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8/2025
최지은 작가(기혼 무자녀 여성들(딩크, 싱크)의 이야기를 담은『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저자)가 자신의 뉴스레터 '없는 생활'에 에 대한 리뷰를 아주 세세히 쓰셨네요. 덕분에 오늘 새 정기 독자님들이 여럿 생겼습니다. 정말 감동이고, 고맙고, 힘이 됩니다.
https://lifewithout.stibee.com/p/75
-- 최지은 작가님의 글 그대로 옮깁니다 --
죄송합니다. 저는 ‘나만 아는’ 무언가가 딱히 없는 사람인데 괜히 제목으로 어그로 한번 끌어봤어요. 왜냐하면 제가 좋아하는 잡지 얘기를 하고 싶었거든요.
월간 의 존재를 안 것은 몇 년 전입니다. “일하는 사람이 글을 써야 세상이 바뀝니다”라는 슬로건이 인상적이었어요. 하지만 이미 구독 중인 잡지들도 제때 읽지 못해 해지하는 마당에, 새로운 종이 잡지를 구독할 결심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어느 날, 저답지 않은 추진력으로(보통 일하기 싫을 때 생겨나는 에너지) 정기구독을 신청했고 그 후 매달 한 권씩 자그마한 이 집으로 옵니다.
은 크게 ‘작은책이 만난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 ‘일터 이야기’, ‘세상 보기’, ‘쉬엄쉬엄 가요’ 등의 챕터로 구성됩니다. 인터뷰 읽기를 좋아하는 저는 ‘작은책이 만난 사람’을 가장 먼저 펼치는데, 지난 5월호에는 창간 30주년을 맞아 과 동갑내기인 1995년생 특수교사 김다원님, 미디어 활동가 양동민님, 변호사 양현준님의 인터뷰가 실렸어요. 6월호에는 노들장애인야학 활동가 대추님, 7월호에는 청계피복노조에서 활동하다 지금은 장례지도사로 일하고 계신 박재익님, 8월호에는 부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부천시민의원 조규석 원장님 인터뷰가 실렸습니다. 잡지의 성격은 누구를 만나 어떤 이야기를 듣느냐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는 면에서 의 지향점을 알 수 있지요.
노동, 환경, 인권, 퀴어, 성평등, 역사, 지역, 평화, 이주, 정치 등 시사주간지만큼이나 다양한 주제의 글이 실리는 의 특별함은 역시 ‘일하는’ 사람의 글에서 나옵니다. 사건과 이슈를 중심으로 다루는 보도 기사와 달리, 누군가의 노동과 일상이 매일 어떻게 굴러가는지 들려주는 글은 나와 그의 연결감을 보다 단단하게 느끼도록 만들거든요. 폭염 속 지붕 없는 곳에서 일하는 것에 대한 형틀목수의 글, 고용 불안정과 기관의 갑질 속에서 교육 의지를 잃고 지쳐가는 한국어 강사의 글, 도시의 쓰레기를 치우는 과정에 관한 환경미화원의 글, 치매노인 돌봄의 고충을 털어놓는 요양보호사의 글은 내가 몰랐던 세계를 알려주기도 하고, 안다고 착각했던 세계를 좀 더 선명히 보여주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저는 지난 수년간 발생한 쿠팡 노동자들의 산재 사건에 관해 대략 알고 있었지만, 쿠팡 택배노동자의 하루가 어떻게 구성되는지는 쿠팡 택배노동자이자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 쿠팡본부 준비위원장 강민욱님의 글 덕분에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은 일일이 계단을 이용해 배송하며 프레시백도 회수해야 하고, 쿠팡이 시행하는 무료반품 제도 때문에 반품이 쏟아지는데 앱에 할당된 개수와 고객이 집 앞에 내놓은 개수가 맞지 않으면 그만큼 더 시간을 잡아먹히다니 글로만 봐도 숨이 차고 스트레스가 높아지더군요. “365일 하루도 쉬지 않는 배송, 주간 배송 2회, 야간 배송 3회, 하루 총 5회 배송, 지연을 허용하지 않는 정시배송”이라는 시스템이 과연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인지, 우리 사회의 속도는 더 빨라지기보다 더 느려져야 하는 게 아닐까, 이 속도를 늦추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하는 고민이 이어졌습니다.
필자들의 소개말을 읽는 것은 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입니다. ‘만화가’, ‘평화운동가’, ‘전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 강사’ 등 직업이나 직함이 적힌 경우도 있지만, ‘서울 마포구에 사는 청년’, ‘시간제 노동자이자 돌팔이 농부’, ‘느린 학습자·이주 배경 아동 교육자’, ‘엄마의 요양보호사. 고흥살이 3년 차’, ‘시나리오 작가 겸 수학 강사’처럼 생활의 면면이 담긴 소개말도 적지 않거든요. 볼 때마다 궁금해지는 건 ‘돌아온 유기농 펑크 포크의 창시자’라는 문구인데, 언젠가는 저도 저렇게 근사하고 의미심장한 소개말을 만들어보리라 다짐하게 됩니다.
에는 노동을 중심으로 하는 글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삶에 관한 글도 담겨 있는데, 엄마의 어린 시절 얘기를 듣는 것 같은 신영옥 님의 ‘살아온 이야기’ 시리즈는 지난 호 이야기를 까먹고 읽어도 매번 재미있습니다. 동네에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왔던 순간, 이웃들이 텔레비전 있는 집에 모이던 시절 여자 가수만 나오면 “이미자여?”라고 물었다던 옆집 아주머니, 연탄가스 마신 사람에게 동치미 국물을 먹여 깨운 에피소드 등 급변하는 시대 속 풍경과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생생하게 녹아있거든요. 노무사 권동희님의 ‘작은책 산재상담소’와 박소영님이 그리는 ‘베짱이의 도서관 일기’, 김민님의 ‘성소수자로 살아가기’도 제가 좋아하는 코너입니다. 최근 연재를 시작한 김홍모님의 ‘메께라_세계자연유산을 지킨 덕천리 주민 투쟁기’는 다음 편을 궁금하게 만드는 절단신공이 돋보이고요. (‘메께라’는 “남의 말이나 행동에 놀라거나 기가 막힐 때 내는 제주어”라고 합니다.)
무엇보다 제가 이 ‘작은책’을 놓을 수 없는 이유를 찾은 건 지난 6월호에 실린 사이님의 글에서였어요. “너무 다른 사람은 우리를 피곤하게 하지만 너무 똑같은 사람은 ‘또 다른 나’일 뿐이어서 아무도 만나지 않은 것과 같다. 그럴 때 ‘우리’는 ‘나+나’인 것이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대도시에서 배우자와 단둘이 살고 가까운 사람 몇몇하고만 주로 대화하며 온종일 집 밖에 한 발짝도 나가지 않는 날도 있는 저는, 물론 이렇게 사는 것을 좋아하고 익숙하지만 한편으론 ‘또 다른 나’만을 만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뜨끔하더군요. 물론 ‘너무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우리’가 ‘나+나’에만 머무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다른 사람과 다른 삶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보려 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추신. 요즘 갑자기 꽂힌 대상이 있으신가요? 저는 문득 조용필의 ‘꿈’에 빠져 아침저녁으로 듣고 있습니다. 발표된 지 30년도 더 지난 노래인데, 마침내 이 곡을 이해하는 날이 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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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종이 잡지를 구독할 결심이 서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