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𝐓𝐫𝐚𝐯𝐞𝐥 𝐏𝐚𝐩𝐞𝐫세계에서 가장 느린 배 일주일간 ‘바다 위 선상 학교, 그린보트’를 탔다. 부산에서 출발해 대만과 일본을 거쳐 다시 부산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핸드폰도 사용할 수 없는 망망대해의 여행. 일주...
07/08/2025

𝐓𝐫𝐚𝐯𝐞𝐥 𝐏𝐚𝐩𝐞𝐫
세계에서 가장 느린 배

일주일간 ‘바다 위 선상 학교, 그린보트’를 탔다. 부산에서 출발해 대만과 일본을 거쳐 다시 부산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핸드폰도 사용할 수 없는 망망대해의 여행. 일주일간 바다는 학교였고 배는 도시였다. 크루즈 위에서 서로 다른 속도의 사람들과 함께 걷고, 듣고, 웃었다. 그리고 멀미라는 이름의 그리움을 안고 배에서 내리기까지의 여정을 여기에 적는다.

세계에서 가장 느린 배
부산국제여객터미널에 노란 굴뚝이 인상적인 크루즈 한 척이 정박해 있었다. ‘코스타 세레나’라는 이름의 이탈리아 크루즈였다. 지구에 불시착한 거대 생명체처럼 보이는 이 친구가 7박 8일 동안 나의 집이 될 곳이었다. 부산항에서 출국 수속을 마친 후, 배에 올라서자 크루즈 선원들의 환영 인사가 들려왔다. “챠오Ciao!” 멋쩍게 인사말을 따라 발음하자 비로소 여행이 실감났다.
(···)
그린보트 여행은 크게 선내 생활과 기항지 여행 두 가지 방식으로 이뤄졌다. 도시와 도시를 이동하는 동안 여행자들은 크루즈 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다. 그리스 신화를 모티브로 한 크고 작은 강연장과 공연장, 수백 명이 동시에 식사할 수 있는 식당, 실내외 수영장과 헬스장 등 편의시설, 바다를 바라보며 사색에 잠길 수 있는 독서 공간까지, 생활에 불편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특히 이번 크루즈에서 눈에 띈 것은 ‘그린 대여소’였다. 다회용기, 수세미, 텀블러는 물론 환경 관련 도서도 대여해 주었는데, 여행이라는 행위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최소화하려는 세심한 노력이 감사했다.

첫 번째 기항지, 타이베이
부산을 떠난 우리는 첫 번째 목적지인 대만 타이베이에 도착했다. 육지의 여행이라면 국경을 넘는 순간, 확연히 달라진 풍경과 입국 절차 속에서 여행을 실감했을 테지만, 바다의 여행은 달랐다. 사방을 둘러싼 바다는 어제와 다르지 않았고, 변한 것이라곤 1시간의 시차뿐이었다.
(···)
기항지 프로그램은 문화, 역사, 환경, 평화 등 다양한 테마에 따라 조별로 나뉘어 진행됐다. 내가 선택한 코스는 국립고궁박물관과 서문정 거리 방문이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중국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예술 작품과 유물을 소장한 곳이었다. 도자기, 회화, 서예, 금속 공예품 하나하나가 중국 왕조의 문화적 흐름을 담고 있었다.

세심한 손길이 인상적인, 오키나와
1월의 오키나와는 초가을 날씨처럼 맑고 청명했다. 한적한 유적지를 천천히 걸으며 사색에 잠기기에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다만, 여행의 하이라이트였던 슈리성은 2019년 화재로 전소된 후 복원 공사가 한창이었다. 온전한 모습을 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의외의 풍경이 눈길을 끌었다. 슈리성의 복원 과정을 공개하고 있던 것이었다. 커다란 벽으로 공사 현장을 가려두는 익숙한 방식 대신 성 전체를 감싸는 가건물을 세워 비와 눈으로부터 현장을 보호하고, 유리창 안에서 인부들이 섬세하게 복원 작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특히 놀라웠던 건, 아주 낮은 높이에서도 인부들이 일일이 안전띠를 착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당연한 안전 수칙이지만, 유적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들의 세심함이 느껴졌다.

완벽한 여행의 마무리, 다케오 올레와 온천
마지막 기항지는 일본 사가 시였다. 나가사키와 가까운 이곳은 올레길과 온천으로 이어지는 고요한 길이었다. 특히 제주 올레길을 기획한 서명숙 이사장이 일본으로 건너가 함께 만든 ‘다케오 올레’가 유명했다. 총 14km에 달하는 올레길 중, 우리는 약 6km를 걸었다.
아침 호수의 고요함, 깔끔하게 정돈된 마을 길, 그리고 이끼 낀 작은 사당까지.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마음이 차분해졌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한 줄로 걷는 동안, 누군가는 앞장서 묵묵히 길을 걸었고, 또 누군가는 일행과 나란히 걸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여행의 끝, 멀미가 시작되는 순간
배에서 내려 단단한 땅을 밟았을 때, 묘하게 물렁한 감각이 발밑에 남았다. 처음엔 단순히 다리가 풀린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여진처럼 아득하지만 분명한 감각이었다. 일주일 내내 느끼지 못했던 멀미가 그제야 찾아온 것이었다. 문득 그 작은 멀미가 그리움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멀미가 조금 더 오래 내게 머물러도 좋겠다는 생각을 동시에 했다.

PAPER 2025년 272호
글 김건태
사진 김건태, 그린보트 공식 포토

PAPER 30주년 기념호를 기획 중인데특별호를 제작하려다 보니 제작비가 평소 제작비의 4배가량 많이 드는 상황. ㅜㅠ 기획을 다 엎고 새로 해야 하나 고민 중. 누가 눈 먼 돈 좀 함박눈처럼 펑펑 뿌려주세요! ㅎㅎ
05/08/2025

PAPER 30주년 기념호를 기획 중인데
특별호를 제작하려다 보니 제작비가
평소 제작비의 4배가량 많이 드는 상황.
ㅜㅠ 기획을 다 엎고 새로 해야 하나 고민 중. 누가 눈 먼 돈 좀 함박눈처럼 펑펑 뿌려주세요! ㅎㅎ

세상에 셀 수 없이 많은 브랜드가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의 무심함을 견디고, 현실의 냉정함, 고충들과 무수히 부딪혀 가며 브랜드의 고유성을 지키는 일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죠. 성공보다는 실패를 껴안기 쉬운 상업 사...
01/08/2025

세상에 셀 수 없이 많은 브랜드가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의 무심함을 견디고, 현실의 냉정함, 고충들과 무수히 부딪혀 가며 브랜드의 고유성을 지키는 일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죠. 성공보다는 실패를 껴안기 쉬운 상업 사회에서 맨땅에 헤딩하듯 척박한 조건에서도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보법을 구축해 온 8개의 브랜드를 만났습니다.

페이지를 넘겨 독보적인 길을 만들어 온 브랜드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하나씩 살펴보세요. 어느새 나만의 고유한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당신의 일상에 반짝반짝 영감이 되어줄 이야기가 PAPER 272호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PAPER에서 만나보고 싶은 독특한 브랜드, 나만 알고 싶지만 한 편으론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는 브랜드가 있나요?🙌

📌한 장의 편지로 전하는 마음
: 동시대의 편지 문화를 만들어가는 가게. 글월은 ‘편지’를 뜻하는 순우리말이며, 2019년부터 서울을 기반으로 편지와 관련된 제품과 서비스를 제안하고 있다. kr

📌오늘도 내일도 꽃과 함께
: 누구나 일상에서 꽃을 즐기는 그날까지, 국내 최초 꽃 정기구독 서비스를 운영하는 플라워 브랜드.


📌더 나은 삶, 더 나은 아이스크림 가게
: 더 나은 아이스크림 생활을 위한 단 하나의 가게를 찾는다면 단연 여기! 녹기 전에 먹어야 할 여름 메뉴로는 ‘복자살수’.it.melts

📌’믹스’가 만드는 커피의 세계
: 한국의 대표 음료 중 하나인 ‘믹스커피’를 전 세계에 알리고 있는 뉴믹스 커피. 북촌점과 성수점을 운영하고 있다. kr

📌어른들의 놀이동산
: 크리에이티브 그룹 ‘모빌스그룹’이 전개하는 성수동의 작은 극장. 매달 무비랜드가 선정한 큐레이터가 꼽은 영화를 볼 수 있는 것이 묘미. archive

📌이토록 영롱한 케이크
: 독창적인 비주얼과 이를 넘는 ‘맛’으로 승부하는 케이크 가게. 시그니처 메뉴로는 ‘Jellybalm™’ 케이크가 있다.


📌향신료의 새로운 지평
: 매해 새로 수확한 신선한 후추를 소개하며 산지 고유의 맛을 담은 후추와 뿌려먹는 후추 ‘뿌추’ 등 일상에 작은 의외성을 부여하는 향신료 브랜드. pepper_official

📌사랑과 용기, 그것만 있다면
: 가장 동시대적인 술을 만드는 주류 회사. 술을 하나의 매개체로 정의하며 시대감각을 담은 제품은 물론 ‘이쁜꽃스러운’ 모임도 운영하고 있다. epkkot

𝐓𝐫𝐚𝐯𝐞𝐥 𝐏𝐚𝐩𝐞𝐫커다란 온실 세계 여행 에세이 , 의 작가 박재현은 자신만의 속도와 시선으로 여행 이야기를 축적해왔다. 그와 잠시 함께 산책을 한 듯, 따듯하고 찬란한 여행기의 중심에 놓은 것은 장소보다는 ‘사...
08/07/2025

𝐓𝐫𝐚𝐯𝐞𝐥 𝐏𝐚𝐩𝐞𝐫
커다란 온실

세계 여행 에세이 , 의 작가 박재현은 자신만의 속도와 시선으로 여행 이야기를 축적해왔다. 그와 잠시 함께 산책을 한 듯, 따듯하고 찬란한 여행기의 중심에 놓은 것은 장소보다는 ‘사람’이었다. 농담과 오래된 음악, 여행을 좋아하는 소설가 박재현의 조지아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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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알고 싶어
“어디가 가장 특별했어요?”
여행자에게 있어 가장 어려운 질문에 나는 어렵지 않게 답한다. 이곳을 다녀온 뒤부터다. 사실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미국의 조지아 주를 떠올리면 그나마 다행이다. 미적분 문제를 본 듯한 얼굴을 자주 마주한다. 다만 요즘 들어 이곳을 아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 나만 알고 싶은 인디밴드가 유명해질 때와 비슷한 기분이지만 이곳에 있을 때 확신했다. 앞으로 훨씬 많은 사람이 찾을 거란 걸. 아시아도 아니고 유럽도 아닌 이 작은 나라는 여행자들을 끄는 이국적인 재료로 가득했다. 어떻게 요리해도 맛이 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여행은 이동
조지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마슈르트카(Marshrutka)였다. 도시를 이동할 때마다 꼭 이용했던 교통수단이다. 이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스타렉스보다 조금 더 길고 높은 차엔 훨씬 많은 의자가 놓여 있었다. 나는 운전기사 입장이 이해되긴 했지만, 그들은 여행자의 몸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무릎이 앞 좌석에 닿아 두 다리를 의자 밖으로 빼곤 했다. 다리 긴 서양 친구들도 그렇게 하니 옆으로는 다리끼리 닿았다. 게다가 엉덩이는 저려오고. 그래도 어떻게 하랴. 버텨야 했다. 오히려 이따금 이 시간을 즐기려 했다. 반복되는 진동 속에서 눈을 감고 어떤 생각에 빠져들면 마음이 차분해졌다. 특히 회상에 젖거나, 미래를 내다보는 일이 많았다. 쓸모를 바라고 하는 건 아니나 나름의 가치가 있다는 걸 알았다. 생각해 보면 여행에서 이동이 차지하는 비율이 컸다. 여행을 되돌아볼 때 아름다웠던 장소만 떠오르는 게 아니었다. 이동하면서 본 풍경과 그 안에서의 농축된 지겨움, 늘어놓았던 단상 역시 자세히 그려졌다. 필연적으로 소중해지는 것이었다. 그러니 조금 덜 괴로워해야지. 그때 눈 감고 했던 생각이 언젠가 나를 지지해 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인연
조지아에서의 마지막 날. 꼭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조르주 아저씨 집에 들러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마침 새 캐리어를 사는 데 도움을 준 친구 인가가 통역을 자처해 같이 갔다. 똑똑. 문을 두드리자 아저씨가 깜짝 놀라며 반겨 주었다. 아저씨는 처음보다 편하게 나를 대했다. 인가가 있어 소통도 수월했다. 피상적으로만 알았던 그를 깊이 바라볼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아저씨는 조지아가 아닌 아르메니아 사람이었다. 또 일반 회사를 다니다 그만둔 줄 알았는데, 얼마 전까지 건물 짓는 일을 했다고. 그러니까 우리식으로 말하면 막노동을 한 것이었다. 손이 두껍고 투박한 이유가 있었다.
(⋯)
내가 짜디(옥수수빵)를 포크로 잘라 먹으려 하자, 아줌마가 손으로 먹으면 된다고 가르쳐 주었다. 옆에서 보던 아저씨는 긴 나무 작대기를 반으로 가르는 시늉을 하며 젓가락을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내가 동양인이어서 하는 유머였다. 이런 별것 아닌 농담도 왜 다 마음에 남던지. 식사의 메인 요리는 떡갈비와 흡사한 고기였다. 아줌마는 그걸 자꾸만 내 그릇에 놔 주었다. 사람 수대로 하나씩 먹기에도 모자랐는데. 내가 다 먹으면 어느새 접시가 채워져 있었다. 많이 먹었다고 거절해도 소용없었다. 우리네 엄마, 할머니와 똑같았다. 내내 고맙고 따뜻했다. 뭐라 더 설명할 수 있을지. 모든 기운이 가슴께에서 다 합쳐진 듯했다.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지 않았다. 두 번 봤으니, 세 번, 네 번도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고 하는데, 만남이 있으면 또 다른 만남이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걸 인연이라 믿었다. 다음엔 결혼해 둘이 되어 오겠다고 하니, 여행 중에 좋은 사람 만날 거라며 응원해 주었다. 조지아에 다시 와야 할 이유가 생겼다.
아저씨, 아줌마, 정말 고마워요. 조지아가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두 분 때문인 걸 아시나요. 또 만나러 갈게요. 그때까지 건강하세요.

PAPER 2025년 272호
글과 사진 박재현

𝗜𝗡𝗧𝗘𝗥𝗩𝗜𝗘𝗪참상인에 다다르는 길현현 대표 하덕현 ‘좋은 에너지를 가지고 일하며, 직업윤리를 지키고, 손님을 기적으로 생각하며, 이윤을 남기는 사람.’ , , , , , ,  등 자신만의 철학이 담긴 20여 곳의...
27/06/2025

𝗜𝗡𝗧𝗘𝗥𝗩𝗜𝗘𝗪
참상인에 다다르는 길
현현 대표 하덕현

‘좋은 에너지를 가지고 일하며, 직업윤리를 지키고, 손님을 기적으로 생각하며, 이윤을 남기는 사람.’ , , , , , , 등 자신만의 철학이 담긴 20여 곳의 공간을 탄생시킨 하덕현이 정의한 ‘참상인’의 정의다.

1,700만 원의 소자본으로 명륜동의 작은 반지하에서 시작한 장사는 금세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얻었고, 그 기세에 힘입어 두 번째 가게 이 명륜동에서 오픈되었다. 그는 같은 문법을 반복하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새롭지 않은 건 도저히 감행할 수 없었으니까. 이후로 20여 개에 걸친 독창적인 업장이 탄생했고, 이 가게들은 또 하나의 독자적인 공간 문화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렇다면 그가 만든 가게는 무엇이 다르고, 어떻게 고유해질 수 있었을까?

자기 브랜드를 만들고 업장을 오픈하려는 사람들은 수없이 많은 상황에서 실질적으로 일에 적용할 만한 메뉴얼을 찾기 힘든데 그가 낸 책 은 많은 사람들에게 참상인의 길을 열어주며 큰 호응을 받고 있다.

Q.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이왕이면 현현도 소개해 주세요.
저는 ‘세상에 필요한 서비스를 만들자’라는 모토로 일하고 있는 ‘현현’의 대표이자, 13년 차 상인 하덕현입니다. 현현은 ‘밝고 분명하다’라는 뜻인데요. 조직을 꾸리면서 밝고 분명하기만 해도 조직이 오를 수 있는 경지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현현이라고 지었습니다.

Q. 장사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왜, 어떻게, 무엇을’에 대한 정의를 내리라고 말했어요. 이유는 뭘까요?
몇 년 전에 라는 가게를 만들 때였는데, 공사하던 현장에서 화재가 발생했어요. 만약 누구 한 명이라도 다치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겠다 싶었는데, 저한테는 아무런 명분이 없더라고요. 사업하다 보면 어려운 일이 끊임없이 생기는데 그걸 통과할 수 있는 힘은 ‘왜’에서 나와요. 그다음으로 ‘어떻게’가 중요하죠. ‘무엇을 하는가’는 세 번째 정도가 되겠네요.

Q. 책의 끝에 다다를 무렵, ‘상인은 상인답게’라는 챕터가 등장해요. 이 책의 도달점처럼 보이기도 하죠. 대표님이 생각하는 상인의 태도란 뭘까요?
단 한 문장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데, 저는 ‘좋은 에너지’라고 생각해요. 좋은 에너지로 손님과 직원을 대하는 것. 저는 제 책이 ‘좋은 에너지로 일하자’라는 말을 풀어쓴 글에 불과하다고 느껴요. 제 나름으로 장사하는 동안 항상 손님보다 약간 높은 에너지를 유지하자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어요. 직원들한테도 에너지를 뺏지 말고 에너지를 주자고 생각했죠.

Q. 장사는 결국 어떤 일인가요?
장사는 매일 매출과 손님 수가 찍히기 때문에 ‘핑계 댈 수 없는 직업’이에요. 장사의 좋은 점이 있다면, 주인의 쓸모가 정말 100%라는 거죠. 가게 이름 짓는 일부터 포크 하나 고르는 일까지 가게 주인이 다 정해야 하니까요. 장사는 온전히 오너몫이라 아무것도 핑계 댈 수 없어요.

Q. 칵테일 이름도 업장 이름도 독창적인데 이름을 지을 때 어디서 영감을 받나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확실히 책과 문장에서 영감을 받는 편이에요. 사진가 할 때도 책을 읽다가 소설에서 ‘물의 안쪽’이라는 단어를 보면 물의 안쪽을 찍고 싶더라구요. 저를 건드리는 문장이나 단어를 늘 메모하는 습관이 있었어요.

Q. 문제에 부딪혔을 때는 어떻게 하나요?
너무 막막했죠. 누가 저한테 ‘사업이 뭐냐’고 물으면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라고 대답하고 싶어요. 내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의 크기가 사업의 크기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처음에는 큰 문제 앞에 서면 빠른 방법으로 해소하고 싶었어요. 근데 사업을 하면 할수록 ‘정도’로 가는 방법밖에 없더라고요

Q. 참상인의 정의는 무엇인가요?
좋은 에너지를 가지고 일하며, 직업윤리를 지키고, 손님을 기적으로 생각하며, 이윤을 남기는 사람. 여기에 유머까지 있으면 금상첨화예요. 저는 제가 생각한 말 중에 가장 무서워하는 문장이 있어요. ‘재미없으면 모두 떠나갈 거야’라는 생각.

PAPER 2025년 272호
인터뷰 김하영
사진 이생

PAPER의 오랜 친구, 정신과 + 사이다 + 공민선이 을 출간했고, 출간 3일 만에 재쇄 소식을 접수했습니다!은 2001년부터 PAPER에 연재된 정신의 에세이를 묶은 책이에요. 정신의 톡톡 튀는 문체, 사이이다의...
20/05/2025

PAPER의 오랜 친구, 정신과 + 사이다 + 공민선이 을 출간했고, 출간 3일 만에 재쇄 소식을 접수했습니다!
은 2001년부터 PAPER에 연재된 정신의 에세이를 묶은 책이에요. 정신의 톡톡 튀는 문체, 사이이다의 심플한 듯 선명한 사진, 그리고 공민선의 감각적인 디자인이 2년간의 연재 내내 돋보였는데, 첫 책으로 묶였을 때도 사람들한테 사랑을 많이 받았더랬죠 🍀

영수증을 통해 들여다보는 정신의 일상은 소소하지만 신선하고 독특한 형식으로 많은 PAPER 독자들에게 깨알 인기를 얻었어요. 일상의 사소한 움직임이 소비로 이어지는 현대의 소비 패턴을 영수증이라는 작은 종이를 통해 정신만의 감성과 감각으로 풀어낸 . 이 책의 2탄이 25년이 5월에 이라는 책으로 발행되었답니다. 26년 전, 1999년 10월에 앳된 정신과 사이다를 발굴해서 인터뷰를 했고, 이 나오기 전에 PAPER에 2년간 연재를 붙였던 정유희 편집장은 2탄 발매 소식에 너무 기뻐 울다가 웃었다고 하네요. : )

정신이 스물 세살부터 모은 영수증이 무려 2만 5천 장에 달한다고 해요👀 스물 넷의 정신과 마흔의 정신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한 가지 분명한 건, 삶을 펼쳐내는 장소가 한국에서 미국으로 바뀌었어도 그녀의 독자적인 매력은 반짝반짝 빛을 발한다는 사실!💚 (이 벌써 교보문고 에세이 부문 베스트셀러에 올랐답니다🎉)

책이 나온지 얼마 되지 않을 무렵, “이 책의 시작이 되어준 유희언니께 책을 직접 주고 싶었다”며 정신과 사이다, 공민선이 PAPER로 기습했습니다. 정유희 편집장은 6.25 때 잃어버린 딸들이 찾아온 것 마냥 몹시 기뻐하며, 무국, 봄나물, 잡채, 열무비빔밥, 대저토마토샐러드 등의 음식을 손수 정성껏 만들어 저녁 밥상을 차렸고, 책을 건네 받은 후, 책을 꼭 끌어안았다고 하네요. 오후 5시경에 만난 이들은 밤 12시 넘어 하루가 저물도록 25년의 시간과 추억을 빛의 속도로 넘나들며 왕수다를 떨었다고 합니다. 새로 나온 책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더불어 PAPER의 미래도 함께 고민하며 폭발적으로 이야기를 나눴다고 하네요.

PAPER의 또 다른 친구, 홍진경은 정신을 두고 '지금 나를 온통 흔들고 있는 무서운 기집애'라며 남다른 애정을 드러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홍진경의 찐친구라는 제목으로 정신, 사이다, 나난, 모과가 다함께 출동한 에피소드가 #공부왕찐천재홍진경 유튜브에도 올라와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

내일 용산에 있는 흙카페에서 의 북토크가 열립니다. PAPER도 함께 참여해요. PAPEPR에서 을 보며 좋아라했던 독자님을 만날 생각을 하니 둑흔둑흔 마음이 설레네요. : )

#40세정신과영수증 #정신 #사이다 #공민선 #페이퍼

두고두고 잊지 않겠습니다remind 416
16/04/2025

두고두고 잊지 않겠습니다
remind 416

𝐏𝐚𝐩𝐞𝐫 𝐀𝐫𝐭 𝐆𝐚𝐥𝐥𝐞𝐫𝐲불쑥, 잊지도 않고 봄이 왔습니다.🌼 길을 걷다가 조금만 무릎을 낮춰 들여다보면, 여기저기 여린 싹들이 돋느라 분주해요. 점심 든든히 먹고, 한참 산책도 하다가 사무실에 돌아왔습니다. ...
21/03/2025

𝐏𝐚𝐩𝐞𝐫 𝐀𝐫𝐭 𝐆𝐚𝐥𝐥𝐞𝐫𝐲

불쑥, 잊지도 않고 봄이 왔습니다.🌼 길을 걷다가 조금만 무릎을 낮춰 들여다보면, 여기저기 여린 싹들이 돋느라 분주해요. 점심 든든히 먹고, 한참 산책도 하다가 사무실에 돌아왔습니다. 봄기운에 마음이 붕 떠서는 괜히 예전 페이퍼를 뒤적거리는데, 꼭 오늘 같은 날씨에 전하고 싶은 그림이 있지 뭐예요.

부쩍 따듯해진 날씨에 아이같이 설레는 마음으로 모구 다카하시의 그림을 호출합니다. 모두 새봄 만끽하는 주말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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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이가 쓰는 일기 같은 그림

🐇 모구 다카하시
현재 도쿄에 거주하며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모구 다카하시는 매일 본인의 SNS 계정에 일기처럼 꾸준히 그린 그림을 올리며 전 세계 사람들에게 뚜렷한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 그녀는 길들여지지 않은 자유로운 생각과 에너지를, 전통적인 미술 언어에 구애받지 않고 드로잉, 회화, 설치 등을 통해 표현한다.

Q. 요즘 당신의 마음을 가장 설레게 만드는 게 무엇인지 궁금해요.
요즘 큰 작업들을 시도하고 있어요. 작은 수첩에 하는 드로잉은 하나의 습작이에요. 작업을 위한 전 단계라고 할까요? 이 드로잉들로 인해 변주된 작업이 많이 나오죠.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큰 캔버스를 마주할 때면 정말 설레요.(웃음) 그 순간부터는 아무도 저를 간섭할 수 없거든요. 온전히 저만의 시간이니까요. 아무래도 그림을 그릴 때 제일 행복해요.

Q. 자연의 여러 오브제 중 동물이 단연 그림에 많이 등장해요. 유독 동물을 많이 그리는 이유가 있나요?
지금도 저는 새와 강아지, 고양이 등의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하고 있고, 제게는 그들이 가족과 같은 존재들이에요. 어렸을 적부터 사교성이 없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내성적인 성격 탓도 있었겠지만, 사람들보다는 동물들과의 교감이 더 편하고, 동물들로부터 많은 영감과 에너지를 얻었어요.

Q. 당신의 그림은 어린아이가 그린 그림처럼 천진하면서도 과감해요. 본인 스스로 자신의 성격이 다른 어른에 비해 조금은 철이 없다거나 아이 같다고 생각하나요?
아니요,(웃음) 하지만 저는 천진난만하고 계산 없이 순수한 아이들의 모습을 좋아하고, 상처받을 게 두려워 먼저 인사 건네는 걸 꺼려하는 어른들과는 달리 적극적인 아이들의 행동과 말투 등을 좋아해요. 제 그림은 어쩌면 어른이 되어서도 아이들의 그런 모습들을 놓치고 싶지 않은 강한 제 의지의 표현일 수도 있구요. 아이들의 모습이 제 작업의 충분한 소재가 되고 영감을 줘요.

PAPER 2019년 252호
인터뷰 정유희
그림 모구 다카하시
#페이퍼 #매거진페이퍼 #페이퍼252호 #모구다카하시 #그림 #일러스트 #새봄

멋진 문화공간 무대륙에서 발견한 멋짐 터지는 잡지들
18/03/2025

멋진 문화공간 무대륙에서 발견한 멋짐 터지는 잡지들

11월 중순에서부터 2월까지는 태국 북구 치앙마이 여행의 최적기이죠. 태양의 온도는 초가을의 온도, 주머니 가벼운 여행자를 독려하려는 듯 물가는 저렴하고 음식은 어딜가나 맛있으며, 자전거를 타거나 뚜벅뚜벅 걸어 다니...
19/02/2025

11월 중순에서부터 2월까지는 태국 북구 치앙마이 여행의 최적기이죠. 태양의 온도는 초가을의 온도, 주머니 가벼운 여행자를 독려하려는 듯 물가는 저렴하고 음식은 어딜가나 맛있으며, 자전거를 타거나 뚜벅뚜벅 걸어 다니기에도 치안이 좋습니다. 치앙마이 전통과 디자인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는 시장과 선데이마켓도 잘 꾸려져 있고, 문화적인 크고 작은 행사나 축제도 자주 열리죠. 무엇보다도 치앙마이에선 사람들이 바늘 끝 같지 않고 순해서 그들의 미소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이 여행기는 몇 년 전, 정유희 편집장이 김연수 작가, 권대웅 시인, 정끝별 시인과 함께 당시 치앙마이에 살던 변왕중 작가 가족을 방문하며 치앙마이를 유람한 내용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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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희의 치앙마이에서의 새해 상봉기

# 따뜻한 치앙마이에서 며칠을 보내다

치앙마이에서 3년을 산 변왕중 작가의 엽렵한 아내, 박민정이 어찌나 스케줄을 알차게 짜 놓았는지 4박 5일 동안 치앙마이의 알맹이를 전부 알현할 수 있었다. 치앙마이에서 가장 신성시 여긴다는 황금탑이 있는 사원도 갔다 오고, 몽족이 사는 그림 같은 고산족 마을 에서 솜씨 좋은 몽족이 수놓은 예쁜 파우치도 사고, 세계 3대 온천이라고 이곳 사람들이 주장한다는 의 유황 온천물에 몸을 담그기도 했고, 홍대의 가로수 길 보다 곱절은 낭만적이었던 에서 깜짝 생일파티도 했고, 올해 마지막 날, 풍등이 뜬 핑강을 바라보며 황홀한 디너를 영접하기도 했다. (⋯)치앙마이의 가장 큰 로컬시장인 에서는 솜씨 좋다는 치앙마이 사람들의 진면목을 만끽할 수 있었다. 치앙마이 사람들의 타고난 디자인 감각에 몇 번이나 화들짝 놀랐다.

#자전거를 타고 홀로 타패 뒷골목을 누볐던 시간

새해 소원을 담은 풍등을 띄우기 위해 치앙마이 타패 거리로 운집한 어마어마한 사람들 속에서 서로를 잃어 버렸다가 맥도날드 앞에서 극적으로 상봉한 우리들은, 맥주를 마시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새해를 함께 맞이했다. 그날 새벽,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취한 박민정의 “스피드, 스피드~ 꺄!” 하는 외침을 들은 기사 아저씨의 폭주로 엄청난 속도를 내는 툭툭을 타고 오다가 혼절할 뻔하기도 했다. 그리고 치앙마이에서 먹었던 음식은 어찌나 맛있었는지… 서울로 돌아와서 혹독한 금단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서울의 태국음식점에서 만난 음식은 태국음식이지 치앙마이 음식은 아니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신선하고도 찡한 맛의 솜땀과 부드러운 어묵이 말간 국물에 잠겨 있던 쌀국수를 잊지 못하고 있고, 밋밋해 보였지만 징하게 맛있었던 볶음밥 카오팟도 너무나도 그립다.

그렇다 해도, 치앙마이에서의 며칠 중 가장 진한 인상으로 남아 있는 시간은 나 혼자 타패 거리를 어슬렁거렸던 시간이다. 자전거를 빌려서 쏘다녔던 시간…. 나는 수학여행에서 탈출한 청소년처럼 신바람이 났고, 자전거 페달을 밟을 때마다 흥분이 물컹물컹 솟아올랐다. 자전거 덕택에 타패의 뒷골목에 다다를 수 있었고, 길고양들이에게 밥을 주는 선량한 아저씨를 만날 수 있었고, 또 살아가는 데에는 하등 쓸모가 없는 일들에 관한 생각이나 상상을 실컷 할 수 있었다.

12월, 치앙마이는 이상기온에 시달리고 있었다. 영하가 아닌 영상 5도. ‘수십 년 만에 한파가 왔다’며 치앙마이 사람들은 너도 나도 털모자를 쓰고 다녔고, 에 갔을 땐 급기야 거리의 개가 얼어 죽을까봐 옷을 입혀 놓은 온정을 포착하기도 했다. 하하하~
술이 덜 깬 왕중이가 데려간 산속의 사원 앞 드림 캐처 좌판에다 핸드폰을 두고 왔을 때 100미터 넘는 길을 달려와 내게 핸드폰을 건네주던 아저씨의 순전한 눈빛 또한 잊을 수 없다. 우린 언제부터 저런 눈빛을 잃어버리고 살게 된 걸까….

그간 ‘안녕하지 못해’ 불안하고 분개한 눈빛의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한숨 밖에 나오지 않았으므로, 이곳에서 어떤 황홀하거나 새롭거나 맛있거나 흥미진진한 것들을 만났다 하더라도, 이곳 사람들의 치장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순한 눈빛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만큼 신기하고도 감사한 일은 없다.

서쪽에 위치한 싼캄팽으로 내달리면서, 나는 그 언제가 남쪽으로 떠난 너를 오래 생각했다. 네가 들려주었던 음악과 함께, 네가 드물게도 순한 눈빛과 내가 좋아하는 건조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었다는 게 아득하게 떠올랐다.

PAPER 2014년 2월호
글과 사진 정유희

오랫동안 PAPER의 고유한 감성의 한 축을 담당했던 밤삼킨별 김효정. 무려 15년 전, 2월호 PAPER에 담겼던 밤삼킨별 앳코너를 호출했습니다. 봄을 한껏 기다리는 마음은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지 않을까요?...
14/02/2025

오랫동안 PAPER의 고유한 감성의 한 축을 담당했던 밤삼킨별 김효정. 무려 15년 전, 2월호 PAPER에 담겼던 밤삼킨별 앳코너를 호출했습니다. 봄을 한껏 기다리는 마음은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지 않을까요? 봄을 더 기다리게 만드는 2월, 사실 겨울도 봄도 아닌 2월을 그래서 더 좋아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요.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는 밤삼킨별만의 따스한 감성을 여러분께 오랜만에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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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같이 기다려줄래?
마음은 져도 싹트고 꽃 필 그 봄을 함께 견뎌볼래?”

PAPER 2010년 2월호
글과 사진 밤삼킨별

𝗜𝗡𝗧𝗘𝗥𝗩𝗜𝗘𝗪'성실한 시간의 레이어로 만든 브랜딩'런던베이글뮤지엄 CBO 이효정‘료’라는 닉네임으로 불리는 이효정의 연희동 이층집에 인터뷰로 발을 디뎠을 때, 그녀가 애정해서 하나하나 구매했을 수많은 책과 만물학...
21/01/2025

𝗜𝗡𝗧𝗘𝗥𝗩𝗜𝗘𝗪
'성실한 시간의 레이어로 만든 브랜딩'
런던베이글뮤지엄 CBO 이효정

‘료’라는 닉네임으로 불리는 이효정의 연희동 이층집에 인터뷰로 발을 디뎠을 때, 그녀가 애정해서 하나하나 구매했을 수많은 책과 만물학적 애장품들이 너무 자연스럽게 그녀와 찰떡궁합을 이루고 있었다. 인터뷰하기 전까지 나름대로 조사하고 관찰한 그녀의 체세포가 초감각으로만 이루어져 있을 줄 알았는데, 그 감각의 베이스에는 성실함이 진득하게 포진하고 있었고, 그녀가 표방하는 상업적 예술성에는 사람과 사물을 오래 관찰하며 체득한 시간의 레이어에 관한 고유의 철학이 깊이 배어 있었다. 그녀와의 5시간 동안의 인터뷰는 ‘누구도 아닌 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정확하고도 단호하게 표명하는, 그렇게 경계를 훌쩍 뛰어넘는 현실적이면서도 초현실적인 시간이었다.

Q ‘우리는 모두 다르게 태어났는데 왜 똑같아지기를 바라나요?’라는 료 님의 슬로건이 굉장히 와닿았어요. 료 님이 여러 브랜드를 만들어 왔는데, 이 브랜드들이 각각 특색이 있으면서도 브랜드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가 있어 독자성이 돋보이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네, 저는 그럴듯해 보이는 혹은 유명한 사람의 무엇을 좇기보다 ‘고유한 나만의 것을 찾아야 한다’라고 늘 생각해요. 네다섯 살 때부터 ‘사람은 왜 태어났을까’, ‘우주엔 다른 존재가 없을까’ 같은 철학적인 생각들을 한 것 같은데, 세상에 대한 궁금증이 많고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어요. 제가 세 자매 중에 막내인데 항상 엉뚱하고도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많이 던지는 그런 캐릭터였죠. 그래서 ‘너 좀 이상하다’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어요. 보면, ‘왜?’라고 직설적으로 질문하는 것들이 한국에서는 부정적으로 인식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제가 어릴 적에 던졌던 질문 대부분이 부정적인 피드백으로 돌아왔거든요. 그래서 어렸을 때 말을 잘 안 했어요. 초등학교부터 한 20대 때까지는 말을 많이 아꼈는데, 이게 약간 질량 보존의 법칙처럼 말 대신 관찰하는 걸로 나타나더라고요. 궁금한 게 많고, 느끼는 것도 많은데 말을 안 하는 버릇이 드니, 그 답답함을 ‘관찰’로 해결했던 것 같아요.

Q 트렌드보다는 자기 자신한테 민감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네. 트렌드를 좇기보다는 자신의 진심과 변화에 관심을 더 가져야 할 텐데 누군가 만들어 놓은 거대 트렌드에 편승하는 사람이 돼서 그것을 발 빠르게 캐치하는 것이 좋은 것처럼 교란하는 이런 상황이 매우 아쉬워요. 한국 사람들이 유행에 민감하고 트렌드를 잘 좇아간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그 말은 곧 자기 생각이 없다는 말과 같다고 보거든요. 그런데 그것이 아주 괜찮은 이야기처럼 포장돼서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자살지수가 가장 높고, 행복지수가 낮은 나라인데도 유튜브 조회수 올리듯 삶을 사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죠.

Q 나만의 생각으로 고유의 선택을 하는 것, 이런 생각이 브랜드와 연결되는 거로군요. 

맞아요. 런던베이글뮤지엄도 이런 생각과 연결된다고 볼 수 있죠. 이를테면 빵을 매개체로 진짜 나(료)를 표현했을 때, 이것을 만드는 사람들과 빵을 비롯한 그 가게의 아우라에 진심과 일관성이 생성되더라구요. 이렇듯 어떤 진심과 일관성으로 돈을 벌고 그것으로 사랑받는 방식을 보여 준다면,  이렇게도 세상이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겠죠. 그래서 저는 트렌드에 민감해야 할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Q 나답게 산다는 게 참 중요한데 어려워 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아요.

다들 잘 모르는 것 같은데, 그렇지만 질량 보존의 법칙처럼 어떤 세대든 상관없이 자기의 삶에 대해 궁금해 하고 더 나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결국 어떤 고정값처럼 공존할 거라 생각해요. 결국 진짜 나로 살아가는 것만이 이 세상에서 잘 살아 남을 수 있늡 유일한 방법이라는 걸 표현해야 하는 의무가 제게 짙게 있어요. 결국 그 행위가 나를 구원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거든요.

Q ‘료 님이 내 인생의 롤모델이다’라고 말하는 청년들이 많을 것 같아요.

그와 비슷한 메시지를 보내는 젊은 친구들이 정말 많아요. 그때마다 가꼭 답장을 드려요. ‘절대 제가 당신의 롤모델이 되면 안 되고 당신 자신이 스스로의 롤모델이 되게끔 탐구하라’라고요.

PAPER 2025년 271호
인터뷰 정유희
사진 이효정, 노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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