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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 키스여느 아침과 마찬가지로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Buena Park 한남체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타운뉴스 가판대로 향하려는데 까마귀 소리가 요란하다. 소리 나는 쪽을 올려다보니 광고탑 위에 까마귀 두 마리...
09/22/2025

모닝 키스

여느 아침과 마찬가지로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Buena Park 한남체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타운뉴스 가판대로 향하려는데 까마귀 소리가 요란하다. 소리 나는 쪽을 올려다보니 광고탑 위에 까마귀 두 마리가 마주보고 앉아 소리를 내고 있었다. 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지켜보았다. 수컷으로 보이는 놈은 딴청을 부리고 암컷이 계속 앞에서 구애하고 있었다. 잠시 후 마지 못하는 듯 수놈이 고개를 돌려 암놈과 주둥이를 잠시 마주 대고 있었다. 그 틈에 셔터를 눌렀다. 멋진 모닝 키스였다.

9월 18일(목) 오전 6시 34분 아이폰 13X로 촬영

가 볼 만한 곳헌팅턴 라이브러리 - San Marino시정식 명칭은 The Huntington Library, Art Museum, and Botanical Gardens이며, 줄여서 The Huntington 또는...
09/22/2025

가 볼 만한 곳
헌팅턴 라이브러리 - San Marino시

정식 명칭은 The Huntington Library, Art Museum, and Botanical Gardens이며, 줄여서 The Huntington 또는 그냥 “헌팅턴”이라고도 함.

설립자 헨리 E. 헌팅턴(Henry E. Huntington)과 아라벨라 헌팅턴(Arabella Huntington)이 1919년에 설립했으며, 도서관, 미술품 체계, 광범위한 식물원 및 정원이 조합된 복합 교육·연구 기관이 있다.

도서관에는 희귀본·초기 인쇄본·원고·고서 등이 소장되어 있다. 예컨대 구텐베르크 성서, 셰익스피어 초기 판본 등이 있다. 다만 실제 관람 가능 전시와 연구자 접근 가능한 소장품 간에는 차이가 있음. 연구자용 열람은 사전 승인 절차 등이 요구된다.

아트 갤러리에는 유럽(특히 영국·프랑스 등) 18~19세기 회화 및 장식미술 작품들과, 미국 회화(18~20세기 초)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약 50,000여 점의 미국·유럽·동아시아 작품을 포함한 아트 뮤지엄 컬렉션이 있다.

정원의 규모는 약 120 에이커에 달하며 사막 정원(Desert Garden), 일본정원(Japanese Garden), 중국정원(Flowing Fragrance Garden), 장미정원, 야자수 및 아열대 식물, 허브정원, 어린이 정원, 보존 온실(Conservatory) 등의 다양한 테마 정원들이 있다. 살아 있는 식물의 다양성도 매우 높아 약 84,000개체에 달하는 식물이 있고, 약 27,000 종(taxa) 정도 된다.

공공 관람 시간: 매주 화요일 휴관. 나머지 요일(월요일, 수~일요일)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개장. 입구 체크인 마감 시간은 오후 4시15분.

주소: 1511 Oxford Road. San Marino, CA 91108
(Allen Ave와 교차되는 Orlando Rd 상의 두 번째 입구)
문의: (626) 405-2100

나는야 1.5세 아줌마이중언어의 속사정언젠가 아이들을 훈육하다가 무심코 “Stop it!”이라고 소리친 적이 있다. 같은 상황에서 “그만해”라고 말했을 때와는 뉘앙스가 달라진다. 영어는 순간을 날카롭게 끊어내는 칼 ...
09/22/2025

나는야 1.5세 아줌마
이중언어의 속사정

언젠가 아이들을 훈육하다가 무심코 “Stop it!”이라고 소리친 적이 있다. 같은 상황에서 “그만해”라고 말했을 때와는 뉘앙스가 달라진다. 영어는 순간을 날카롭게 끊어내는 칼 같고, 한국어는 말끝에 여운이 남아 마음을 흔드는 종소리 같았다. 두 언어는 내 안에서 늘 충돌하고 협력하면서, 때로는 나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나는 두 언어를 다 할 수 있다는 장점을 안고 살지만, 동시에 어느 쪽에서도 온전히 안착하지 못한 채 떠 있는 사람처럼 살아왔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무렵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대학교까지 마쳤다. 그리고 결혼과 육아를 지나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어느덧 8년째 살고 있다. 내 삶은 한국어와 영어가 교차하며 그려진 궤적 위에 놓여 있다. 이민 초기에는 점심시간에 친구들이 주고받는 농담을 이해하지 못한 채 멀뚱히 앉아 있던 기억이 있다. 집에 돌아와 부모님과 한국어로 이야기했지만, 그 한국어는 이미 어딘가 낯설어져 있었다. 미국 학교에서 배운 영어가 서툴게 몸에 붙는 동안, 집에서 쓰는 한국어는 점점 짧고 투박해졌다. 학교에서는 영어, 집에서는 한국어,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완전히 편안하지 않았다. 언어의 틈바구니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그 틈바구니에서 나는 종종 언어가 세계를 나누는 방식을 실감했다. 같은 사물과 감정을 가리키면서도 두 언어는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곤 했다. 색 하나만 봐도 그렇다. 영어에서 yellow는 그저 노란색이다. 조금 더 세밀히 구분하려면 light, dark, pale 같은 수식을 붙인다. 그러나 한국어의 노랑은 훨씬 다채롭다. 노랗다, 노르스름하다, 누리끼리하다, 샛노랗다. 같은 노란색이라도 상황과 질감, 분위기에 따라 다른 단어를 고를 수 있다. 샛노란 병아리와 누리끼리한 종이는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언어 하나가 세계를 바라보는 감각을 이렇게 달라지게 한다.

감정의 언어도 그렇다. 영어의 “I’m sorry”는 단순한 사과를 넘어선다. 누군가 가족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병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I’m sorry”라고 말하면 그 안에 공감과 위로가 담긴다. 그러나 한국어에서 “미안해”는 거의 언제나 내가 잘못했을 때 쓰인다. 같은 상황에서 “미안해”라고 말하면 오히려 어색하거나 무례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안타깝다” 혹은 “마음이 아프다”라는 말을 꺼낸다. 단어 하나가 담는 문화의 결이 이렇게 다르다.

이렇듯 두 언어는 쓰임새도 다르고 전달되는 뉘앙스도 달라서, 어떤 순간에는 영어가 더 자연스럽고, 또 어떤 순간에는 한국어가 더 편안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부터 두 언어 사이에서 작은 실험을 하곤 했다. 감정을 꺼낼 때는 영어가 훨씬 자유롭고, 무언가를 묘사할 때는 한국어가 더 풍부하고 매끄럽게 느껴졌다.

예를 들어 분노나 애정, 사랑 같은 감정을 고백할 때 영어는 덜 무겁다. “I love you”는 일상적인 말이지만, “사랑해”라고 말하려면 훨씬 큰 결심이 필요하다. “I’m mad”라고 하면 금세 감정이 터져 나오지만, “화났다”라고 하면 더 단단하고 불가역적인 감정처럼 들린다.

반대로 무언가를 묘사하거나 설명할 때는 한국어가 훨씬 세밀하다. 비를 예로 들어보자. 영어에도 It’s drizzling이나 It’s pouring처럼 비의 양과 세기를 표현하는 다양한 말이 있다. 그러나 한국어는 거기에 소리와 모양까지 덧입힌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주룩주룩’ 떨어지고, ‘퍼붓는다’고 말할 때, 단순히 양과 세기를 넘어 비의 질감과 소리까지 귀에 전해진다. 같은 현상을 묘사해도 언어가 끌어내는 감각은 이렇게 달라진다. 그래서 내 안에서 영어는 감정의 언어이고, 한국어는 묘사의 언어다.

이제 나는 아이들과 함께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아이들도 곧 나처럼 언어의 경계에서 불편함과 답답함, 때로는 서러움을 겪을 것이다. 영어로는 쉽게 말할 수 있는데 한국어로는 무겁게만 들리고, 한국어로는 풍성하게 묘사되는데 영어로는 건조해지는 순간들이 찾아올 것이다. 그 혼란과 곤란을 대신 짊어져 줄 수는 없다. 다만 나는 안다. 언어의 무게는 처음엔 짐이 되지만, 시간이 쌓이면 결국 자기만의 목소리를 만들어주는 힘이 된다는 것을.

언어가 언제나 마음을 온전히 담아내진 못한다. 때로는 어느 쪽에도 없는 단어 앞에서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공백을 견디는 힘이 결국 우리를 더 깊게 만든다. 나는 여전히 두 언어 사이에서 흔들리지만, 그 흔들림 속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를 배웠다. 언젠가 아이들도 자신만의 언어로 세상을 부르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두 언어의 틈새에서, 불편함과 풍요로움 사이를 오가며 살아갈 것이다.

발행인 칼럼완벽한 삶은 없다.“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내 인생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살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한국을 떠나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이민자들에게 이 물음은 더욱 절실하다. ‘한...
09/22/2025

발행인 칼럼
완벽한 삶은 없다.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내 인생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살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한국을 떠나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이민자들에게 이 물음은 더욱 절실하다. ‘한국에 계속 살았다면’, ‘다른 나라를 택했다면’, 혹은 ‘다른 직업을 선택했다면’…. 수많은 가정법들이 머릿속에서 끝없이 맴돈다.

​ 매트 헤이그(Matt Haig)의 소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는 바로 이 지점을 건드린다. 주인공 노라는 삶의 무게에 지쳐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한다. 그리고 현실과 죽음 사이 어딘가에 자리한 도서관에 들어선다. 그곳에는 그녀가 살아보지 못한 모든 삶이 담긴 책들이 꽂혀 있다. 책장을 펼치면 다른 선택을 했을 때 살았을 수도 있는 또 다른 인생이 눈앞에 펼쳐진다. 옛 연인과 결혼해 펍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삶, 록 밴드의 보컬이 된 삶, 올림픽 수영 선수가 된 삶, 빙하 연구가의 삶에 이르기까지 ….

노라는 그 책들을 차례로 넘기며, 자신이 부러워했거나 선택할 수도 있었던 삶 속으로 직접 들어가 살아본다. 그러나 그 안에도 또 다른 결핍과 후회가 기다리고 있었다. 겉으로 완벽해 보이는 인생일지라도 막상 살아보면 부족함과 허전함이 있고, 만족은 오래가지 않았다. 끝없는 가능성 속을 헤매던 노라는 마침내 깨닫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 다르게 사는 것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혹은 내가 선택했던 내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임을.

​이 대목은 우리 이민자들의 삶과 여러 가지로 겹쳐진다. 낯선 언어, 다른 문화 속에서 하루하루 버텨온 세월은 때때로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만약 한국에 남아 교직을 계속했다면 어땠을까? 다른 주, 다른 도시를 택했더라면 더 편했을까? 다른 비즈니스를 시작했다면 지금쯤 어떤 모습일까?” 후회와 아쉬움은 끝없이 이어진다. 이민 초기, 내가 선택한 일들은 하나하나가 운명을 바꾸는 듯했기에 그 갈망은 더 절실했다.

​실제로 이민 생활은 수많은 갈림길로 가득했다. 처음 공항에 내려 낯선 하늘을 올려다보던 순간부터, 생계를 위해 어떤 일을 시작해야 할지 고민하던 밤들까지. 가드닝 비즈니스를 하면서 비디오 스토어를 하고, 학원을 운영하는 등 세 가지 일을 하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던 기억, 학원을 두 도시에 열었다가 둘 다 문을 닫아야 했던 쓰라린 순간들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때마다 마음속에서는 다른 길을 택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질문이 끊임없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현실은 단 한 번뿐이다. 이미 떠나온 고향, 이미 지나온 선택은 되돌릴 수 없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가 전해주는 메시지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른 삶을 끊임없이 상상하는 동안 정작 내 앞에 있는 소중한 삶을 소홀히 하거나 중요한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자녀들의 밝은 웃음, 동포들과 나누는 정(情), 낯선 땅에서 이뤄낸 작은 성취야말로 우리가 붙잡아야 할 보물들이다.

돌이켜보면 이민자의 삶은 불확실성과 고단함으로 가득했지만, 그 안에는 나름의 빛도 있었다. 언어 장벽을 넘어 새로운 세상과 소통하는 기쁨, 다양한 문화 속에서 나를 지키며 스스로를 확장해 나가는 자부심, 그리고 먼 타국 땅에서 뿌리내리는 생명력. 이 모든 것을 견디고 누리는 순간, 이 삶은 단순한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값진 여정으로 바뀐다.

노라가 수많은 평행우주의 삶을 경험한 끝에 깨달은 것처럼, 우리도 결국은 지금의 삶을 사랑할 때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 다른 삶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이 우리를 옥죄지만, 지금 이 순간을 껴안는 용기가 우리를 해방한다. 때로는 “내가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하지만, 하루를 버티며 쌓아온 작은 성취들이 결국은 우리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어쩌면 ‘이민’이라는 거대한 선택 자체가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수많은 책 중 하나를 꺼내든 것이 아닐까. 그 책장을 열고, 힘겹게 읽어나가며, 때로는 밑줄을 긋고 때로는 접어가며 우리는 우리만의 인생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는 말한다. “완벽한 삶은 어디에도 없다. 다만 살아 있는 이 순간이야말로 무한한 가능성의 증거다.” 그렇다면 오늘 하루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이미 지나간 후회의 그림자를 거두고, 아직 오지 않은 불안의 구름을 밀어내며, 지금 내 앞에 주어진 삶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선택이다.

​노라는 죽음 직전에 다시 살아났다. 그리고 비로소 깨달았다. 그는 사르트르의 말을 빌려 이렇게 고백한다. “절망의 반대편에서 인생은 시작된다.” 절망이 끝이라고 믿었던 순간,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오늘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새로운 책의 새 페이지를 써 내려가고 있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속에 나오는 경험하지 않은 무수한 다른 삶이 아니라, 지금 내 앞에 놓인 단 하나뿐인 삶으로. 그리고 그 삶은 후회의 그림자가 아니라, 살아 있음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빛나고 있다.

셀폰으로 본 세상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젊은 날 보이스카우트 지도자로 함께 활동하던 분이 왔다. 서울연맹 하계 야영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지리산 답사를 함께 갔었다. 밤 9시에 뱀사골 계곡을 걸어 오르기 시작해 산장까지...
09/15/2025

셀폰으로 본 세상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

젊은 날 보이스카우트 지도자로 함께 활동하던 분이 왔다. 서울연맹 하계 야영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지리산 답사를 함께 갔었다. 밤 9시에 뱀사골 계곡을 걸어 오르기 시작해 산장까지 못가고, 산 길 옆에 침낭을 펴고 누웠다가 빗방울이 떨어져 우리는 급히 산장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한신 계곡으로 내려왔었다. 나는 무릎 부상으로 다리를 절름거리며. 그리고 호주 세계 잼버리에도 함께 참가했었다. 그 시절을 밤새 얘기하다가 우리는 동시에 말했다. “지금이 더 좋다고”.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찍 공원을 함께 걸었다. 83세 젊은이의 뒷모습이다.

우리 동네 걷기 좋은 곳 - 베니스 비치 - Venice 시베니스 비치(Venice Beach)는 유명하고 독특한 해변 중 하나로 자유분방하고 다채로운 LA 문화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단순히 '바닷가'...
09/15/2025

우리 동네 걷기 좋은 곳 - 베니스 비치 - Venice 시

베니스 비치(Venice Beach)는 유명하고 독특한 해변 중 하나로 자유분방하고 다채로운 LA 문화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단순히 '바닷가'라기보다 해변·예술·거리문화·스케이트·머슬비치가 한데 어우러진 공간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다. 로스앤젤레스 서쪽, 산타모니카와 마리나 델 레이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LA 다운타운에서 차로 약 30~40분 정도 거리에 있다.

해변을 따라 2.5마일(약 4km) 길이로 이어진 산책로, 베니스 보드워크(Venice Boardwalk)에서는 거리 공연자, 화가, 기념품 노점, 음악가, 무술 시범 등 다양한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머슬 비치(Muscle Beach)는 야외 헬스장이 설치된 공간으로, 1930년대부터 보디빌더들의 성지로 알려져 있다. 영화배우 아놀드 슈워제네거 같은 유명 보디빌더가 여기서 운동했다고 알려져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해변 스케이트 파크(Venice Skate Park)는 바닷가 모래사장 바로 옆에 있다. 스케이트 묘기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사진기를 들이밀게 된다. 또 ‘베니스’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탈리아 베니스를 본떠 만든 인공 운하 지구(Venice Canals)가 있다. 지금도 잘 보존돼 있어 산책하기 좋으며, 저녁에는 고즈넉한 주택가 풍경을 볼 수 있다. 서핑, 배구, 자전거, 조깅, 인라인 스케이팅 등 다양한 활동이 가능하며, 자전거를 빌려 보드워크를 따라 산타모니카까지 이동할 수도 있다.

해변을 따라 캐주얼 레스토랑, 카페, 푸드트럭이 즐비하며, 멕시칸 타코, 버거, 핫도그 같은 간단한 길거리 음식부터 아트 감성의 카페까지 다양하다. 자유로운 히피 문화, 스트리트 아트 등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주말과 여름철엔 사람들로 붐비니 이른 시간대 방문이 좋고, 보드워크 주변은 활기차지만, 밤늦게는 다소 어수선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주차는 비치 바로 옆의 유료 공영주차장과 인근 거리를 이용할 수 있다.

Venice Beach Boardwalk 주소: 1800 Ocean Front Walk, Venice, CA 90291

나는야 1.5세 아줌마사연 있는 집“야, 너희 집은 참 걱정이 없겠다. 남편도 가정적이고 아이들도 착하고.”지인이 웃으며 던진 그 말이 잠시 귓가에 맴돈다. 부정할 수 없는 말이다. 남편은 집안일에도 적극적이고 가족...
09/15/2025

나는야 1.5세 아줌마
사연 있는 집

“야, 너희 집은 참 걱정이 없겠다. 남편도 가정적이고 아이들도 착하고.”
지인이 웃으며 던진 그 말이 잠시 귓가에 맴돈다. 부정할 수 없는 말이다. 남편은 집안일에도 적극적이고 가족을 최우선으로 아는 사람이고, 아이들은 대체로 순하고 큰 사고 없이 잘 자라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근심이 없을까. 마치 바람 한 점 없는 잔잔한 바다처럼만 살고 있을까. 아니다. 사연없는 집이 어디 있으랴. 우리 집도 수많은 파도를 거치며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맞추며 살아간다.

사람 사이가 가까워지면 집안 속사정이 비밀처럼 흘러나오기 마련이다. 겉으로는 환하고 평온해 보이던 집에도 늘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있다. 어떤 집은 부모의 지병으로 달력이 병원 예약과 검사 일정으로 가득 차 있고, 어떤 집은 과거의 슬픔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행복을 제한하며 살아가고, 또 다른 집은 아이가 오랜 시간 병원과 학교를 오가며 마음과 몸이 지쳐있다. 겉으로는 웃음이 많은 가족도 알고 보면 사춘기 아이와의 날 선 대화로 밤마다 골머리를 앓기도 한다.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이 조금씩 와닿게 되는 나이가 되었나 보다.

동갑내기인 남편과 나는 큰 싸움은 없는 편이지만 사소한 문제로도 티격태격할 때가 있다. 생활비를 아껴야 한다는 말이 잔소리로 들리기도 하고, 아이 문제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면 고집이 부딪치기도 한다. 그러다 서로 등을 돌리고 침묵으로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결국 얼마 안 가 다시 마주 앉아 밥을 먹으며 화해한다.

아이들도 겉으로는 착하고 성실해 보이지만, 부모 자식 간의 갈등과 사춘기라는 벽은 어느 집이나 다 있다. 문을 세게 닫고 들어가 버리는 순간의 적막, “몰라”라는 짧은 대답 뒤에 숨어 있는 수많은 감정들. 그럴 때마다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다. 내가 잘못 키우고 있는 건 아닐까, 혹시 아이가 나와 멀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또 시간이 지나 아이가 어느새 웃으며 다가와 안기면, 지난 근심과 불안이 잠시 희미해진다.

나의 이웃사촌이자 절친한 벗은 올해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지신 뒤로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 한동안 중환자실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며 기적만을 바라던 시간이 있었다. 다행히 절박한 고비는 넘겼지만 회복은 더디고 지금도 좋은 상황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이제는 안부를 묻는 말조차 쉽게 나오지 않는다. 괜찮냐는 질문 하나에도 담긴 무게가 너무 커서, 건네는 쪽도 받는 쪽도 잠시 침묵하게 된다. 그래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건, 어머니가 여전히 곁에 계시다는 사실과 그 존재 하나만으로 이어지는 희미하지만 단단한 끈 덕분일 것이다.

부부 사이가 멀어져 고민이라는 집도 있다. 남들 앞에서는 아무 문제없는 여느 부부와 다를 게 없지만, 집 안에서는 차갑게 등을 돌린 채 대화가 줄고 있다고 한다. 거기에 경제적인 부담까지 겹치면 표정은 무거워지고 서로에 대한 불만이 싹튼다고. 그러면서도 완전히 끊어내지 않고 함께 사는 건 책임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희미한 애정의 불씨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듣고 있노라면 깨닫게 된다. 우리 집만 불완전한 게 아니구나. 멀리서 볼 땐 반듯하고 단단해 보이는 집도 안으로 들어가면 저마다의 사정과 고민을 안고 있다. 그렇다면 집이란 결국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공간일지 모른다. 사람마다 방식은 다르다. 어떤 집은 문제를 꾹꾹 숨긴다. 웃음으로 덮어두고, 손님이 오면 아무 일 없는 듯 환하게 맞는다. 하지만 속으로는 조용히 삭이며 버틴다. 또 어떤 집은 드러내놓고 산다. 아픈 건 아픈 대로, 힘든 건 힘든 대로 주변과 나누며 풀어낸다. 덕분에 더 많은 위로를 얻지만, 때론 외부의 시선이 상처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집은 서로 붙잡으며 천천히 견뎌간다. 손을 놓지 않으려 애쓰고, 때론 울고, 때론 화내며 버티면서도 끝내는 함께 다시 일어난다. 우리는 불완전함 속에서도 웃고, 근심 속에서도 밥상을 차리고, 갈등 속에서도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산다.

완벽한 집은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를 붙잡아주는 순간들이 있다. 마트 세일 때 어렵게 사온 한우가 입안에서 사르르 녹을 때, 그 짧은 호사에 온 가족의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금요일 저녁, 퇴근한 남편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아이들이 먼저 달려들어 한 주 동안의 피곤을 씻어내고, 잠시 후엔 거실 한가운데 놓인 치킨 상자를 사이에 두고 시끌벅적한 이야기가 오간다. 차가운 맥주잔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그날의 근심도 조금은 녹아내린다. 반려동물이 재롱을 부리며 다가와 소파 위로 폴짝 올라앉을 때, 피곤에 찌든 얼굴에도 빙그레 미소가 번진다. 아무 말 없이 내 옆에 누워 코를 고는 작은 생명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집 안 공기가 한결 따뜻해진다. 아이가 불쑥 내민 그림 한 장이나, 저녁 밥상 앞에서 건네는 “엄마, 오늘 고마워”라는 한마디는 하루의 피로를 단숨에 풀어주는 묘약이 된다. 늦은 밤, 온 가족이 함께 드라마를 보다가 동시에 같은 장면에 웃음을 터뜨릴 때면 이 집만의 호흡이 있다는 걸 새삼 느끼기도 한다.

이렇듯 집은 문제로만 채워지지 않는다. 사연없는 집 없고 갈등과 걱정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를 버티게 하는 순간들이 끊임없이 찾아온다. 불완전함을 덮어주는 건 거창한 기적이 아니라 이런 소소한 기쁨들이다. 결국 집을 지켜주는 힘은 완벽함이 아니라, 틈틈이 찾아와 우리를 붙잡아주는 이 작은 순간들의 축적일 것이다.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견뎌낼 만한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문제없는 집이 아니라, 문제 속에서도 함께 밥을 먹고 웃을 수 있는 집. 그 소소한 순간들이 쌓여 우리가 끝내 지켜내고 싶은 진짜 집의 얼굴이 되는 것이다.

발행인 칼럼 59년의 우정서울 사는 중학교 동창생이 LA에 왔다. 우리는 머리 빡빡 깎고 검은 모자를 쓰고, 까만 교복을 입고 만났다. 벌써 59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긴 세월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걸었지만,...
09/15/2025

발행인 칼럼
59년의 우정

서울 사는 중학교 동창생이 LA에 왔다. 우리는 머리 빡빡 깎고 검은 모자를 쓰고, 까만 교복을 입고 만났다. 벌써 59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긴 세월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걸었지만, 여전히 ‘친구’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었다. 이른 아침, 그의 도착 시간에 맞춰 LA에 사는 또 다른 친구가 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다.

서울에서 떠나기 전, 친구는 말했다. “도착하는 날, 공원에서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저녁까지 같이 보냈으면 좋겠다.” 나는 의아했다. 그냥 식당에서 모이면 더 편할 텐데 굳이 공원이어야 할까. 이유를 묻자, 그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솔직한 속내를 내비쳤다. “조금 다툼이 있었던 친구들이 있는데, 식당보다는 공원이 화해하기에 더 좋을 것 같아.” 속이 참 깊은 친구다.

사실 두 친구는 몇 해 전 사소한 오해로 등을 돌렸다. 한 친구는 아예 단체 대화방에서 나가 버렸고, 이후 모임에도 발길을 끊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서울에서 오는 친구’를 만난다고 하자 마음이 움직였는지, 불참하던 그가 모임에 나오겠다고 한 것이다. 그렇게 친구들의 모임은 묵은 매듭을 풀 기회가 되었다.

나는 이런 상황을 고려해 친구의 숙소를 준비했다. 우리 집과 공원 인근에 묵을 곳을 잡고, 다섯 명이 나눌 음식을 정성껏 챙겼다. 모임 당일, 우리들은 모처럼의 해후를 즐겼다. 불판 위에서 고기가 지글거리며 익어 가는 소리와 함께 지난 세월이 되살아났다. 흘러간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10대 소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오랫동안 서먹했던 두 친구가 마주했다. 조심스러운 눈빛 속에 희미한 그림자가 스쳐갔지만, 그들은 결국 손을 내밀었다. 어색하게 맞잡은 손끝에는 억지로 끌어낸 듯한 미소가 얹혔지만, 그 순간 나는 오랜 세월이 만들어낸 끈질긴 인연을 보았다. 완전한 화해라기보다는 “그래, 이 정도면 됐지 않겠느냐”는 묵계 같은 타협이었지만 그 자체로 소중했다.

한동안 모임에서 얼굴을 볼 수 없었던 친구는 이내 예전 모습으로 돌아왔다. 큰 소리로 웃고, 익살스러운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끌어갔다. 조금 오버스럽기도 했지만, 예전에도 그랬기에 모두가 웃어넘겼다. 오히려 그 익숙한 모습이 반가웠다. 마치 시간이 멈춰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 다시 옛날로 돌아간 듯했다.

뜻밖의 순간도 있었다. 바로 전날이 내 생일이었는데,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친구가 그것을 기억하고 케이크를 준비해 온 것이다. 나이에 맞춰 초까지 꽂아 불을 붙여 주니, 환영회는 순식간에 생일 파티로 바뀌었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내가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가슴이 뭉클했다. 세월은 흘렀어도 우정은 기억의 끈으로 이어져 있었다.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생일 노래를 큰 소리로 불렀다.

저녁이 되어 끓인 라면은 그 어떤 성찬보다 맛있었다. 냄비에서 피어오르는 김 속에 우리의 웃음과 우정이 섞여 들어갔다. 날이 어둑해질 무렵, 우리는 숙소로 자리를 옮겼다. 숙소 안에서도 웃음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소리를 줄여 보려 애썼지만, 아래층에서 천장을 치고 옆방에서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 서울에서 온 친구와 LA 친구를 숙소에 남겨 두고, 나머지 셋은 집으로 향했다. 그날의 긴 하루, 환영과 화해, 그리고 생일 축하가 뒤섞인 잔치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돌이켜보면 이날 모임은 단순한 환영 자리가 아니었다. 다툼으로 갈라졌던 관계가 다시 이어졌고, 잊힌 줄 알았던 생일이 되살아났다. 무엇보다도, 세월의 무게를 견뎌온 우정이 새삼스레 확인된 자리였다. 젊었을 때 우정이란 ‘함께 어울리는 즐거움’이었다면, 이제는 ‘다시 이어지는 마음의 끈’이 되어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는 단순해지는 듯 보이지만, 실은 더 섬세해지고 더 무겁다. 마치 물을 머금은 솜처럼, 사소한 감정조차 쉽게 흘려보내지 않는다. 젊을 때는 그저 웃고 떠들면 좋았지만, 이제는 말 한마디, 악수 한 번, 케이크 하나가 가진 의미가 더욱 크게 다가온다. 오랜 친구란 결국 나 자신을 비추는 또 다른 거울이다. 내가 걸어온 세월이 그 얼굴에 새겨져 있고, 내가 잃어버린 시간의 조각들이 그들의 목소리 속에 담겨 있다.

친구는 어떤 존재일까. 돈이나 지위, 성공 같은 것들이 삶을 치장할 수는 있어도, 세월을 건너온 벗만큼 삶을 지탱해 주는 힘은 되지 못한다. 서먹한 악수도 결국은 다시 잡은 손이고, 하루 늦은 생일 케이크도 오래된 사랑의 표현이다. 삶의 어느 순간에도 그런 작은 장면들이 모여 오늘을 버티게 한다.

한 친구의 방문으로 59년의 우정이 다시 모여 만든 화해의 순간. 그것은 그 어떤 축하연보다 값지고, 그 어떤 성취보다 오래 남는다. 언젠가 우리 모두 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이런 기억 하나쯤 가슴에 품고 간다면, 우리의 인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셀폰으로 본 세상포인세티아(Poinsettia)친구가 막대기를 하나 건네주면서 말했다. 화분에 꽂아주고 물을 가끔 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예쁜 잎이 나올 거라고. 그의 말대로 한 두어 주일 지날까말까 할 때 하나 둘...
09/08/2025

셀폰으로 본 세상
포인세티아(Poinsettia)

친구가 막대기를 하나 건네주면서 말했다. 화분에 꽂아주고 물을 가끔 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예쁜 잎이 나올 거라고. 그의 말대로 한 두어 주일 지날까말까 할 때 하나 둘 잎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막대기가 이젠 제법 나무 같아졌다. 누런 나무 막대기에 불과했던 것이 포인세티아라는 생명체가 된 것이다.

머지않아 빨간 잎과 초록의 잎이 조화를 이루어 성탄절을 예쁘게 장식할 것이다.

우리 동네 걷기 좋은 곳 - 산타모니카 비치(Santa Monica State Beach)산타모니카 비치는 약 3.5마일의 긴 해변으로, 가족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에 좋다. 최근에는 산불로 인한 수질 경고가 해제...
09/08/2025

우리 동네 걷기 좋은 곳 - 산타모니카 비치(Santa Monica State Beach)

산타모니카 비치는 약 3.5마일의 긴 해변으로, 가족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에 좋다. 최근에는 산불로 인한 수질 경고가 해제되어, 해변 활동이 가능하다.

해안을 따라 자전거 도로가 말리부부터 베니스 비치까지 연결되어 있어 자전거 또는 롤러브레이드를 이용한 라이딩이 인기를 끌고 있다. 산타모니카에서는 Perry’s Café & Beach Rentals 같은 대여소에서 자전거, 보드 등을 빌릴 수 있어 장비를 따로 가져올 필요는 없다.

산타모니카 피어(Pier)는 1909년에 처음 지어진 역사적인 장소로,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다. 피어에는 Pacific Park라는 놀이공원이 있으며, 세계 유일의 태양광(Ferris wheel) 회전목마와 다양한 놀이기구, 아케이드, 레스토랑 등이 운영 중이다. 또한 피어 아래에는 Heal the Bay Aquarium이 위치하여 남가주 해양 생물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피어 앞에서는 거리 공연, 기념품 판매, 역사 해설 투어 등 다양한 이벤트도 연중 개최되고 있다.

해변에서 도로를 건너면 나오는 3가 프롬나드는 차량 통제된 보행자 거리로, GAP·Banana Republic·American Eagle·Benetton 같은 브랜드샵과 서점, 레스토랑 등이 즐비하다. 이어지는 산타모니카 플레이스(Santa Monica Place)에서는 1층 인터내셔널 푸드 코트와 명품 및 백화점도 만나볼 수 있어 쇼핑과 식사가 모두 가능한 복합공간이다.

비치 및 피어 인근 Lot 1 North 주차장은 4월–10월 여름 요금으로 주중·주말 모두 약 $15, 11월–3월 겨울 요금 주중 $7, 주말 $10. 장애인 표지 소지자는 무료. 중심가에는 거리 유료 주차가 시간당 약 $1~$2, 주차 구조물은 첫 90분 무료, 이후 시간당 요금이 발생하며 하루 최대치가 설정된 곳도 있다. 해안가에는 Tonga Park, Palisades Park, Tongva Park 등 산책용 공원과 조망 장소가 다양하게 자리한다. 내비게이션을 찍을 때는 Santa Monica Pier를 입력하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다.

피어 주소: 200 Santa Monica Pier, Santa Monica CA 90401

나는야 1.5세 아줌마잠잠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듯 보인다. 낮의 무게를 덜어내고 몸을 눕히면, 눈꺼풀은 자연스럽게 감기고, 의식은 서서히 어둠 속으로 스며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 단순한 과정조차 누군가에게...
09/08/2025

나는야 1.5세 아줌마


잠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듯 보인다. 낮의 무게를 덜어내고 몸을 눕히면, 눈꺼풀은 자연스럽게 감기고, 의식은 서서히 어둠 속으로 스며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 단순한 과정조차 누군가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 된다. 최근 가수 싸이가 오래도록 수면장애로 고통받으며 수면제에 의존해 왔다는 고백은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주었다. 무대를 가득 메우며 환호를 이끌어내는 그 역시 집으로 돌아와서는 깊은 잠 하나 얻지 못했다는 사실. 남들은 다 가진 듯 보이는 삶 속에서도, 오히려 잠이 가장 큰 결핍이 된다는 역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잠은 결코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나 또한 그 불면의 시간을 오래 견뎌야 했다. 다섯 해 전 열세 살 아들을 떠나보낸 이후의 밤들은 잔혹할 만큼 길었다. 눈을 감는 순간 또렷해지는 기억과 목 놓아 울고 싶은 고통이 내 안을 휘저었다. 온몸이 천근만근 무거운데 정신만은 번뜩이며 나를 괴롭혔다. 불면은 단순히 잠을 못 자는 상태가 아니었다. 삶 전체를 허물어뜨리는 거대한 균열이었다. 집안일 하나에도 기운이 빠지고, 일상적인 생활조차 버거워졌다. 그때 비로소 알았다. 잠이란 단순한 쉼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기반임을.

시간이 흘러 나는 조금씩 회복했고, 마치 신생아처럼 다시 잠을 배우는 과정을 거쳤다. 처음에는 억지로 눈을 감고 억눌린 호흡으로 버텨내며 밤을 보냈지만 상담사의 조언대로 햇빛을 보며 걷고, 바람을 맞으며 달리고, 나무가 우거진 산길을 오르며 땀을 흘리다 보면 신기하게도 잠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몸이 지쳐야 비로소 마음도 함께 눕는다는 걸. 억지로 마음만 다독여 잠을 청하는 건 소용이 없었다. 결국 내게는 두 발로 땅을 딛고 걸으며 햇살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바람과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잠은 삶의 리듬이 자연의 리듬과 맞닿아 조화를 이룰 때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선물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온몸으로 배워나갔다.

하지만 요즘 들어 또다시 불면의 그림자가 찾아온다. 깊이 잠들지 못하고 자주 깨며 깨고 나면 다시 잠들지 못하는 날이 이어진다. 원인은 분명하다. 고민이 많아서다. 나이가 들수록 마음의 근심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무겁게 다가오는 것 같다. 침대에 누우면 눈은 이미 지쳐 감기려 하지만 정신만은 번쩍 또렷해진다. 하루 종일 바쁜 일상에 밀어두었던 고민과 불안이 어둠 속에서 고개를 든다. 오늘 있었던 사소한 대화, 내일 다가올 일정, 몇 달 뒤에 닥칠 선택들까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끊어내려 해도 생각은 자꾸만 새로운 꼬리를 만들어낸다. 밤새 곱씹어도 달라질 수 없는 고민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사람은 쉽게 놓지 못한다. 생각은 더 많은 생각을 불러오고, 새벽은 끝나지 않을 듯 길어진다.

그때마다 나는 속으로 주문처럼 말한다. “어제는 이미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니 오늘에 집중하라.” 어디선가 들은 말이지만, 불면의 밤마다 내 귀에 가장 또렷하게 맴도는 문장이다. 하지만 그 단순한 진리를 실천하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라면서도, 마음은 늘 어제의 후회와 미련, 내일의 불안과 두려움 사이를 기웃거린다. 결국 잠은 멀어지고, 나는 또다시 시계를 바라보며 새벽이 오는 소리를 듣는다.

2025년 Sleep Medicine Reviews에 발표된 대규모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성인의 약 16%가 불면증을 겪고 있다고 한다. 단순히 한두 번 잠을 설치는 정도가 아니라, 장기간 수면의 질이 떨어져 삶에 지장을 받는 사람들이 8억 명이 넘는다는 이야기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조사에서는 성인의 14%가 최근 한 달간 거의 매일 잠들기 어렵거나 다시 잠들지 못했다고 답했다. 불면은 이렇게 통계로도 드러나듯 누구나 한 번쯤은 맞닥뜨릴 수 있는 보편적인 그림자다. 원인을 쫓아가 보면 업무와 가정 문제 같은 현실적 고민부터,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스마트폰 사용, 카페인과 알코올, 호르몬 변화와 노화, 그리고 불안과 우울 같은 마음의 병까지 얽혀 있다. 여기에 나이나 성별, 유전적 요인까지 겹치면 불면은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삶이 드러내는 가장 은밀한 징후이자 사회적 구조 속에서 비롯된 증상임을 알게 된다.

세상은 유명인의 불면을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그 안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인간적인 고통이 숨어 있다. 그것은 사치도, 나약함도 아니다. 불면은 단지 유명인이나 극단적인 상실이나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삶의 한 부분이다. 잠을 편히 이루지 못하는 사정을 이해할 때, 우리는 결국 같은 인간임을, 서로의 고통을 나눌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누군가는 불면의 밤을 견디고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서로의 어둠 속에 작은 등불이 될 수 있다.

어쩌면 앞으로 완벽하게 숙면하는 날은 점점 줄어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의 삶을 버티고, 때로는 뜻밖의 순간에 빛을 마주하며 살아갈 것이다. 끝나지 않을 듯하던 여름의 열기가 잦아들었으니 이제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야겠다. 오늘의 걸음이 오늘 밤의 잠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며.

발행인 칼럼장관의 자격 - 청문회에 선 동창생연륜이 깊어질수록 이름 하나에도 오래된 추억이 묻어난다. 세월이란 강을 건너오며 수많은 얼굴과 인연들이 스쳐 갔지만, 불현듯 떠오르는 이름에 유난히 빛이 배어 있다. 그것...
09/08/2025

발행인 칼럼
장관의 자격 - 청문회에 선 동창생

연륜이 깊어질수록 이름 하나에도 오래된 추억이 묻어난다. 세월이란 강을 건너오며 수많은 얼굴과 인연들이 스쳐 갔지만, 불현듯 떠오르는 이름에 유난히 빛이 배어 있다. 그것은 단순히 한 개인의 호명(呼名)이 아니라, 그 시절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시간과 웃음, 그리고 그 시대가 지닌 모든 것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 매일 교정을 밟으며 함께 웃고 떠들던 친구들, 모두 가깝게 지낸 것은 아니었지만 가끔 언론을 통해 동창의 이름이 오르내릴 때마다 무언지 모를 감정이 밀려온다. 이름 하나가 건네는 울림은 때때로 기억보다 더 강렬하다.

얼마 전, 내게는 잊힌 듯했던 한 동창생의 이름이 다시 세상에 크게 울려 퍼졌다. 장관 지명을 받고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는 모습이었다. 세상의 시선은 가혹했다.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쏟아지는 비판과 논란은 그가 걸어온 길의 한 단면이기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학창시절을 함께 했던 동창생으로 측은함이 앞섰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우리 모두 각자의 길을 걸어오지 않았던가. 누군가는 학자가 되었고, 누군가는 기업가. 또 다른 이는 교단에서, 혹은 사회 운동의 한복판에서 삶을 이어왔다. 나 역시 이국땅에서 또 다른 여정을 살았다. 그렇게 서로 다른 시간표를 살다가 불현듯 이름 하나로 다시 마중한 것이다.

세상은 장관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그것은 당연하다. 공직자는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서야 하기 때문이다. 청문회는 자질을 검증하는 자리이다. 단순한 형식적 절차가 아니다. 그러나 나는 한편으로 묻는다. 장관의 자격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학벌과 경력의 화려함만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그 사람이 삶 속에서 보여준 철학과 실천이 더 중요한가?

내가 기억하는 그 친구는 교육 현장에서 ‘정의’와 ‘양심’을 고민하던 사람이었다. 체제와 충돌하며 감옥을 드나들었고, 교사라는 명확한 직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교단을 떠나지 않았다. ‘교육은 사회를 바꾸는 가장 근본적인 힘’이라는 신념 때문이었다. 때로는 투박하고 고집스러워 보였을지 몰라도, 그는 적어도 교육을 권력의 도구가 아니라 인간 해방의 길로 보았다. 이것이야말로 한 사람을 장관으로 세울 만한 철학이 아니겠는가.

물론 세월은 많은 것을 변하게 한다. 청문회 자리에서 드러난 여러 의혹과 논란이 사실이라면 그 역시 국민 앞에 책임져야 한다. 동창이라 하여 감싸고도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 그러나 나는 그를 향한 무차별적으로 비난을 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장관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깨끗한 이력만을 요구하는가, 아니면 흔들림 없는 가치와 철학을 요구하는가.

동창회 단톡방도 그의 지명을 두고 요란했다. 어떤 이는 부끄럽다고 했고, 또 어떤 이는 자랑이라고 했다. 심지어 동창생인 그가 장관 후보가 된 것 자체가 ‘치욕’이라는 극단적 표현까지 나왔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한 사람의 인생을 단편적 사건이나 편견으로 재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인생의 궤적은 늘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고, 빛과 그림자가 교차한다. 진정한 검증은 그가 어떤 철학을 지니고 있는지, 그 철학이 교육이라는 공적 영역에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지를 따져 묻는 일이어야 한다.

교육은 사회의 거울이다. 한 사회가 어떤 교육자를 장관으로 세우느냐에 따라 미래 세대의 가치가 달라진다. 시험 성적만 중시하는 관료형 장관을 원하는가, 아니면 인간다운 삶을 가르치려는 교육 철학자를 필요로 하는가. 그 선택은 결국 우리 모두의 몫이다.

돌아보면 청춘의 시간은 짧고 눈부셨다. 교실 창가에 스며들던 햇살, 난로 위에서 데워지던 도시락, 운동장에서 함께 뛰던 모습. 세월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그 순간들이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오늘, 친구의 이름을 통해 나는 또 다른 질문 앞에 섰다. 청춘의 뜨거움으로 외쳤던 교육 철학이 세월을 지나 지금도 살아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것이야말로 장관의 자격이 아닐까.

청문회를 마치고 나오는 그의 뒷모습을 화면으로 보았다. 작은 가방 하나가 그의 어깨에 걸려 있었다. 내 눈에는 그 가방이 유난히 무거워 보였다. 그것은 단순한 짐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과 철학, 그리고 교육자에게 주어진 사회적 책임의 무게였다. 국민은 그 무게를 외면하지 않는다. 동시에 그 무게를 짊어진 자의 진정성을 외면하지도 않는다.

나는 오래된 이름 하나를 다시 불러보며, 삶과 사회, 그리고 교육의 의미를 되새긴다. 인연은 우리를 다시 불러내고, 이름은 세월을 관통해 우리를 이어준다. 산다는 것은 어쩌면 이렇게 하나씩 이름을 되찾아가며, 그 속에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성찰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오늘 친구의 이름 앞에서 묻는다. 장관의 자격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권력의 힘이 아니라, 교육의 철학과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그 속에 우리의 청춘이 있고, 시대가 있고, 미래 세대가 담겨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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