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8/2023
일본의 대표적 지성이자 레비나스 연구자인 우치다 다쓰루의 ‘레비나스 3부작’을 완성하는 마지막 책 『우치다 다쓰루의 레비나스 시간론: 주체와 타자 사이에서 흐르는 시간에 관하여』가 출간되었습니다. 🦋
이 책은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대표작 『시간과 타자』의 독본입니다. 『시간과 타자』는 레비나스 저작 가운데에서 가장 얇으면서도 난해하기로 이름 높아, 독해하기 어려운 책으로 손꼽히는 책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우치다 다쓰루 선생의 친절하고도 정확한 주해서를 기다려주신 독자분들이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시간과 타자』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얼마 뒤, 가족과 친척 대부분을 강제수용소에서 잃고 파리로 돌아온 레비나스가 동료들을 마주하며 행한 네 차례 강연을 토대로 엮은 책입니다.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하지요. “이 강연의 목적은 시간이란 고립한 단독의 주체와 관련된 일이 아니라 주체와 타자의 관계 그 자체라는 것을 증명하는 데 있다.” 정신에는 외부가 없고 미래도 없다는 것, 모든 것은 ‘어수선하기는 하지만’ 기지(既知, 이미 도래한 앎)라는 것, 인간에게는 타자가 없다는 것은 플라톤 이래 오랫동안 서양철학을 지배해온 관념이었습니다. 그런데 레비나스는 그런 고립된 주체에게는 시간이 흐르지 않으며, 시간이란 주체와 타자의 관계라고, 얼굴과 얼굴이 서로 마주하는 가운데 미래가 현재 속에 슬며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자기동일적인(자기 자신에게 묶여 있는) ‘나’로부터 벗어나 그 바깥을 사유하는 것이 곧 레비나스의 시간론임을 암시하는 문장입니다. 레비나스는 ‘나’ 아닌 것을 상상할 수 없고 ‘지금/여기’에만 묶여 있는 사람들, 과거를 ‘조금 전의 현재’로 또 미래를 ‘조금 후의 현재’로밖에 보지 않는 사람들, 누구에게도 ‘뒤처짐’과 ‘죄의식’과 ‘응답 책임’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 즉 기존 서양철학 존재론의 권역으로부터 나올 수 없는 사람들 손에서 홀로코스트가 만들어졌으리라는 의혹을 품었습니다.
『시간과 타자』는 짧고도 난해한 책입니다. 40년 가까이 레비나스를 연구해온 우치다 다쓰루 역시 몇몇 개념에 대해서는 “끝끝내 그것을 ‘습득’할 수 없었”다고 고백합니다. 레비나스 독해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우치다 다쓰루는 어린아이가 모어를 습득하는 방법으로 한 글자 한 글자 따라가며 ‘레비나스어’에 다가갈 것을 권합니다. 요컨대 이 책은 레비나스어 초급자(한때 『시간과 타자』를 읽으려다 낙오한 독자들, 혹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는 초심자들)를 위한 독본입니다. 혹은 레비나스를 잘 모르더라도 ‘타자’를 적극적으로 상정하는 형이상학, 무참한 현실 앞에서 무한한 책임감을 사유하는 철학에서 영감을 얻고자 하는 독자분들을 위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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