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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코스모스 선선한 가을 언덕에어여쁜 소녀같이 피어 있어야 할 네가 어찌하여 이토록 무더운  여름 길가에 서둘러 피어 있는가. 그것은 아마도 가을이 오기 전 스러질 생명들에게 코스모스 세계의 한 조각을 안겨주고 싶...
15/08/2026

여름 코스모스

선선한 가을 언덕에
어여쁜 소녀같이 피어 있어야 할 네가

어찌하여 이토록 무더운
여름 길가에 서둘러 피어 있는가.

그것은 아마도
가을이 오기 전 스러질 생명들에게
코스모스 세계의 한 조각을

안겨주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정박포구에 닻을 내린작은 배처럼우리의 정박도멈춤이 아니라내일의 바다를 품기 위해 잠시 돛을 접어 두는아름다운 안식이기를.
08/08/2026

정박

포구에 닻을 내린
작은 배처럼

우리의 정박도
멈춤이 아니라
내일의 바다를 품기 위해 잠시 돛을 접어 두는

아름다운 안식이기를.

솔방울을 보고 있다오랜 세월 이곳에 서서오는 이와 인사하고가는 이와 이별하지 않았다.물을 것도 많고듣고 싶은 대답도 많았겠지만물음도 대답도 한갓 바람이 아니겠는가.피고 지는 것만이 진실이라며땅바닥에 떨군 솔방울 하나...
12/07/2026

솔방울을 보고 있다

오랜 세월 이곳에 서서
오는 이와 인사하고
가는 이와 이별하지 않았다.

물을 것도 많고
듣고 싶은 대답도 많았겠지만
물음도 대답도 한갓 바람이 아니겠는가.

피고 지는 것만이 진실이라며
땅바닥에 떨군 솔방울 하나.

17/04/2026

우천 연기

가고 싶은 곳이 있었는데 비가 온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었는데 비가 온다.

준비도 없이 맞이한 그리움에게
참 미안했는데

다행이다, 비가 와서.

민들레 바다​퀘벡으로 향하는 국도변, 점심을 먹으려 잠시 멈춰 선 휴게소 건물 뒤편에는 뜻밖의 장관이 펼쳐진다.​눈앞에 일렁이는 것은 푸른 파도가 아니라,바람결에 물결치는 노란 민들레 바다다.​푸른 줄기 끝마다 단단...
15/04/2026

민들레 바다

​퀘벡으로 향하는 국도변,
점심을 먹으려 잠시 멈춰 선 휴게소 건물 뒤편에는 뜻밖의 장관이 펼쳐진다.

​눈앞에 일렁이는 것은 푸른 파도가 아니라,
바람결에 물결치는 노란 민들레 바다다.

​푸른 줄기 끝마다 단단하게 맺힌 노란 꽃송이들이 어찌나 반가운지. 머나먼 타국 땅에서 만난 꽃들이건만, 고향 집 뒷동산에 피어나던 그 민들레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정겨운 얼굴들이다.

​가녀린 홀씨들의 날갯짓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누구 하나 정성 들여 심거나 가꾸어주지 않았을 터인데도 척박한 길가와 풀밭에서 제 힘으로 꿋꿋이 버티어 마침내 저토록 숭고한 꽃바다를 일구어 낸 것이다.

​그 강인한 생명력을 보고 있자니, 지난날 치열했던 나의 세월이 겹쳐 보인다. 원대한 꿈을 안고 상경했던 청년기 서울의 기억, 그리고 전원의 풍경이 그리워 순창으로 내려와 지냈던 날들.

굽이진 그 시간들과 얼굴들이 여기 민들레꽃이 되어
바다처럼 출렁이고 있다.

​이제 누군가 내게 캐나다의 추억을 묻는다면,
나는 거대한 나이아가라폭포의 웅장함이나 프랑스풍 도시의 화려함보다 소박하고도 장엄한 저 민들레꽃 바다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스스로 제 빛깔을 입히며 견뎌온 모든 생명은 그 자체로 찬란한 풍경화가 된다는 것을, 머나먼 퀘벡의 길 위에서 새삼 깨닫는다.

봄꽃​요즘 전주는 온통 노란 개나리와 연분홍 벚꽃의 잔치다. 길가에, 천변에 흐드러진 그 꽃들은 행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봄의 전령사 노릇을 톡톡히 한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도심을 수놓은 그 화려한 풍경은...
30/03/2026

봄꽃

​요즘 전주는 온통 노란 개나리와 연분홍 벚꽃의 잔치다. 길가에, 천변에 흐드러진 그 꽃들은 행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봄의 전령사 노릇을 톡톡히 한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도심을 수놓은 그 화려한 풍경은 누군가의 정성 어린 식재와 관리라는 노동이 투입된 결과물이다. 정해진 자리에, 약속된 간격으로 피어난 그들은 질서 정연하게 우리를 반긴다.

​나는 가끔 그 정돈된 아름다움에서 고개를 돌려,
사람의 발길이 뜸한 강둑 너머 오솔길로 향한다.
숨이 조금 찰 만큼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비로소 '진짜 봄꽃'들과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이름 모를 들풀 사이로 고개를 내민 할미꽃도 있고, 바위 틈새에 위태롭게 뿌리를 내린 진달래도 있다. 누구 하나 물을 주거나 거름을 준 적 없건만, 그들은 오직 제 안의 생명력 하나로 차가운 겨울 흙을 뚫고 올라왔다. 화려한 벚꽃 터널처럼 사람들의 환호를 받지는 못해도, 거친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피어난 그들의 색깔은 유독 진하고 단단하다.

​문득 우리의 인생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상이 정해놓은 규격에 맞춰 남들의 박수를 받으며 피어나는 삶이 있다. 번듯한 직장, 안정된 가정을 일구며 도심의 가로수처럼 정갈하게 서 있는 삶 또한 귀하고 아름다운 노동의 결실이다.
​하지만 진짜 '나만의 꽃'은 홀로 걷는 고독한 길 끝에서 피어나는 법이다. 남들이 보아주지 않아도 스스로의 열기로 얼어붙은 땅을 녹이고, 고독이라는 오솔길을 한참이나 헤맨 뒤에야 비로소 만나는 내면의 진실들. 그것이야말로 세상의 비바람에도 쉽게 시들지 않는, 생의 가장 존엄한 봄꽃일 것이다.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온 시답지 않은 시어들, 낡은 양곡창고에서 별을 보던 그 모든 순간이 내게는 강둑 너머에서 만난 진짜 봄꽃들이었다.
​오늘도 나는 화려한 꽃길을 뒤로하고 고요한 오솔길을 걷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제 향기를 완성해가는 그 꽃들을 보며,
오직 스스로를 피워내는 정직한 생명력으로 채워가고 싶다. ​진짜 봄꽃은 화려한 화단에 있지 않다.
조금은 외롭고 고단해도,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그곳에 있다.

왼손잡이나는 ​왼손잡이로 태어났다. 그것은 선택이 아닌 운명이었다.세상은 그 운명을 '교정해야 할 버릇'으로 규정했다. 어린 시절, 식탁은 즐거운 성찬의 장소가 아니라 훈육의 현장이었다. 왼손으로 숟가락을 들 때마다...
20/03/2026

왼손잡이

나는 ​왼손잡이로 태어났다.
그것은 선택이 아닌 운명이었다.
세상은 그 운명을 '교정해야 할 버릇'으로 규정했다.
어린 시절, 식탁은 즐거운 성찬의 장소가 아니라 훈육의 현장이었다.
왼손으로 숟가락을 들 때마다 날아오던 할아버지의 꾸지람.
식사 시간은 늘 가시방석 같았다.
결국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서야
오른손으로 밥을 먹는 '사회화'에 성공했다.

​학교라고 다르지 않았다.
연필을 쥔 왼손은 친구들의 기이한 구경거리이자 놀림감이 되었다. 부끄러움과 오기가 뒤섞인 마음으로
남몰래 피나는 연습을 거듭한 끝에,
5학년 무렵에서야 오른손으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중학교 시절 야구 경기에서도 비극은 이어졌다.
운동장에 널린 수십 개의 글러브 중 왼손잡이용은 단 하나도 없었다.
맨손으로 수비를 해야 했고,
타석에 들어설 때면 본능적으로
왼쪽 포지션으로 섰다.
친구들은 나의 왼쪽 타석이 낯설었는지
끼득끼득 웃기도 했다
또 축구 시간에는 왼발잡이인 나를 오른쪽 포지션에 배치한 선생님의 무심함 때문에
내 왼발은 허공을 갈랐고 결국 벤치로 밀려나야 했다.

​세상은 온통 오른손잡이의 궤적을 따라 설계되어 있다.
가위질 한 번을 하려 해도 날이 맞물리지 않아 종이가 씹히기 일쑤이고,
지하철 개찰구에 카드를 찍을 때는
몸을 비틀어야 한다.
강의실의 일체형 책상은 오른쪽에만 받침대가 있어서 왼손으로 필기하려면 몸이 휘어졌다.
공용 화장실의 변기 레버조차 오른쪽에 붙어 있는 것을 보며,
나는 이 세상에 맞도록 생산된 '기성품'이 아님을 실감해야 했다.

​이 악물고 노력한 끝에 이제 밥을 먹고 글을 쓰는 것은 오른손으로도 가능하다. 하지만 생존을 위한 본능의 순간,
또는 힘을 주어 무언가를 움켜쥐거나 공을 차야 할 때는 어김없이 왼쪽이 먼저 나간다.
그 본능만큼은 고치기가 힘들었다.

​이러한 신체적 제약은 어느덧 내 사고의 방식마저 바꾸어 놓았다.
다수가 오른쪽을 향해 일제히 걸어갈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왼쪽으로 발을 내디딘다.
그럴 때마다 화들짝 놀라 억지스럽게 방향을 틀어 다수의 행렬에 합류하곤 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 세상에서 평범해 보이기 위한 처절한 순응이다.

​하지만 이 '보이지 않는 벽'을 타 넘으며
나는 남들이 갖지 못한 시야를 얻었다.
​오른손과 왼손을 모두 쓸 수 있게 된 덕분에,
어느 한 쪽을 다치더라도 나는 멈추지 않고 삶을 지속할 수 있다.

다수가 오른쪽만을 응시하며 나아갈 때,
나는 소외된 왼쪽을 함께 바라보며 걷는다.
이는 거창한 정치적 이념이나 수사가 아니다.
그저 가위질 하나에도 쩔쩔매는 누군가의 당혹감을 알아채는 마음,
주류의 논리에 가려진 소수의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소시민의 따뜻한 감수성이다.

​왼손잡이로 산다는 것.
그것은 불편하고 고단한 일이었으나,
결과적으로 나를 더 넓은 세상을 품을 수 있는 '양손잡이의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나는 오늘도 오른쪽으로 흐르는 세상 속에서, 내 안에 여전히 살아있는 소중한 왼쪽의 심장소리를 느낀다.

봄 편지빗방울 자리에서 움트는 새싹처럼계절이 가면 민들레도 되고 또 무엇도 되겠지만내 가슴에그 날  오솔길이 있고 길 끝에 하얀 미술관이 있는 한그대 빗방울 자리에서 아지랑이로 피어나는 아련한 봄 편지
14/03/2026

봄 편지

빗방울 자리에서
움트는 새싹처럼
계절이 가면 민들레도 되고 또 무엇도 되겠지만
내 가슴에
그 날 오솔길이 있고
길 끝에 하얀 미술관이 있는 한
그대 빗방울 자리에서
아지랑이로 피어나는 아련한 봄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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