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5/2022
'나에겐 아직도 끝나지 않은 미션이 있다'
2020년 6월 25일, 그날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70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해 대한민국 문재인 정부는 '4.3'부터 '4.19', '5.18'로 이어지는 기념일에 맞춰 행사와 이벤트를 준비했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70년이 되는 그해 6월 25일은 아무런 공식 행사도 준비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행사에 모든 재원을 아끼지 않았던 그들에게 6.25는 조용히 침묵 속에 넘어가야 하는 날이었다. 친일 적폐 청산과 역사 바로잡기를 늘상 부르짖었던 문재인 정부가 6.25에 침묵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당시 자신들이 추진하고 있는 남북 교류와 통일 프로세스를 위해서는 북한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은 없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김일성 개인숭배와 주체사상의 모순을 객관적 자료를 통해 비판한 '김일성의 아이들'이란 영화가 곱게 보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다시 생각해도 참 어이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사실을 확인하자 나에게는 일종의 오기가 생겼다. 바로 그것이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의 극장 개봉일을 2020년 6월 25일에 맞췄던 이유이기도 했다. 조직이나 자본도 없는 한 개인으로서는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과 다를 게 없었다.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겠지만, 거대한 자본이나 유명 배우가 등장하지 않는 한 편의 독립영화를 극장에 개봉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극장 측 입장에서는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극장 배급과 마케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비용도 발생한다. 영화 개봉을 위해 찾아갔던 배급사에서는 즉석에서 3천 만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움직이기 어렵다는 답변도 들어야 했다.
말 그대로 악전고투였다. 영화 제작에 갖고 있던 자금을 소진한 상태에서 어떻게 또 수천 만원의 비용을 마련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극장 배급 담당자들을 만나 영화를 설명하고 북한에 대한 진실을 담고 있는 영화를 개봉해 달라고 호소를 했다. 영화평론가들의 연락처를 어렵게 구해서 일일이 그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아쉽게도 반응은 싸늘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15년이란 긴 시간 동안 동유럽 곳곳을 다니며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던 한 편의 영화를 극장 개봉도 제대로 못한 채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정말 백방으로 편지를 쓰고 전화를 했던 것 같다.
다행히 그 시점에서 권위를 자랑하는 뉴욕국제영화제와 같은 해외 영화제들에서 '김일성의 아이들'이 본선 경쟁작품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영화 개봉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들었는지 주한 미국대사를 역임했던 해리 해리스 대사가 친히 축전을 보내왔다. 대사관 직원은 미국 대사가 영화 개봉에 축전을 보낸 전무후무한 사건이라고 의미를 덧붙였다.
'김덕영 감독님께... 무엇보다 나는 한국전쟁 당시 동유럽으로 보내졌던 북한 아이들에 관한 행적과 역사적 기록을 발굴하는데 15년이란 긴 세월 동안 헌신했던 당신의 노고와 인내심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그것은 정말 대단한 성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는 이 영화가 앞으로 올 미래의 세대들을 위해서 훌륭한 교육적인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나는 당신의 영화가 전 세계의 많은 관객들에게 한반도의 과거와 미래를 되돌아 볼 수 있게 해주는 거울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미합중국 주한 대사관을 대신해서, 다시 한번 축하를 드립니다.' (주한 미국대사 해리 해리스)
그렇게 놀라운 일들 벌어지기 시작했다. 수많은 좌파 영화평론가들이 침묵으로 일관하던 그때, 영화진흥위원장을 역임했던 조희문 교수가 영화를 보겠다고 답장을 했다. 사실 그는 몇 년 전 건강이 악화되어서 몸이 불편한 상태였다. 제대로 앉기도 힘든 그가 불편한 몸을 이끌고 1시간 30분짜리 영화를 본 뒤 영화평을 언론사에 기고했다.
'이 영화는 직접 북한 사회를 비난하지 않지만 소식이 끊긴 채 60여 년 넘게 헤어져 있는 사람들을 통해 북한 사회를 비판한다. 헤어진 남편을 기다리지만 생사조차 알지 못하는 아내, 아버지의 모습을 사진으로만 기억하는 딸은 모두 북한 사회의 오늘을 증언하는 증거들이다. 북한 사회나 권력을 비판하는 영화는 더러 있었지만 행간을 통해 이야기하는 경우는 이 영화가 처음이 아닐까 한다. 그만큼 울림도 크다. 동유럽 각국의 생존자들이 추억을 이야기하지만 그 추억은 지금 현재의 이야기로 되돌아 오는 탓이다.' (영화평론가 조희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화평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머리가 숙여지는 감사한 일들이었다. 그렇게 또 초조한 시간이 흘렀다. 6월 25일까지는 한 달도 남지 않은 어느 날, CGV와 롯데시네마에서 영화를 개봉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렇게 극적으로 202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로 극장에 개봉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아무런 공식 행사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았던 그날, 나는 한 편의 영화를 통해 6.25 한국전쟁 그 비극의 역사를 증언할 수 있었다.
영화가 세상에 선보인 지 어느덧 2년이 흘렀다. 아쉽게도 이 영화의 공식 관객수는 아직도 2천 명을 넘지 않는다. 동유럽 곳곳을 누비며 북한의 실체를 검증할 수 있는 역사적 자료를 찾아 헤맸던 15년의 시간, 갖고 있던 차를 팔고 현금화시킬 수 있는 재산들을 모두 정리해서 힘겹게 마련했던 제작비에 비하면 보상은 처참한 수준이다.
그렇게 힘들게 만든 영화를 어느 보수단체에서는 마치 자신들이 만든 영화처럼 포장을 하고 자기 단체를 홍보하는데 급급하는 것을 보며 헛웃음만 나온 적도 있었다. 심지어 그들은 '김일성에게 충성을 맹세한 자'라며 거짓말을 퍼뜨리며 영화의 확산을 막기도 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형사고발 조치를 한 상태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서울시교육감 선거를 분열시키는 일도 서슴치 않고 벌이고 있다. 도대체 그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지금 우파의 현실이다.
처음부터 무슨 대가를 바라고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니었다. 애초부터 좌파들이 지배하는 문화예술 시장 속에 흥행을 기대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지금도 변함 없는 한 가지 바람은 이 영화를 통해 우리 사회가 북한의 실체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한반도 분단의 비극과 모순의 원인이 무엇인지, 김일성에서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전근대적 개인숭배와 폐쇄적인 북한 체제의 작동원리를 객관적 자료로 검증하는 것이야말로 후대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알리는 일이라 믿었다. 과연 누가 1950년대라는 역사의 시공간 속에서 순수했던 인간들 사이의 우정과 사랑을 가로막았는지 그 실체를 밝히고 싶었다.
영화 개봉이 끝난 뒤, 전국 곳곳을 찾아 영화를 상영하고 관객들과 만나 토론을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2천 명도 못 봤다고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지난 2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사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인간의 논리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기적 같은 일들을 여러 번 경험하기도 했다. 그래서 때로는 교회를 찾아 십자가 아래서 강연을 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빼놓지 않고 전달하는 이야기가 한 가지 있다. 그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실오라기 한 올 같은 단서만을 손에 쥐고 동유럽 곳곳을 헤매고 있을 때였다. 갖고 있던 돈도 점점 떨어져가고 장기간의 힘겨운 취재로 육체의 피로도는 점점 쌓여만 갔다. '도대체 내가 왜 이 미친 짓을 시작한 것일까?' 스스로 자책하면서 '이 영화가 정말 완성될 수나 있을까' 하는 의구심까지 들던 순간이었다.
그럴 때마다 어디선가 정말 천사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서 길을 밝혀주었다. 이성과 논리의 세계에서 평생을 살았던 나 같은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일이었다. 그렇게 정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신기한 일들이 펼쳐졌다. 인간은 나약해서 작은 시련에도 좌절한다. 하지만 우리 안에는 기적을 받아들이는 놀라운 능력도 숨겨져 있는 것 같다.
인간적인 고독과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혼란 속에 찾아오는 그 기적 같은 일들을 경험하면서 언제부턴가 마음속 구석 어디에선가 한 가지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포기 하지 마라! 지금 네가 가고 있는 길이 옳은 길이다. 그러니 조금만 더 앞으로 가보자!'
그 마음속 울림이 없었다면 아마 끝까지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진정 힘겨운 순간마다 천사처럼 짠하고 나타나주었던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께 진심으로 감사한다. 극장 개봉이란 거대한 산을 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힘이 되어주었던 고마운 분들, 아마 그 감사한 마음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도 지금도 여전하다.
'조금만 더 앞으로 같이 가보자!' 여전히 나에겐 아직 끝나지 않은 미션이 있는 것 같다.
*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을 함께 보고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아무런 조건 없이 어디든 찾아갈 생각입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두 번째 신작 영화 역시 2년 전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을 잇는 올바른 우리의 역사 찾기 작업이 될 것입니다. 영화 제작에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공식 후원 계좌:
국민은행 878301-01-253931 김덕영(다큐스토리)
문의: [email protected]
(010-4732-7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