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2025
발행인 칼럼
“훈식이 형이랑 현지 누나"
한국에서 최근 공개된 텔레그램 메시지 사건은 우리 사회가 다시 한 번 공직 인사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돌아보게 만든다. 어떤 국회의원이 특정 인사를 산업 관련 협회 회장으로 추천해 달라고 대통령실 비서관에게 요청했다. 해당 비서관은 “훈식이 형이랑 현지 누나에게 추천하겠다”고 답한 내용이 언론 보도로 알려졌다. 훈식이 형은 비서실장, 현지 누나는 부속실장의 실명이다. 공직에 있는 사람들이 호칭을 형, 누나로 한다는 점도 불편하게 느껴진다, 이후 논란이 확산되자 비서관은 사직서를 제출했고 대통령실은 즉각 수리했다. 이 일련의 과정은 사실로 확인된 정보이며, 그 자체만으로 공직 인사 과정에서 비공식적 영향력이 작동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메시지에 등장한 인물들이 대통령과 같은 대학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학연에 기반을 둔 인사 개입’이라는 의심이 커졌다. 한국 사회에서 학연과 지연은 꽤 오래된 문제이다. 공직 인사 영역에서는 더욱 엄격한 기준 적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공직 인사 과정은 단순한 인물 배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책 방향, 기관 운영, 국민 신뢰로 이어지는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진보정권, 보수정권 할 것 없이 그동안 반복되어 왔던 ‘비공식 라인에 의한 인사 개입 논란’을 떠올리게 한다. 예컨대 과거 여러 정부에서 청와대나 행정부 주변 인물이 특정 인사를 추천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고, 그때마다 투명성 부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는 특정 정권이나 특정 인물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정치, 행정문화 전반에 남아 있는 구조적 문제임을 시사한다. 인사는 국가 운영의 핵심이며 그 과정에서 작은 의혹이라도 발생하면 국민의 분노와 불신을 자극하기 쉽다.
이번 사건이 던진 중요한 메시지는 ‘사실과 해석을 분리하라’는 것이다. 언론이 공개한 메시지, 사표 제출, 인사 추천 요청은 실제 있었던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바로 “정권 전체가 카르텔화되어 있다”거나 “특정 인물이 모든 인사를 좌지우지한다”는 식으로 확대하는 것은 섣부른 일반화이다. 확인된 사실에 기초해 분석하되, 증거가 불충분한 영역은 추정이나 의혹으로 분리해 판단하는 것이 성숙한 공적 논의의 기본 태도다.
공공기관 인사에서 투명성은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공직 인사 과정의 불투명성은 기관 신뢰도뿐 아니라 정책 성과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는 우리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인사 청탁 의혹이 반복될 때마다 “왜 절차가 보이지 않는가?”, “누가 어떤 권한을 가지고 있는가?”, “검증 과정은 적절했는가?”와 같은 근본적 질문이 제기된다.
이런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선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첫째, 대통령실과 관련 인사들은 사건과 관련된 문서, 통화, 추천 경위 등을 공개 가능한 범위에서 투명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는 것만으로도 상당 부분 불신을 해소할 수 있다. 둘째, 공공기관장 선임 절차를 법적, 제도적으로 더 정교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추천권 행사자 명단 공개, 비공식 채널 보고 금지, 이해상충 심사 강화 등 구체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셋째, 의혹이 제기된 경우 내부가 아닌 독립적 감찰 기구의 조사를 받도록 하는 절차도 고려될 수 있다. 이는 당사자에게는 억울한 누명을 막고 국민에게는 공정성을 보장한다.
이번 사건은 ‘군주민수(君舟民水)’, '임금은 배, 백성은 물'이라는 고사성어를 떠올리게 한다. 배를 띄우는 것은 물이며, 물은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 즉, 국민의 신뢰가 사라지면 국정 동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인사는 정책 구상의 출발점인 만큼 그 과정이 투명해야 국정 전반에 대한 신뢰도 확보된다.
또한 대의명분을 바로 잡아 그 어떤 잣대를 들이대도 공명정대해야 한다는 ‘정명(正名)’의 관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공직자의 이름과 역할이 제대로 설정되지 않으면, 권한이 뒤얽히고 책임 소재가 흐려져 결국 혼란을 초래하게 된다. 이번 사건에서 국민이 묻는 핵심은 “누가 실제로 인사 권한을 행사했는가?”, “그 절차는 공식적이었는가?”,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정명(正名)의 문제이다.
정치의 기본은 신뢰다. 냉정한 사실 확인을 바탕으로 제도적 개선을 추구할 때, 사회는 더 단단해지고 공직 인사의 수준도 높아질 것이다. 감정적 비난이나 확인되지 않은 의혹의 남발은 오히려 본질을 흐릴 뿐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인사 절차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하는 논의가 지속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