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025
[교양] ‘춘천향교’에서 조선의 교육과 유교 정신을 살피다
[취재=박도협 기자]
춘천 향교 앞마당, 우두커니 선 은행나무는 노란 잎을 털어내며 가을이 찾아왔음을 몸소 알리고 있었다.
우리 대학 구성원이라면 춘천 향교를 지나쳐 보곤 한다. 익숙한 장소지만, 정작 그 의미와 유래에 대해서는 낯설게 느끼는 이들도 많다. 본보는 선선한 가을 아침, 춘천 향교를 직접 찾아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봤다.
향교는 조선 시대 유교 교육을 담당하던 중등 교육기관으로, 불교 국가 고려를 무너뜨리고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은 조선이 전국적으로 설치·운영한 유학 교육기관이다. 조선에서 양반이 되기 위해선 양반 가문 출신이라는 혈통적 조건과 더불어 과거 급제가 필수였다. 과거 급제를 위한 여정으로 향교는 초등 교육기관인 서당, 고등 교육기관인 성균관과 함께 조선의 교육 체계를 구성했다.
향교의 서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중앙에 유생들이 공부하던 ‘명륜당’이 자리하고, 그 양옆으로 오늘날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위치한다. 다시 안쪽으로 한 번 더 문을 통과하면 ‘큰 성인이 있다’는 뜻의 ‘대성전’이 나타나며, 이곳에는 유교의 상징인 공자가 모셔져 있다. 대성전 양옆으로는 공자의 제자들을 모신 ‘동무’와 ‘서무’가 각각 자리한다.
이처럼 교육 공간이 앞에, 제사 공간이 뒤에 배치된 구조를 ‘전학후묘(前學後廟)’라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 향교의 약 90%가 이러한 배치를 따르고 있다. 이에 대해 노성호 우리 대학 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원은 “유교적 질서를 중시하던 조선 사회에서는 공부보다 제사가 더 중요한 가치로 여겨졌고, 산지가 많은 지형 특성상 제사 공간을 뒤에 두는 것이 시각적으로 더 위엄 있어 보이기 때문에 전학후묘 구조가 일반화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나머지 10%에 해당하는 ‘전묘후학(前廟後學)’ 형식도 존재한다. 노 연구원은 이에 대해 “이 구조는 반드시 평지에서만 가능하며, 유교적 위계 질서상 ‘앞’이 ‘뒤’보다 우선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반영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 연구원은 향교와 오늘날의 대학이 지닌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준비하는 교육기관이라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향교는 오로지 과거 급제를 위한, 말하자면 오늘날의 공무원 시험 준비 기관에 가깝다”고 비유했다.
한편, 춘천 향교는 단지 교육의 역사만을 품고 있는 공간이 아니다. 노인들을 위한 전통 잔치 ‘기로연’, 청년들을 위한 ‘전통 성년례’, ‘전통 혼례식’도 춘천 향교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 외에도 춘천향교장학재단을 통해 지역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교육과 문화 계승의 장으로서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은행나무는 과거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쳤던 장소로 알려져 있다. 춘천 향교의 은행나무, 그 아래에서 우리는 공자의 가르침과 조선 시대의 유교 교육을 다시금 되새겨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