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2025
🍁 가을, 숲, 독서
생의 유한성을 온전히 아는 이는 세계를 다만 아깝고, 오직 귀하게 여깁니다. 붉게 물드는 단풍을 다시 볼 수 있는 이번 가을이 그에겐 너무도 귀합니다. 그래서 참으로 아깝습니다. 새로 맞는 봄도 귀해서 아깝습니다. 그는 가을이, 그리고 봄이 매번 다시 그냥 찾아올 걸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 보는 저 단풍이 생에서 마지막 보는 단풍일 수도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지금 듣는 철새의 노래 역시 귀해서 아깝고, 이제 막 말을 시작한 저 어린 것들의 웃음과 울음이 귀하고 아깝습니다. 귀하고 아까워서 삶에 다가서는 모든 사태와 존재를 마디고, 또 마디게 마주합니다.
p157
모든 생명은 사연을 품고 삽니다. 사연 없이 사는 생명은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나 아닌 존재의 사연을 헤아려보려는 마음을 점점 더 잃어가고 있습니다. 타자의 사연과 내 마음을 잇는 노력은 번거롭거나 무가치한 일이라고 여기게 된 탓일까요? 그래서 개방과 연결이라는 생명의 본능을 접고, 고립과 단절의 방향을 택하는 것일까요? 혹시 그렇다면, 그것은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만 경험한 데에서 비롯된 오해일지도 모릅니다.
p60~61
버드나무는 버드나무로 살아야 기쁘지, 소나무 흉내를 내며 사는 것으로 기쁠 수 없습니다. 찔레는 장미 흉내를 내지 않습니다. 식물 저마다가 피우고 있는 모든 꽃은 본성의 발현입니다. 우리는 그 본성이 아름답게 발현되는 것을 마주할 때 감탄하고 감동합니다. 우리가 아름다운 예술 작품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도, 진심으로 자신의 세계를 이룬(혹은 이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감동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p83~84
#어제보다조금더깊이걸었습니다 #김용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