서 초고가 폭리 취하는 고 x텍스 제품, 비닐같이 갑갑한 기능의 이 제품은 한국 기후환경에서 방수와 땀 배출 기능이 미미합니다. 오히려 한국기후에서 고x텍스 등산화는 무좀 유발, 자켓은 등 에 땀띠 유발 가능성이 큽니다. 설령 방수와 땀 배출기능이 일부 있다고 하여도 2~3 개월 사용하면 그 기능은 사실상 상실됩니다. 수많은 등반가 산악인 히말라야 전문가들의 사용한 체험담입니다.





아웃도어 문화와 공익성 무시,
오직 폭리 혈안 연아 아웃

- 한국의 아웃도어 업체는 개도국에서 싸게 만들어서 오직 폭리에 집중
- 기술개발, 외화획득 수출, 일자리 창출, 환경 보호, 아웃도어 문화 진흥과 공익에 무관심 국가와 사회 공동체에 기여 하지 못하는 폭리 업체에게 자연을 사랑하는 선한 사람들이 고비용으로 구매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 톱스타가 모델인 아웃도어 제품은 현재 소비자 가격의 30% 정도가 적당


이제부터 자연을 사랑하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단지 톱스타 연예인 모델이나 비싼 게 명품이라는 저급한 인식을 아웃도어 자연에서 만큼은 배격합시다. 진정한 아웃 도어 품질은 거품 없이 실용적이고 검소한 자연사랑 제품입니다. 그것이 자연사랑, 산악사랑의 자존심이고 명예입니다.





이제부터 한국 자연사랑
전문산악인들의 선택,
미 REI, 카 MEC 같은 실용적,
친환경 전문 아웃도어 철학 동참으로

“아웃도어 거품빼기, 친환경 실용적 아웃 도어 철학 공유 캠페인” 동참!! 산악단체, 사회시민단체, 건강한 아웃도어기업, 자산 운용사 참여를 환영합니다.





문의 02-2082-8833 | [email protected]



**36년간 매월 아웃도어 콘텐츠 개발생산 전문지〈사람과 산〉미디어가 제공하는 올바른 아웃도어 정보공유 캠페인**





1989년 창간 2025. 9 월호 지면 기사입니다.
#캠페인 #연아아웃 #아웃도어 #거품

https://blog.naver.com/manandmountain/223984854560

아웃도어 거품 제거와 대안,한국 고어텍스 부적합 이유창간 36주년 특집, 등산.아웃도어의 세계  코너를 연재합니다. 명실공히 산악 캠핑 아웃도어 분야의 가장 많은 콘텐츠를 보유한 이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현장 취...
25/08/2025

아웃도어 거품 제거와 대안,
한국 고어텍스 부적합 이유

창간 36주년 특집, 등산.아웃도어의 세계
코너를 연재합니다.

명실공히 산악 캠핑 아웃도어 분야의 가장 많은 콘텐츠를 보유한 이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현장 취재를 더하여 등산 아웃도어 크루. 동호인들에게 올바르고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마련했습니다. 때로는 날카롭고, 한편으로는 심층적인 분야의 정보 제공을 통하여 전문언론으로서 책임을 다하며 온 국민이 건강한 아웃도어 문화를 정착하겠습니다. 아울러 독자 여러분들의 궁금한 사항이나 바로 잡고자 하는 의견 또는 아웃도어 관련 공공기관, 단체, 업체 등 예산낭비 비리와 제품하자 소비자권익 침해 등 왜곡된 부분의 제보는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 편집자 말 -

Q. 아웃도어 제품이 초고가입니다. 도심의 패션도 아니고 산에서 야외에서 땀나고 흙먼지 묻고 배낭에 구겨서 넣는데 왜 초고가인가요. 그럴만한 이유와 대안이 있나요.

아웃도어 브랜드 티셔츠 한 장에 15만 원 하는 정도이니 초고가가 맞습니다. 그 이유는 보통 3가지입니다. 먼저 마케팅 광고비 비중이 크기 때문입니다. 아웃도어 브랜드에 그 나라의 톱스타 연예인 모델을 기용하는 것은 한국이 유일합니다. 메인 신문 방송 언론에 아웃도어 광고를 집중 하는 나라도 한국이 역시 유일합니다.


거품의 주연 톱스타 연예인 아웃도어 모델과
메이저 신문 방송 광고는 한국이 유일

연예인을 모델로 사용하면 초상권 사용기간 동안 온갖 매체에 대대적인 광고 홍보를 집중하게 됩니다. 그 비용은 고스란히 제품에 반영됩니다. 연예인 모델 기용은 대량생산 대량소비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재활용 권장하는 친환경과는 거리가 멀게 됩니다.

그런데도 이들 업체는 친환경 제품이라고 홍보 하는데 이런 것을 그린워싱(Green Washing : 기업이 친환경인 것처럼 보여주기식 마케팅 수법)이라고 합니다. 초호화 연예인을 모델로 기용한 물건을 구매하는 소비자도 톱스타인 양 과시욕을 보여주고 싶은 유치한 발상을 하게 되는데 좀 저급한 심리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외국인들이 전통적 명품도 아니고 한국의 아웃도어 브랜드나 연예인 사용 아웃도어 제품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물론 산악 전문가들은 연예인 모델 브랜드 제품을 제값을 주고 사면 바보라고 인식하여 90% 할인하는 가격에 보통 구매하게 됩니다.




비싸면 명품이라고 따라 하는
‘바보 심리’ 이용한 아웃도어 폭리 상술

또한 가격을 높게 책정하는 고가 정책도 원인입니다. 비싸면 물건이 고급으로 인식한다는 저급한 상술을 업체가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다수 어중간한 수준의 사람들에게 그것이 통하게 됩니다. 이 부분을 전문 미디어 매체와 전문가, 단체가 중심을 잡고 올바른 아웃도어 선택 방법 홍보를 비전문가들에게 많이 했어야 합니다. 앞으로는 기대해 주세요.

그리고 폭리의 이유는 디자인과 기능성을 강조하는 공포 마케팅 입니다. 아웃도어 디자인은 실용성 비중이 크기 때문에 도심의 패션처럼 섬세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아웃도어 디자인을 가격 상승의 빌미로 마케팅 하는 것은 업체들의 부끄러운 한계입 니다.





고어텍스 없이 히말라야 8천미터 자유롭게 등반 수없이 보고

국내 산행에서 또 해외 6천미터급 이하 산에서는 기능성의 차이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요즘 기능성의 대명사라고 하는 고어텍스를 갖추지 않고도 7천, 8천미터 정상 오르는데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하물며 국내 산행에서는 실제 필요하지 않지만 과시용으로 착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해외 트레킹을 가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히말라야 5천~6천미터까지 현지인 가이드가 슬리퍼 신고 목장갑도 안 끼고 무거운 짐 지고 산행 잘만 합니다. 대부분의 아웃도어 제품이 유사동일하게 소재의 기능성을 거의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능성을 강조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업체들이 몇그램의 무게나 부피를 줄인 차별화를 강조하지만 우주복도 아니고 산행이나 캠핑 현장에서는 영양가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업자들은 기능성 제품을 갖추지 않으면 산에 가서 얼어 죽거나 동상 걸린다. 저체온증으로 사망한다고 공포 마케팅을 합니다. 이것 또한 전문가들이 올바른 정보로 바로 잡아 주어야 합니다.





아웃도어 기능성 운운은 업자들 폭리 위한 마케팅에 불과

결론적으로 현재의 아웃도어 제품은 거품이 과대 포장된 상태이기에 기능성을 살리면서 원가를 대폭 구조조정 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그리고 본지(本誌)가 올바른 아웃도어 문화 정착을 위하여 “연아 아웃(연예인 아웃도어 아웃)” 캠페인에 동참하여 주변에 널리 알리는 것입니다. 연예인 아웃도어가 아닌 산과 자연 아웃도어를 사랑하는 철학과 문화가 있는 제품을 구매하는 일이 대안입니다.





거품제거, 친환경 아름다운 공동체 위한
아웃도어 기업 출현 적기

미국의 REI, 카나다의 MEC 같은 친환경 공동체 아웃도어 기업을 전문산악인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었습니다. REI 기업은 미국 대학생들이 가장 들어가고 싶어 하는 상위기업중 하나입니다. 한국에서 이제 이 같은 친환경, 거품 제거, 공동체 이익, 검소하고 실용적 기능을 주력으로 하는 아웃도어 기업이 자연친화 전문가들에 의하여 명예롭게 등장할 시기가 온 것입니다.







Q. 대기업 아웃도어 의류에 발암물질이 나온 뉴스를 보았어요. 그 원인은 무엇인가요? 한국에서 고어텍스가 부적합하다고 하는데 이유가 무엇인가요? 또 고어텍스 제품이 한국 기후 지형에 적합하지 않으며 아웃도어 폭리의 주범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소비자 단체에서 소위 아웃도어 브랜드 제품을 비교 검사한 결과 코00 이라는 섬유 대기업에서 생산하는 재킷 내피에서 아릴아민 발암물질이 기준치의 약 20배 정도나 검출되어 롯데 홈쇼핑, GS 홈쇼핑 등에서 판매하는 제품이 전량 수거된 적이 있습니다. 이 제품은 중국에서 제조하였으며, 한국의 다른 아웃도어 제품 대부분이 중국 동남아 등지에서 저가에 생산되고 있습니다. 아웃도어 대부분의 브랜드는 자체 공장보다는 브랜드를 외주로 주어서 생산(OEM주문자 상표부착)하기에 품질 관리 책임이 철저하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화학본드 처리 아웃도어 자켓 발암물질 정력감퇴 가능성 발표

국내에서 유통되는 대부분 아웃도어 자켓(바람막이)은 봉제선에 방수의 역할을 하려고 아예 공업용 독성 본드로 테이핑 처리 합니다. 또한 투습 방수 효과를 위한 화학 본드 사용 소재로 발암물질이 유발되거나 호르몬 혼란으로 정력 감퇴 가능성 있다고 해외에서 발표 하였습니다.

고어텍스 제품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이번에 간단히 하고 다음번에 특집으로 편성하여 속속 해부하여 설명하겠습니다. 일단 결론적인 부분으로 말씀 드리자면 한국 기후와 지형에서 고어텍스는 굳이 필요 하지 않다고 봅니다. 고어텍스 기능성 운운은 이른바 아웃도어 마케팅 업자들의 상술에 불과 하다고 봅니다.

이 만난 전문산악인(워킹의 대가 산대장, 히말라야 등반가)들의 다수 의견입니다. 전문산악인들은 심지어 비닐과 차이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다고도 혹평합니다.





고어텍스 소재 세탁 약 4~5회 하면 사실상 방수·발수 기능 상실

이론상 인체 외부의 물은 막아주고(방수) 내부의 땀은 배출(발수)해 준다고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참으로 최고의 기능을 갖춘 기적의 소재입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것입니다. 전문산악인들은 악조건에서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한 분들인데 이들 중에서 인체의 흐르는 땀을 배출해 준 것을 체험한 사람이 있을까요?

관련 업계나 업체에서 돈을 받는 모델 산악인들의 멘트가 아니고서는 감히 그렇다고 강조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설령 습도를 빼내는(투습) 것을 경험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100% 고어 텍스 기능이라기보다는 내부에 받혀 입는(신는) 의류와 인체 사이의 공간 확보, 인체 상하로 흐르는 통풍에 기인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아니면 고어텍스 원단에 투습 지퍼가 달려 있어서 그 기능이 보탬이 되었을 경우입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고어텍스 소재 의류를 약 4~5회 기계 세탁을 하여 방수기능과 발수기능이 상당수 상실되었을 경우 투습 효과는 높을 것입니다. 이러한 분들이 고어텍스 발수 통풍 기능이 있다고 어처구니 없는 열변을 토하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고어텍스 부적합 이유는 매우 많다

만년설이 없는 4계절의 한국에서 고어텍스가 부적합한 이유는 참으로 많습니다. 특히 요즘 같은 여름에 고어텍스 등산화를 착용하고 산행을 한다면 투습 발수 기능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전문가 중에는 통기가 안되어 발에 무좀 생길까봐 걱정했다 라고 합니다.

물론 약 10여차례 고어텍스 등산화를 착용하고 집중 산행으로 방수 발수 기능이 사실상 상실한 경우는 통기성이 우수 합니다. 그렇다고 기계세탁 약 4~5회, 산행 약 10차례 하는 동안 신제품 고어텍스의 최고조 성능을 경험하기 위하여 고가의 제품을 구입하는 게 현명할까요?

비록 최성능 신제품 이라고 하여도 오히려 통기성 문제로 여름에 발에 무좀 발생, 등에 땀띠 걱정을 하며 구입해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고어텍스는 한국에서 왜곡된 부분이 매우 많기에 특집으로 편성하여 지속적으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겠습니다.





1989년 창간 2025. 9 월호 지면 기사입니다.

https://blog.naver.com/manandmountain/223982712352

#사람과산 #아웃도어 #고어텍스

아웃도어 거품 제거와 대안, 한국 고어텍스 부적합 이유 창간 36주년 특집, 등산.아웃도어의 세계 《무엇이...

ㅣ 필자 박기성은 (사)한국山書會 회장이다. 서울大 문리대OB산악회장으로 〈사람과 산〉 편집장을 지냈다. 저서로 「삼국사기의 산을 가다」, 「명산」, 「울릉도」가 있다.​금강산(金剛山 482.7m)은 해남의 진산(鎭...
18/08/2025

ㅣ 필자 박기성은 (사)한국山書會 회장이다. 서울大 문리대OB산악회장으로 〈사람과 산〉 편집장을 지냈다. 저서로 「삼국사기의 산을 가다」, 「명산」, 「울릉도」가 있다.



금강산(金剛山 482.7m)은 해남의 진산(鎭山)이다. 정상 동쪽에 둘레 1087m의 포곡식(抱谷式) 산성이 있어 유사시 진산의 역할을 제대로 했다. 읍내에는 또 읍성이 있어 산성-읍성의 기각지세(掎角之勢)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고을이다. 이 금강산 이름은, 지금은 은적사로 이름이 바뀐 ‘미소 짓는 부처님’, 보물 철조비로자나불 좌상이 있는 절의 옛이름 금강사에서 유래했다.

해남은 동쪽의 만대산(萬臺山)과 우슬재 남쪽의 덕음산(德陰山), 돌고개~서당산~호산(葫山) 지나 남각산으로 어어지는 소쿠리 안통의 물이 서쪽으로 빠져나가니 예로부터 서림공원 숲을 가꿔 비보(裨補)를 해왔다. 울타리 남쪽으로는 두륜산과의 사이에 삼산천이 흐르고 북쪽에는 옥천면의 옥천이 돌아들며 바깥으로 가학산맥, 주작산맥, 두륜-병풍산맥이 결구배추처럼 에워싸서 고을 산세와 지세가 명당도(明堂圖)를 그리고 있는 땅이다.

금강산 정상에서 보면 이 모든 것이 치마폭에 싸인 병아리마냥 들어온다. 두륜산 오른쪽으로 달마산도 보이고 그 서쪽으로는 남해 바다 수평선이 반공(半空)에 떠있다. 애창하는 노래 ‘떠나가는 배’처럼 “강남길로 해남길로 바람에 돛을 맡겨 물결 너머로 어둠 속으로 저기 멀리 떠나가는 배”가 보일 듯 말 듯 아스라하게.

두륜산 방향으로 ‘킬트 상보(床褓)’ 같은 야산과 마을, 전답이 보이면 저기가 고산(孤山) 윤선도(1587~1671)의 녹우당(綠雨堂)이겠거니 짐작해도 크게 틀리지 않으리라. 교과서에 나온 어부사시사와 산중신곡(山中新曲)을 지은 그는 별시문과(초시) 장원 급제자며 만석군 해남 윤씨의 상속자로서 천하에 부러울 것이 없던 위인이었다(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치르는 別試는 정규 과거인 式年試가 初試, 覆試, 殿試의 3단계였던 것과 달리 초시와 전시뿐이었고 급제자 수도 33인이 아니라 열 명 내외였다). 하지만 벼슬길에 나서기도 전인 성균관 유생 때(29세)부터 귀양살이를 시작, 만70세가 될 때까지 20여년을 유배지에서 보냈으니 결코 행복한 인생은 아니었다 할 것이다.

고산이 보길도에 은거하게 된 계기는 병자호란이었다. 난리가 났다 하니 임금을 호종(扈從)하기 위해 수백 명의 가복(家僕)과 선단을 동원, 강화도로 향했는데 도중에 강화도가 함락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래 다시 남한산성으로 방향을 틀었는바 이번에는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하고 도성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여 세상사에 뜻을 잃고 제주도를 찾아가다가 풍랑을 만나 발견한 보길도에서 여생을 마치기로 작정하였다.

보길도로 들어가는 우리 일행은 한국산서회 박동욱 고문과 홍하일·이대희 회원, 해남의 천기철 회원, 홍하일의 수의학과 선배면서 천기철씨 친구인 양원주동물병원장 등 5명이다. 읍내 동부렌트카에서 스타렉스를 빌려 현산면, 송지면을 거쳐 갈두선착장으로 간 다음 카훼리를 타고 바다를 건넌다.

현산 너른 들판을 지나면서 입버릇 넋두리가 나온다.

“내 생각으로 어부사시사는 보길도가 아니라 바로 여기서 지은 것 같아. 지금은 평야가 된 이 구비구비 바다 막기 전을 상상해봐. 동호 (東湖)를 돌아보며 서호로 가자스라는 여기서 할 소리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부용동(芙蓉洞)에서 나올 싯구가 아니라고.”

부용동 높은 터 동천석실(洞天石室) 올라서니 낙서재(樂書齋), 곡수당(曲 水堂), 하한대(夏寒臺), 혁희대(赫羲臺)가 발 아래 벌여있다. 그런데 이 활원한 풍경에서 동천은 어디 있고 석실은 무엇이란 말인가? 동천은 돈짝만한 하늘이고 석실은 바위굴인데… 저으기 실망하여 팽팽히 하산하니 상록수 숲길이 대낮에도 깜깜하다.

흠칫 놀라 뒤돌아보는데 동그란 구멍 가운데 방금 본 한칸집이 홀로 소슬하다. 아아, 동천은 이 숲을 나가기 직전 보이는 하늘이고 석실은 여기저기 제멋대로 늘어선 바위들 사이의 사각좌등(四角 座燈) 같은 집이었다!

수리봉, 격자봉(格紫峯), 안산(案山), 북산으로 둘러싸인 부용동 여기 저기를 돌아보느라 시간이 지체, ‘씻은 듯이 깨끗한 집’ 세연정(洗 然亭)에 도착하니 여섯 시가 넘었다. 하지만 우리는 수없이 이곳을 드나든 천기철씨의 비밀통로로 해서 조선의 3대 원림(園林)으로 연기처럼 들어간다.

동남풍을 막으려 담을 쌓듯 쌓아올린 가산(假山)을 돌아드니 졸졸졸 흐르던 계곡물이 그대로 퍼져 연못이 되고 그 안에 바위들이 개구리처럼 몰려있다. 장국영이 나온 〈패왕별희(霸王別姬)〉의 변검(変臉)도 아니고 어떻게 경치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가? 혹약암(或躍岩), 칠암(七岩), 사투암(射投岩) 이름 들으며 비홍교(飛虹橋) 건너 요대(瑤臺)에 이르르자 단칸 정자의 경요굴(瓊瑤窟)이 맞이한다. 사방에 퇴를 달아 동서남북 삼칸이니 전체로는 아홉칸인데 한가운데 방들이고 서른 두 분합문(分閤門) 모두 올려 장식 하나 없어도 경회루의 화려함이다. 동쪽 한 칸 단을 높여 악사들을 모셔두고 계담(溪潭) 건너 옥소대(玉簫臺) 선녀춤을 추게 하여 물에 비치는 풍경 즐겼고 판석보(板石洑) 막은 물을 오입삼출(五入三出) 수구(水口)로 빼 회수담(回水潭)을 만들고는 가운데 방도(方島) 꾸며 소나무를 심어두어 계담 원도(圓島) 배롱나무 동서 짝이 되게 했네~.

가장 인상적인 데는 계담 서쪽의, 백사장처럼 펼쳐져있는 물가 암반이다. 수위가 높았을 때 물이 실어온 흙과 잔자갈이 구르고있는 물 빠진 저수지 같은 풍경… 그 앞 연못 어리연꽃 빈틈의 물 낯바닥에 세연정 지붕이 잠겨있다.

“거그 사람들 얼릉 안 나가고 뭐하요? 여섯시가 넘었는디… 이 시간에 사고라도 나면 우리 책임이란 말이요. 어치께 드르왔소? 싸게싸게 나가쇼 잉.”

어디선가, 돌아가며 맡는 듯한 동네 관리인의 애 터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할머니와 숨바꼭질 하듯 연못을 돌며 되는 대로 사진을 찍고 서둘러 밖으로 나간다. 낙원은 언제나 짧은 시간만 볼 수 있는 것 같다.

두륜산은 비를 몰고 찾아갔다. 이어 천기철씨 지인 성진스님의 배려로 템플스테이를 했다. 그리고 난생 처음 새벽 예불에 참례했다. 대웅전 앞 침계루(枕溪樓)의 북소리로 시작하는 의식은 장엄하기 그지없었다.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 삼계도사(三界導師) 사생자부(四生慈父)시아 본사(是我本師)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 삼계의 큰 스승이며 뭇 생명의 어버이이신 우리의 스승 석가모니 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귀의합니다.”

아침 공양을 마치고 나자 날은 맑게 개어있다. 사무실에 일이 있다며 해남으로 나가는 천기철씨에게 등산코스를 물어본다. 근래 만일암까지 찻길이 났다길래 그걸 피해 가기 위해서다.

“북암으로 해서 가련봉 올랐다가 두륜봉 지나 진불암으로 내려오쇼.”

북미륵암을 줄여 부르는 북암의 미륵불은 근래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 보호각인 용화전(龍華殿) 단청을 하느라 어수선한 상황이다. 덕분에 비계(飛階)로 올라가 부처님을 코앞에서 알현하는 영광을 누린다. 석가모니 입적 후 56억7천만 년 뒤에 오신다는 미륵불의 용화세계가 열리려면 아직 한참 멀었지만.

오소재와 노승봉 지나 가련봉(迦蓮峯 700m)을 넘으면서는 “가아련다 떠나련다” 노래하며 흥을 돋운다. 비 온 뒤 파란 하늘과 구름 쓸어 가는 바람이 상쾌하기 그지없다. 오늘 밤에는 시키지 않아도 노래 한 자리씩은 부를 듯하다. 마지막 답사지 금쇄동(金鎖洞)은 고산의 〈금쇄동기〉를 들고 찾아간다.

“금쇄동은 문소동(聞簫洞) 동쪽 제일봉 위에 있다. 그 높음은 진정 해와 달에 비견되며 비와 바람을 끼고있는, 하늘 밝고 연하 (煙霞) 그윽한 동천(洞天)인바 천석(泉石)이 아름답기 그지없는 곳이다. 산 뒤쪽으로 완만하게 올라가니 썩 험하지는 않은데 아득히 멀고 멀어 인적은 드물다.”

하지만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수십 보를 가다 남쪽으로 꺾어 수 십 걸음을 하면 석문(石門)이 나오는바 큰 바위가 공중을 가로질러 세상의 수레를 거부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로 말미암으면 동천으로 드는 길이 어긋날 수 없으니 (그런 의미의) 불차(不差)라고 하였다” 했는데 세상에 이렇게 자세한 유산기가 없다. 세번째 지형지물 기구대(棄拘臺)는 또 “층암(層巖)이 평탄한 데다가 벼랑의 바위가 지붕처럼 위를 덮어 여럿이 쉴 수 있다” 했는바 “여기에 이르면 왔던 길도 알 수 없고 돌아갈 길도 모르며 제 몸이 얼마나 높은 데 있는지 깨닫지도 못하니 사방을 둘러보면 풍진(風塵) 세상과 이미 멀리 있다” 하면서 ‘구속을 떨치는 돈대’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또 동쪽으로 두 번, 서쪽으로 두 번, 북쪽으로 한 번, 남쪽으로 한 번 꺾어 오르면 등성이에 작은 대(臺)가 있는데 썩 기이하지는 않으나 가슴을 쓰다듬으며 앉았다 가기에 적당해 상휴(上休)로 명명했고 거기서 북쪽으로 10보쯤 올라가면 3층 석대(石臺)가 있어 앉아 있노라면 마음과 눈이 상쾌해지면서 세상 미련을 풀어버릴 수 있으므로 창고(暢高), ‘높은 경지에 이르는 자리’라 하였다.” 하여 이 대단한 안내문을 들고 호기롭게 산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현실은 글과 영 딴판이었다. 가파른 비럭땅에 수풀이 우거져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으며 직접 보니 한문 설명은 바위 모양과 비슷한 구석조차 없었다. 그렇게 폭포골로 천기철씨가 비정해놓은 지형지물들을 따라 올라갔는데 폭포를 지나 정상부의 현산고성(懸山古城)에 이르렀어도 금쇄동은 전모를 파악할 수 없었다. “낭패네. 겨울에 낙엽이 진 다음에 다시 와봐야겠구만.”

“여기는 양몽와(養蒙窩)고요 여기는 불훤료(不喧寮), 여기는 휘수정(揮手亭), 여기는 교의재(敎義齋)…” 천씨의 설명을 귓등으로 들으며 혼자 서쪽으로 가다보니 뒷사람들 따라오는 기척이 없다. 그래 한참을 기다리다 찾으러 돌아가는데 지형이 점점 이상해진다. 서향 등성이를 타야하나 가도가도 그런 건 보이지 않고 엉뚱한 방향의 사면만 나올 뿐이다. 길을 잃었다. 스맛폰 전지가 30%밖에 안 남아 일단 비행기모드로 바꾼다. 다음 기기에서 나침반을 띄워 방향을 잡는다. 그리고 계속 서쪽 능선을 찾다보니 마침내 고산의 묘와 연결되는 신작로를 만난다.

윤선도묘는 문인석 둘을 앞에 세운 왕무덤이다. 정3품 당상관밖에 안 되는데도 크기가 이순신 장군것 못지않게 크다. 회룡고조(回龍顧祖)의 천하명당은 어떻게 장풍(藏風)과 득수(得水)를 했나 싶어 사방을 둘러보지만 키다리 나무들에 가려 산세를 볼 수 없다.

이윽고 크노소스 궁전의 미로 같은 금쇄동을 빠져나간 뒤 문소동에서 일행을 만난다. 다음, 들어올 때 예약해 둔 택시를 불러 읍내 태평양식당으로 하모 샤브샤브를 먹으러 간다. 보길도 민박집의 상다리 부러지는 어촌백반, 강진 반값 여행이라는 좋은 기회에 편승해 가본 다강식당의 수라상 같은 한정식, 대흥사의 정갈한 사찰음식, 건정 홍어와 민어찜… 우리의 이번 여행은 음식기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남도의 제왕으로 살았을 고산의 팔자가 부럽지 않았다.

1989년 창간 2025. 8 월호 지면 기사입니다.

https://blog.naver.com/manandmountain/223974911242

┃사설(社說)┃비산악단체 대한산악연맹은 명칭 변경이 마땅하다대한산악연맹(이하 ‘대산련’)은 1966년 교육부로부터 법인허가를 받아 1997년까지 30년간 산악단체로서 소명을 다 했다고 볼 수 있다. 1998년부터 서...
01/08/2025

┃사설(社說)┃비산악단체 대한산악연맹은 명칭 변경이 마땅하다

대한산악연맹(이하 ‘대산련’)은 1966년 교육부로부터 법인허가를 받아 1997년까지 30년간 산악단체로서 소명을 다 했다고 볼 수 있다. 1998년부터 서울 올림픽공원 내 펜싱경기장 사무실로 입주하면서부터 ‘산악단체’에서 대한체육회 산하 ‘경기 단체’로 전환하여 곧 30년을 앞두고 있다. 창립 60년 중 전반기 30년은 산악단체로 후반기 30년은 경기단체로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60년간 여전히 산악연맹이란 명칭을 사용한다. 물론 대외적 인지도 측면에서 계속 사용하려는 의도는 모르는 바 아니나, 실질적으로 ‘산악(Alpine)’이 아닌 ‘경기(Game)’를 전문으로 하는 단체가 전면에 산악단체 간판을 표방함은 많은 이들에게 오인과 혼란을 야기한다.

경기란 반드시 규칙(Rule)으로서 방법을 안내하고, 위반 시 벌을, 승리자에게 상을 주기도 한다. 이 규칙을 겨루기 경쟁자들에게 공정하게 적용하는 심판을 두어 경기 진행과 상벌을 판단케 한다. 한마디로 경기는 규칙과 심판이 필수요소이다. 그래야 경기 경쟁자(선수)는 수긍을 하게 된다.

반면 등산, 캠핑, 걷기, 탐험 등 아웃도어 활동은 자연을 배경으로 지형, 날씨, 시간, 참가자 조건 등 제각각이므로 참가자에게 적용되는 공평한 기준이 원천적으로 형성될 수가 없다. 따라서 규정이나 심판이 존재할 수 없다. 아니 참가자 자신들은 경쟁이 아니기에 규정이나 심판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아웃도어 활동은 자연사랑과 자기절제 타인배려가 기본정신이다. 즉 경쟁자도 규정도 심판도 없기에 벌칙도 포상도 없다. 그래서 어떤 대가나 보상이 없는 무상(無償)의 행위라고 한다.





30년간 산악단체 고유기능 발휘 능력 부재 대산련



산악연맹을 간판으로 하는 대산련은 국고를 보조받아 운영하는 대한체육회 산하 경기단체인데 자칫 산악단체로서 대표성이 있는 것처럼 오인하게 한다. 이는 여러 기관이나 대중들에게 산악연맹이 하는 행위가 산악 분야의 공신력의 기준인 것처럼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대한산악연맹은 최근 30여 년간 산악 간판에 비하여 산악계를 대표하는 전문적 산악 활동의 조직, 훈련, 캠페인 등을 견인하거나 체계적인 산악문화와 콘텐츠를 개발해 보급하지 않았다. 그것을 약하게라도 지속하였다면 한국산악계가 현재와 같이 몰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작금의 한국산악계는 사실상 중심이 없고 시스템이 붕괴된 상황이다.

전국의 산 정상마다 정상 정복을 먼저 인증하려고 XX야크 업체 깃발을 든 패거리들이 서로 고성을 지르고 얼굴을 붉힌다. 자연에서 인내하고 심성을 겸손하게 배우는 고유한 가치 ‘호연지기’는 배척당하고 과정보다는 오직 결과를 위한 경쟁이나 과시를 부추기는 천박한 지경이 만연하다.

현재 한국 산악문화, 아웃도어 문화는 자연 친화는 멀어지고 오직 자연을 이용한 상업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아웃도어에 당대 톱스타가 모델로 등장해서 대량 제품생산과 폭리를 취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산악선진국은 탄소중립과 자연사랑, 도전정신에 역행하지 않으려 연예인이나 대중 매체로 아웃도어를 홍보하지 않는다. 그렇게 절제하니 폭리를 취하지도 않는다.

이른바 ‘바람은 통하고 방수는 된다’는 고X텍스 브랜드제품 소비는 한국이 유럽 산악선진국을 제치고 세계에서 2번째 소비 국가이다. 사실상 비닐옷 기능을 과대 포장한 단순 브랜드 마케팅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한국 자연환경에서는 ‘등에 땀띠 생기고 발에 무좀이 생긴다’는 경험으로 전문산악인들은 이 제품을 배제하지만 일반인들은 정말 그 기능인 줄 알고 믿는다. 어느 분야든지 전문가, 전문단체, 전문언론은 일반인들에게 올바른 정보와 방향을 제시하여야 하는 의무와 책임감을 가지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대산련이 건전한 산악문화를 위하여 일반인들에게 올바른 방향이나 비전을 주도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한국산악 대표단체인양 행세하는 대한산악연맹의 위험한 줄타기



그럼에도 대산련은 오만하게 산악연맹 간판으로 한국산악계를 대표하는 양 행세를 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대산련에서 주도하는 ‘대한민국산악상’ ‘히말라야14좌 체육훈장 청룡장 등급 추천’ ‘산림청 국립산악박물관 건립’ 건이다. (14좌는 일본식현, 14봉이 옳음)

2014년 국고 175억 원을 들여서 속초에 개관한 국립산악박물관은 대산련이 자신들의 추진 업적으로 대대적인 자화자찬을 했다. 당시 산림청은 ‘히말라야 14좌 등정자 5인을 보유한 세계 산악강국의 자존심’ 이라고 해괴한 취지의 보도자료를 내었다. 그때 많은 산악인들이 산악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국고를 낭비하는 대국민 사기극이라며 산악박물관 건립 명분의 부당함을 주장했다. 그러나 국립이란 명칭이 수식된 거창한 산악박물관 2층에는 세계적 영웅이라고 사칭한 히말라야 14봉 등정자 전시관이 버젓이 있다.

전문산악인들은 히말라야 14봉 정상 정복하기 트레킹은, 세계 산악계가 추구하는 '미지의 개척, 극한의 도전’이라는 알피니즘 가치와 너무나 동떨어진 트레킹 관광회사의 이벤트상품일 뿐이라고 치부한다. 그런데 여기에 참가한 아웃도어 업체 소속 한국인 14봉 ‘트레커’들은 국제 산악계에서 상을 받거나 세계언론에 단 한 줄도 안 나온다. 그러나 국내용 ‘세계적 산악영웅’으로 둔갑하고, 국위선양 업적을 빙자한 ‘전문산악인’ 행세를 한다. 어처구니없게도 이들의 일그러진 영웅 만들기에 정부가 막대한 국고를 투입하여 산악박물관으로 보증을 서 준 셈이다. 정부에서까지 이러하니 인터넷에 히말라야 14좌를 검색하면 일반인들은 이를 믿고 ‘세계적인 산악영웅 국위선양’이라고 앵무새처럼 그대로 인용하여 퍼뜨리고 있다.

또한 대산련은 히말라야14좌 등정자를 체육훈장 5등급 중 최고등급인 청룡장을 문화체육관광부에 추천하는 역할을 한다. 몇 년간 유럽 전문산악인과 과학자들이 주축이 된 국제산악검증팀이 히말라야 14봉 등정자 전수조사를 GPS와 드론 등 과학 장비를 총동원하고 정상 실사검증을 하였다. 한국인 히말라야 14봉을 등정했다고 주장하는 7명에 대해 전원 14봉 등정 증거가 없다고 발표하였다. 엄홍길씨는 10개, 그 외 6인은 11개, 12개 등정자라고 발표했다. 국제산악검증팀은 스스로 등정자라 주장하는 당사자에게 이의를 제기하라고 하였으나 한국인 중에서 어느 누구도 반론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쯤 되면 체육훈장 청룡장을 받은 이들은 정부가 나서기 전에 스스로 양심선언하고 전부 반납을 해야 마땅하다.

대산련이 주도한 ‘히말라야 14봉 등정자 이벤트’로 파생하는 일련의 엄청난 사건의 주무부처 문화체육관광부와 산림청 공무원들을 문책해야 할까? 고도의 전문 산악 분야에 비전문가 공무원들이 ‘산악단체’라는 간판을 보고 자문을 받은 것을 문책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를 침소봉대 허위 과장하여 공무원들을 기만하여 막대한 예산을 허비케 한 자칭 산악단체가 처벌받아야 하는 것이다.

최근 전국에 ‘국립등산학교’ 개설과 운영에 등산과 무관한 막대한 예산이 낭비 된다고 민간등산학교에서 이의를 제기한다. 업체 배불리는 예산낭비 유발 자문을 산악연맹이 하지 않았기를 바란다.

대산련은 거창하게 국호를 내걸고 ‘대한민국산악상’이라는 상을 매년 시상한다. 국호를 사용하라고 정부기관 누구도 위임하지 않았다. 경기전문단체인 대산련이 산악 전문단체를 빙자하여 산악을 평가하고 시상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자행되고 있다.
물론 전문산악인들은 이 상의 공신력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대한산악연맹이 산악 전문단체가 아닌 경기 전문단체라는 근거



그렇다면 산악인들과 스포츠클라이머들이 대산련에 산악 전문단체를 빙자하지 말고 경기단체로 간판을 교체하라고 10년 넘게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그것은 대산련 상위단체인 대한체육회의 종속관계 규정, 대산련 법인체 정관의 목적과 주요사업 내용, 그리고 연간 사업내역과 예산에서 찾을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대한체육회의 ‘경기종목단체’는 반드시 ‘경기단체’로서의 사업과 목적을 수행하도록 표준정관으로 통일하여 규정해놓았다. 체육회 산하 경기종목단체는 축구종목, 수영종목, 복싱종목, 산악종목 등 64개에 이른다. ‘산악종목’은 인공암벽에서 게임하는 ‘스포츠클라이밍 경기’를 말한다. 이를 대한체육회의 전국체전 등 한국 내 대회에서 ‘산악종목(스포츠클라이밍)’으로 표기하고,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는 ‘스포츠클라이밍’ 종목이라고 표기한다. 그런데 대산련은 ’스포츠클라이밍 종목‘이라고 하지 않는다. 한글로 꼭 쓰려면 ’인공등반종목‘으로 하면 될 일인데 ’산악(스포츠클라이밍) 종목‘이라고 굳이 괄호까지 사족을 달면서 타이틀에 집착한다.

대산련의 주요 예산은 경기 종목 64개 단체와 마찬가지로 대한체육회로부터 교부받는다. 당연히 대산련의 정관과 목적사업은 경기단체의 통일된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

대산련 정관 제4조 목적사업 총 15개항 중에서 1항에서 13항까지가 경기(스포츠클라이밍)에 관한 사업이다. 말미 14항~15항만이 등산에 관한 사업내용이다. 정관의 목적 사업이 이럴진대 예산 또한 이에 비례하여 편성되는 것이다. 이처럼 대산련의 명칭은 ‘산악단체’인데 주요사업 대부분이 ‘경기단체’라는 게 입증되는 것이다.

대산련 2024년도 사업계획서를 분석해 보면 신규사업은 1건, 기존사업 78건이다.

국내·해외사업 79개 중 공통 9개를 제외하면 ‘산악’부문이 14개(20%), ‘경기’부문이 56개(80%) 사업이다. 이 사실에서 대산련은 산악단체가 아닌 경기단체라고 간판을 교체해 달아야 하는 이유가 명백하게 드러난다.





자정 능력 상실 대한산악연맹은 명칭변경으로 개과천선해야



그간 전임 대산련 회장 이 모씨부터 밀실에서 추대란 이름으로 20명도 안 되는 각 시도 산악연맹 회장들의 박수로서 통과시겼다. 그러나 직전 회장 선거는 대한산악연맹 역사상 최초로 각 분야를 대표하는 대의원이 100명 이상 참여하는 가장 정통성있는 민주적 방식으로 치루어졌다.

이 선거에서 대구지역 산악인 김종길씨가 중앙에서 20여 년간 장기집권한 기득권 세력 이 모씨 사단을 대표한 노익상씨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그야말로 대변혁의 상전벽해(桑田碧海) 시대가 도래한 것이었다. 김회장은 대산련을 산악단체와 경기단체로 분리하겠다는 개혁의지가 매우 강했다. 그러나 선거에 패배한 세력들은 김회장과 임원진 업무를 사사건건 방해하다가 ‘무능력하다’는 이유로 12명의 각 시도회장이 임시총회를 열어 ‘불법’으로 전 임원을 낙마시켰다.

선거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사실상 정변에 가까운 이들 불법세력 행태는 상급단체 대한체육회로부터 ‘합법’으로 인정받지 못해 2년 6개월간 대산련은 회장 선출도 못하고 단체기능이 마비되었다.

대한체육회는 물론 경기단체 대산련은 국제대회 메달 획득이 가장 중요한 우선 사업이다. 김회장 집행부가 아시안게임에서 금은동메달 성과를 냈는데도 ‘무능력하다’는 막연한 이유로 탄핵당했다. 그러면 현 손중호 회장은 도쿄올림픽에서 메달을 걸지 못했는데 왜 탄핵하지 않는가.

이처럼 대산련은 부조리를 배격할 공정성과 도덕적인 자정능력이 사실상 폐기된 집단이다. 대산련은 정부로부터 매년 수억 원씩 오탐청소년 사업 지원을 10년 넘게 받았다. 문화체육관광부 특별감사에서 대한산악연맹이 3년간 6억 원을 빼돌려 실제 사용한 것처럼 업체에게 허위로 문서를 작성하도록 했다가 적발되기도 하였다. 문체부 감사결과는 ‘부정사용금액 국고환수, 김 모 전무이사, 이 모 사무국장에 대한 징계’를 요구했다. 당시 금액은 국고환수 되었겠지만 인사징계 대상이던 이 부도덕, 불법자행 인사들은 특별감사 결과를 무시하고 아직도 건재하게 대산련 실세로 군림하고 있다. 대산련은 심지어 국회문화광광위원회 김예지 국회의원실(국민의힘)이 요구한 대산련의 행정, 회계 자료제출조차 거부하였다.

이들에게 산악단체와 체육단체를 분리해야 하는 당위성을 친절하게 호소하는 단계는 이미 지난 지 오래이다. 이제는 산악인들과 스포츠클라이머들이 스스로 권익과 공정성을 찾기 위한 법적 강제적 행동에 돌입할 차례이다. 본지는 산악 아웃도어 언론으로서 이들의 정당한 투쟁을 지지할 것이다.

국제산악연맹(UIAA)에서 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이 이미 오래 전에 순리에 따라 분리 독립 했지만 여전히 한국에서는 비정상적이다. 대한산악연맹은 대한스포츠클라이밍연맹 혹은 인공암벽경기연맹 등으로 명칭을 변경해야 한다. 변경된 명칭 속에서 산악 사업 내용 일부가 가미 되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연간 사업의 80%가 스포츠클라이밍 경기단체인데 산악전문성도 없이 단체 간판을 산악연맹이라고 호칭하는 것은 국민들을 기만하고 혼란을 초래한다.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는 실태 파악 후 조치하길 강력히 촉구한다.



「사람과 산」 2024. 5 월호 기사입니다.

대한산악연맹(이하 ‘대산련’)은 1966년 교육부로부터 법인허가를 받아 1997년까지 30년간 산악단체로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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