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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폰으로 본 세상눈 덮인 Mt. Baldy도시에 비가 오고 사나흘이 지났다. 신호등에 걸려 무심코 정면을 바라다보았다. 저 멀리 마운틴 발디가 우뚝 서있었다. 눈에 덮여 있었다.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적어도 일주일에 ...
11/05/2025

셀폰으로 본 세상
눈 덮인 Mt. Baldy

도시에 비가 오고 사나흘이 지났다. 신호등에 걸려 무심코 정면을 바라다보았다. 저 멀리 마운틴 발디가 우뚝 서있었다. 눈에 덮여 있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올랐었다. 무릎까지 빠지면서 눈 덮인 산길을 오르내렸다. 이제는 그 산을 멀리서 바라다보기만 한다. 그래도 좋다. 생생하게 기억한다. 눈 덮인 산길, 함께 오르던 친구들, 콩나물 넣고 끓인 라면!

2025년 10월 18일 오전 10시 45분, Hawks Point Dr와 Beach Blvd 신호등 앞에서 아이폰 13X, 줌렌즈를 사용.

우리 동네 걷기 좋은 곳 - Deep Creek Hot Springs - Apple Valley오늘 소개하는 디프 크리크 노천온천은 누드가 허용된다. 주차장에서부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걷는 남녀를 만날 수 있...
11/05/2025

우리 동네 걷기 좋은 곳 - Deep Creek Hot Springs - Apple Valley

오늘 소개하는 디프 크리크 노천온천은 누드가 허용된다. 주차장에서부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걷는 남녀를 만날 수 있다. 남들 시선에 개의치 않고 걷는다. 이러한 분위기가 싫은 사람은 아예 가지 말아야 한다. 등산로가 끝나면서 시냇물과 닿는 곳에 천연 온천수가 흘러나온다.

LA에서 210번이나 10번 혹은 60번 프리웨이를 타고 동쪽으로 가다가 15번으로 갈아탄 후 북상한다. Bear Valley Road에서 내려 우회전한다. 10마일 가면 Central Rd.를 만나 우회전 한 후 3마일 가면 Ocotillo Way를 만난다. 좌회전해서 2-3마일을 가서 Bowen Ranch Rd.가 나오면 우회전한다. 6마일을 가면 길이 끝나는 지점에 Bowen Ranch가 있다. 온천은 국유림으로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으나 보웬 랜치는 사유지이다. 랜치 입구에서 주차료를 지불한다. 이 랜치는 1920년부터 있었고 30여 년 전부터 마이클 카스트로가 운영하고 있다. 마이클을 만나면 온천까지 가는 지도를 한 장 얻을 수 있다. 마일클이 없을 경우에는 주차료를 봉투에 넣고 비치되어 있는 지도를 한 장 갖고 가면 된다.

지도의 표시대로 내려가서 왼쪽으로 한 10여 미터 가면 모터사이클이나 자동차는 출입을 금지한다는 표시판이 있다. 통나무로 막아 놓았다. 마이클은 그 통나무를 넘어 가라고 했다. 좋은 길이 계속된다. 땅의 감촉이 좋다. 모래다. 일부러 모래를 파다가 뿌려 놓은 것처럼 고운 흙이다. 계속 내리막이다. 왼쪽에 계곡이 보인다.

계곡에는 물이 흐른다. 굽이굽이 돌아 오른쪽으로도 흐른다. 거의 다 왔음을 느낀다. 오른쪽은 강변으로 직접 닿는다. 하지만 강폭이 넓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왼쪽은 벼랑이다. 경사가 심하기는 하지만 내러갈 만하다. 급경사를 조심해서 내려간다. 물살이 세다. 보기에는 돌을 밟고 건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돌을 밟아서는 건널 수도 없고 폭이 넓어서 만일에 돌을 밟는다면 그냥 미끄러져 물에 빠진다. 겨울철에는 밤 기온이 낮아 돌이 모두 얼음에 쌓여 있다.

어느 쪽으로 건너는 편이 쉬울까 각자 가름해 보고 결정하기 바란다. 마이클은 오른쪽을 택해 헤엄쳐서 건너라고 했지만 나는 왼쪽의 벼랑길을 택했다. 옷을 벗고 준비해 간 수영복으로 갈아입는다. 배낭에 옷을 다 넣고 등산화는 묶어서 배낭에 건다. 물이 차다. 발이 얼얼하다. 돌을 밟아서는 안 된다. 얼음이 얼어 있어서 미끄러진다. 발이 시리다. 떨어져 나갈 것 같다.

화강암에서 흘러나오는 온천수는 100도에서 115도로 온천욕에 적당하다. 세 구덩이가 있다. 맨 아래 것이 가장 뜨겁다.

주의사항: 계절에 따라 강물의 깊이가 달라진다. 겨울철 우기에는 홍수가 나기도 하므로 조심해야 한다. 캠핑 및 취사, 야간 온천은 금지되어 있다. 여름철에는 기온이 100도 이상 올라간다. 선블럭이나 선글라스를 필히 준비한다. 누드로 다닐 생각이 없다면 수영복을 반드시 지참하기 바란다. 절대 온천수를 마시지 않는다. 인체에 해로운 병균이나 유해물질이 녹아 있을 수 있다.

나는야 1.5세 아줌마몸의 신호얼마 전부터 가끔씩 가슴이 욱신거렸다. 운동 후에 오는 근육통과 비슷했지만, 하필 위치가 심장 근처라 신경이 쓰였다. 비슷한 통증이 주기적으로 반복되자 마음 한켠이 불편해졌다. 가족력에...
11/05/2025

나는야 1.5세 아줌마
몸의 신호

얼마 전부터 가끔씩 가슴이 욱신거렸다. 운동 후에 오는 근육통과 비슷했지만, 하필 위치가 심장 근처라 신경이 쓰였다. 비슷한 통증이 주기적으로 반복되자 마음 한켠이 불편해졌다. 가족력에 심장질환도 있는 터라 점점 불안해지기도 했다. 그래도 하루 자고 나면 증상이 잦아들었기에 ‘별일 아니겠지’ 하며 몇 달을 미루었다.

그러다가 며칠 전 고양이 화장실을 치우다가 다시 그 통증이 찾아왔다. 냄새를 피해 코로 숨을 참은 채 입으로만 숨을 쉬었는데 허리를 펴는 순간 가슴 한가운데가 찌릿하게 아팠다. 순간 몸이 얼어붙었다. 숨을 깊이 들이쉬면 통증이 번졌고 가슴을 펴기도 어려웠다. 손으로 가슴을 눌러보니 근육이 뻣뻣하게 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심장이 문제인가, 근육인가, 그 사이 어디쯤인가.

다음날 아침에도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심지어 잠에서 깰 때 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는 꿈을 꾸고 있었으니 나름 스트레스를 단단히 받은 모양이었다. 결국 오전 시간을 내 병원으로 향했다. ‘심장내과’라는 글자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접수대 앞엔 혼자 온 어르신들이 서 있었고, 대기실 의자엔 주로 남성들이 하나둘 앉아 있었다. 조금 지나니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온 듯한 여성 환자들이 들어왔다. 그들 중엔 나보다 젊은 사람도, 나보다 더 지쳐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다들 각자의 통증을 품은 채 순서를 기다리는 얼굴이었다.

엑스레이를 찍고 진료실에 들어가자 의사가 말했다. “심장 크기도 정상이고 폐도 깨끗합니다.” 그 말에 안도감이 밀려왔다. “통증이 심하면 소염제를 드릴게요.” 담담한 말투였지만, 그 말이 내겐 처방전보다 큰 약이 되었다. 의사는 덧붙였다. “상체 운동을 좀 많이 하셨나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필라테스를 주 2~3회 하긴 하지만 그마저도 ‘운동했다’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가볍다. 무리한 적도 땀을 쏟을 만큼 격하게 한 적도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일까.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도무지 떠오르는 게 없었다.

하지만 병원을 나서며 마음이 이상하게 편안해졌다. 아마도 의사의 “별일 아닙니다”라는 한마디가 마음의 단단한 매듭을 풀어준 것 같다. 몸의 통증보다 ‘혹시 심장이 문제면 어쩌지’라는 불안이 더 아팠던 걸지도 모른다. 집에 돌아오자 신기하게도 통증이 더 줄어들었다. 마치 가슴 한가운데 숨겨둔 걱정이 빠져나가듯 가벼워졌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통증은 거의 사라졌다. 약 때문인지, 안도감 때문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괜찮아졌다.

사실 그보다 얼마 전에는 허리 때문에 고생한 적도 있었다. 평소에도 허리가 약한 편이라 조금만 무리해도 바로 신호가 온다. 그런데 그날따라 유난히 강하게 아팠다. 앉았다 일어날 때마다 찌릿했고, 침대에 누워 뒤척이는 것도 힘들었다. 남편이 자기 전 파스를 붙여주고 소염제도 챙겨주었다. 나는 늘 하던 대로 “괜찮아, 하루 자면 나아질 거야” 하며 버텼지만 이틀째 되는 날엔 일상생활이 어려울 만큼 악화되었다. 설거지를 하다 허리를 펼 수가 없어서 한참을 싱크대에 매달려 있었다. 결국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 한의원으로 갔다.

침을 맞고, 부황을 뜨고, 찜질을 하며 이틀을 꼬박 다녔다. 의사는 “요추 주변 근육이 꽉 뭉쳤네요”라며 웃었다. 치료를 받자 조금씩 나아졌고, 사흘째 되는 날엔 간신히 허리를 펴고 걸을 수 있었다. 그제야 일상으로 복귀했지만, 몸이 회복된 후에도 마음은 한동안 가라앉은 채였다. 허리가 아팠던 며칠 동안은 마치 세상이 전부 무겁게 내려앉은 듯했다. 움직임이 줄어들면 생각이 많아지고, 생각이 많아지면 또 몸이 무거워진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따라 눌린다.

어쩌면 몸을 챙기는 일은 단순히 건강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마음을 돌보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스스로를 무시하고 버티면 몸이 대신 말을 건다. “이제 좀 쉬자” “조금만 덜 애써도 돼” 하고. 가슴 통증도, 허리 통증도 어쩌면 다 그런 신호였던 것 같다.

병원에서 돌아오던 날의 따뜻한 햇살이 기억난다. 가을 공기가 차가웠지만 햇살만큼은 마음속 응어리가 녹듯 따스하고 부드러웠다. 그때 나는 조용히 결심했다. 아프기 전에 멈출 줄 아는 사람이 되자고. 마음이 조급해질 때, 몸이 피곤할 때, 그저 괜찮다고 넘기지 말고 조금만 나를 아껴주자고.

몸은 마음보다 훨씬 솔직하다. 마음은 얼마든지 숨길 수 있지만, 몸은 언제나 그 거짓말을 알아챈다. 괜찮은 척해도,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결국엔 가장 약한 곳부터 신호를 보낸다. 그게 가슴이든 허리든, 어쩌면 마음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몸을 통해 터져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픔은 여전히 불편하지만, 동시에 나를 잠시 멈추게 하는 표식이기도 하다. 너무 오래 참고 있지 않은지, 내 마음을 또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만드는 작은 멈춤 사인이랄까. 언젠가 또 다른 통증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는 두려워하기보다 내 몸과 마음에게 조금 더 다정하게 반응하고 싶다. 그렇게 내 안의 신호와 대화하며 사는 것, 그것이 나이가 들수록 배워야 할 새로운 방식의 자기 돌봄이자 가장 단순한 건강의 비결이 아닐까 싶다.

발행인 칼럼관세 협상 타결,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간 한미 무역·관세 협상이 10월 29일 최종 타결됐다. 대통령실은 “관세 인하와 대규모 투자, 산업 협력의 세부 내용이 합의됐다...
11/05/2025

발행인 칼럼
관세 협상 타결,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간 한미 무역·관세 협상이 10월 29일 최종 타결됐다. 대통령실은 “관세 인하와 대규모 투자, 산업 협력의 세부 내용이 합의됐다”고 밝히며 성과를 강조했다. 이번 협상은 단순한 외교적 성과를 넘어, 향후 한국 경제에 깊은 영향을 미칠 중대한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경주 국제미디어센터 브리핑에서 “자동차 및 부품 관세를 15%로 인하하고, 상호관세는 같은 수준으로 유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반도체 관세는 대만보다 불리하지 않은 수준으로 조정하고, 일부 의약품·목재에는 최혜국 대우를 적용한다”고 설명했다. 항공기 부품과 일부 의약품은 무관세로 전환된다.

가장 큰 쟁점은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였다. 김 실장은 “투자액은 유지하되 연간 상한선을 설정해 외환시장의 충격을 방어하기로 했다”며 “현금 투자 2,000억 달러, 조선업 협력 1,500억 달러로 구성된다”고 밝혔다. 연간 투자 한도는 200억 달러로 제한되며, 외환시장 불안 시 납입 시기나 금액을 조정할 수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마스가(MASGA) 조선·에너지 협력펀드’다. 한미 양국이 공동으로 조성하되 한국 기업이 주도권을 갖는 형태로, 관련 자금 1,500억 달러는 협력 프로젝트에 투입될 예정이다. 이를 총괄할 ‘조선협력 협의체’가 국가안보회의(NSC) 산하에 신설된다.

관세 인하와 투자유치 틀은 한국 경제에 긍정적 요소다. 자동차·부품 관세 인하는 수출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지고, 반도체 관세 조정은 대만과의 경쟁 격차를 줄일 수 있다. 또 ‘상업적 합리성’ 원칙을 명시한 점은 무리한 투자를 피하고 수익성을 고려한 현실적 접근으로 평가된다.
연간 투자 상한 200억 달러 설정도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방파제 역할을 할 전망이다. 무제한 투자로 인한 자본 유출 위험을 완화하며, 한국은행과 금융당국의 우려를 일정 부분 해소했다.

그러나 문제점도 적지 않다. 우선 3,500억 달러라는 거대한 투자 약속은 민간 주도라 해도 기업 자금 흐름과 외화 수급에 상당한 부담이 된다. 투자에 비해 관세 인하 폭이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미 FTA 이후 다수 품목이 무관세인 만큼 실질적 혜택은 크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이번 합의가 미국 의회의 공식 비준을 거치지 않은 만큼 법적 구속력에 의문이 제기된다. 일부 외신은 “양해각서 수준의 합의에 그칠 가능성”을 지적했다. 협상 내용이 향후 정치 상황에 따라 수정되거나 이행이 지연될 위험도 존재한다. 대미 의존도 심화 역시 우려 요인이다. 조선·에너지·반도체 등 핵심 산업이 미국 중심 공급망에 편입될 경우, 한국 산업정책의 자율성이 제약받을 수 있다. 미국의 정책 변화가 곧 한국 산업 구조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가 될 수 있다.

외환시장 안정 장치 역시 한계가 있다. 연간 200억 달러의 상한이 실제 충격을 완화하기에 충분할지 불확실하다. 대규모 해외 투자로 외화 유출이 가속화되면, 원화 약세와 금리 불안이 동시에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투자 집행 속도와 외환시장 동향을 면밀히 관리해야 한다.

또한 해외투자가 확대되면 국내 투자와 고용이 줄어드는 ‘산업 공동화’ 우려가 있다. 정부는 미국 투자에 상응하는 국내 산업 지원책을 병행해야 한다. 조선업 협력펀드가 미국 내 프로젝트에 집중된다면 국내 조선산업의 회복세가 둔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협상이 산업 협력과 함께 안보 협력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위성락 안보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추진 필요성에 공감했다”고 밝혔다. 이는 향후 원자력 및 전략산업 협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시사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을 백악관에 초청하며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한 발언도 양국 정상 간 신뢰 구축의 신호로 해석된다. 결국 이번 한미 협상 타결은 그 자체로는 의미 있는 진전이다. 그러나 실질적 성과는 실행과 관리에 달려 있다. 외환시장 안정과 산업 균형, 법적 이행력 확보라는 세 가지 과제를 동시에 충족시켜야 한다.

이번 합의는 단순한 경제협의가 아니라, 한국이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보여주는 시험대다. 거대한 기회이자, 동시에 거대한 도전이다. ‘타결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말이 지금 대한민국 경제 현실에 대한 가장 적절한 표현이다.

셀폰으로 본 세상고레파니(Ghore Pani) 가는 길히말라야에서의 하루 일과는 매일 똑 같이 반복되었다. 이른 아침, 포터들이 밀크티를 들고 방문을 두드린다. 따뜻한 티를 마시며 아침을 열고, 아침식사 후에 산행을...
10/27/2025

셀폰으로 본 세상
고레파니(Ghore Pani) 가는 길

히말라야에서의 하루 일과는 매일 똑 같이 반복되었다. 이른 아침, 포터들이 밀크티를 들고 방문을 두드린다. 따뜻한 티를 마시며 아침을 열고, 아침식사 후에 산행을 시작한다. 중간에 한 번 쉬면서 차를 마시고, 다음 롯지에 도착하면 점심을 먹는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걷는다. 중간에 차 마시며 한 번 쉬고, 또 걷는다. 저녁 먹고 롯지에서 잔다.

계단, 계단, 끊임없이 계단이 나왔다. 오르막의 계단, 내리막의 계단, 오르내리며 걷고 또 걷고, 또 걸어야 했다. 해발 2,874미터의 고레파니 가는 중에 이런 계단을 여러 번 만났다.

2017년 1월 15일 히말라야에서 아이폰

우리 동네 걷기 좋은 곳 - Panorama Nature Preserve - Fullerton시파노라마 자연 보호구역은 매혹적인 트레일을 제공하고 있으며, 풀러턴뿐만 아니라 다른 자연보호구역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다양...
10/27/2025

우리 동네 걷기 좋은 곳 - Panorama Nature Preserve - Fullerton시

파노라마 자연 보호구역은 매혹적인 트레일을 제공하고 있으며, 풀러턴뿐만 아니라 다른 자연보호구역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다양한 편의시설과 액티비티를 제공한다. 해질 무렵이나 아침 안개가 낄 때 특히 분위기가 있다. 걸으며 석양을 즐길 수 있으며 자전거 타기에도 좋은 편이다.

파노라마 자연 보호구역의 가장 매력적인 특징 중 하나는 전 구간 도시를 내려다보며 걸을 수 있으며, 특히 수평선 아래로 떨어지는 태양의 매혹적인 광경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산책객과 등산객 모두에게 즐거운 경험을 제공한다.

보호구역은 다양한 꽃과 무성한 녹지로 꾸며져 있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걷다 보면 활기찬 식물들의 생태를 관찰할 수 있으며, 고요한 분위기를 즐길 수도 있다. 운이 좋다면 토끼, 코요테를 비롯해 다양한 조류와 야생동물들과 만날 수도 있다. 일부 방문자들이 숨은 보석(hidden gem)이라는 표현을 할 정도로 전망이 좋고, 아름다운 트레일이다. 방문자가 많지 않은 편이며 난이도는 중하 정도이다.

언덕에 자리 잡은 멋진 레스토랑, Summit House에서 경치를 즐기며 식사할 수도 있다. 훌륭한 음식과 멋진 풍경의 조화로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한다. 보호구역 옆에는 코요테 힐스 골프장이 있다.

코요테 힐스 골프코스에서 진입할 수도 있지만 주차 등이 다소 애매할 수 있으므로 도로변 공용 주차 가능 구역을 사전에 확인하기 바란다.

트레일 헤드 1903 St Simons Pl, Fullerton, CA 92831

나는야 1.5세 아줌마 2025년 가을며칠 전까지만 해도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운동을 나갔다. 아침 공기가 살짝 서늘하긴 했지만, 아직은 괜찮았다. 움직이다 보면 금세 땀이 나고, 그 땀 위로 바람이 지나가면 오히려...
10/27/2025

나는야 1.5세 아줌마 2025년 가을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운동을 나갔다. 아침 공기가 살짝 서늘하긴 했지만, 아직은 괜찮았다. 움직이다 보면 금세 땀이 나고, 그 땀 위로 바람이 지나가면 오히려 시원했다. 그런데 이번 주 들어서 공기의 결이 달라졌다. 문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차가운 냄새, 잠시 서 있으면 어깨가 움츠러드는 온도. 숫자로는 최저 5도, 최고 19도로 예전 같으면 운동하기 좋은 날씨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게 느껴진다. 공기가 너무 싸늘하고, 그 공기가 살갗에 닿는 순간 몸이 먼저 수축한다. 어디선가 나뭇잎 마찰음이 바람을 따라 흘러왔고 그 소리마저 차갑게 들렸다. 계절은 확실히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 있었고 나는 어리둥절했다.

매일 밤 내일의 운동을 결심하지만 아침이 되면 그 결심이 무너진다. 눈을 뜨면 먼저 느껴지는 건 이불 밖의 냉기다. 그 작은 차이를 견디지 못해 이불속에 머무는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어제는 집 안에서도 발이 시려 양말을 신었다. 바닥의 차가움이 발바닥을 타고 올라온다. 예전엔 이런 정도의 냉기가 오히려 기분 좋게 느껴졌는데 이젠 그게 피곤하다. 손끝이 시리고, 물이 닿는 감각이 차갑게 남는 게 싫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결국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먼저 감지하게 되는 일인가 보다. 여름에는 더위만큼이나 식지 않는 피로를, 가을에는 추위보다 마음이 먼저 식어감을 느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요즘 자주 ‘춥다’는 말을 입에 올린다. 단순한 기온의 변화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운동을 포기한 날, 이불속에서 한참을 있었다. 적막처럼 조용한데도 세상의 소리들이 억지로 밀려왔다. 위층에서 의자 끄는 소리, 복도 끝을 지나가는 누군가의 발자국, 냉장고나 공기청정기가 간헐적으로 내뱉는 낮은 진동, 멀리서 자동차가 지나가며 남긴 소리가 벽을 타고 퍼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그 소리들이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고요와 소음의 경계에서 하루가 천천히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세상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는데 나만 잠시 멈춰 있는 듯, 그 멈춤에 평화를 느꼈다. 그날의 정적은 이상하게도 공허하지 않았다. 오히려 오래 들리지 않던 내 안의 목소리가 그 틈새로 조용히 스며들었다.

8년 넘게 살았던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돌아가기까지 이제 한 달 남짓 남았다. 주변에서는 요즘 내가 많이 바쁘고 정신없을 거라 말하지만, 사실 최근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한가했다. 대부분의 날을 집에서 혼자 조용히 보냈다. 내가 바쁠까 봐 주변 사람들이 배려를 해주었고, 나 역시 일부러 약속을 잡지 않았다. 어쩌면 이런 고요함이 지금 내게 꼭 필요한 시간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한가하고 여유롭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허둥지둥 짐을 싸며 떠나기보다는 소소한 일상을 즐기고 익숙한 것들을 천천히 마음에 담고 싶었다. 곧 다시 분주한 삶 속으로 뛰어들 테니, 지금은 이 정적마저 아껴두고 싶었다. 오히려 그 고요 속에서 많은 것을 정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며칠 전 집 앞 공원을 지나다가 코스모스를 봤다. 바람이 불 때마다 가느다란 꽃대가 크게 휘었지만 좀처럼 꺾이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줄기는 생각보다 질겼고, 얇은 꽃잎이 바람에 맞서는 모양새가 묘하게 단단했다. 내가 그 꽃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나는 무언가를 이겨내기보다는 견디는 쪽에 가깝다. 무리하게 버티지 않으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놓지도 못한다. 하루를 버티는 것이 벅차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어쩐지 끝까지 서 있어야 할 것만 같다. 코스모스의 버팀은 그런 종류의 것이다. 대단한 의지도, 특별한 사연도 없이 그저 자기 자리를 지키며 바람을 맞는 일, 나도 그렇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어오는 바람을 막지 않고 그대로 맞으며 휘지만 부러지지 않으려 애쓰는 것, 어찌 보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살아 있는 것들은 다 그렇게 하루를 넘긴다.

가을의 공기에는 묘한 냄새가 섞여 있다. 마른풀, 오래된 흙, 아직 남은 여름의 흔적 같은 냄새를 맡으면 한 해가 서서히 저물어간다는 걸 몸이 먼저 눈치챈다. 처음엔 쓸쓸하게 느껴졌지만 이젠 그 냄새를 맡으면 오히려 안심이 된다. 가을은 차가운데도 낭만이 있고, 쓸쓸한데도 아름답다. 올해의 공기가 내년의 공기와 다를 이유는 없겠지만, 나는 매년 다르게 느낀다. 어쩌면 그것은 나이가 쌓인다는 뜻이고, 그만큼 마음의 방향이 달라졌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가끔은 창문을 열고 바람을 맞는다. 그 바람이 조금 차갑게 느껴질 때면, 계절이 바뀌고 세월이 흐르고 있음을 안다. 그리고 그 바람 속엔 내 변화도 섞여 있다. 지금 내 몸이 느끼는 추위는 단순한 기온의 변화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가을은 그렇게 나를 데리고 또 한 계절을 건너간다. 해마다 비슷한 듯 다른 온도, 그 안에서 조금씩 변하는 나. 그리고 올해는 그 변화가 유난히 또렷하다. 익숙한 것들을 뒤로하고 새로운 자리로 옮겨갈 준비를 하는 지금, 나는 그 변화가 두려워할 필요 없다. 이제는 그저, 내가 견딜 수 있는 온도로 하루를 살아내면 된다.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 가장 정직한 온도일 것이다.

발행인 칼럼이베리아 반도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다 9월의 끝자락, 바르셀로나의 햇살은 아직 여름의 열기를 간직하고 있어 LA와 별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가우디의 건축물이 곡선을 그리며 하늘을 향해 꿈틀거렸고, ...
10/27/2025

발행인 칼럼
이베리아 반도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다

9월의 끝자락, 바르셀로나의 햇살은 아직 여름의 열기를 간직하고 있어 LA와 별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가우디의 건축물이 곡선을 그리며 하늘을 향해 꿈틀거렸고, 거리의 사람들은 느긋하게 가을을 맞이하고 있었다. 여행의 시작은 이 도시에서였다.

며칠 뒤 포르투의 언덕 위에서 시가지를 내려다보며 바르셀로나의 풍광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그리고 여행의 마지막 도시 리스본에 도착했을 때, 그 생각은 더욱 짙어졌다. 다른 나라, 다른 언어, 다른 문화임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는 마치 오래 함께 살아온 형제 같았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두 나라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처럼 닮아 있었다.

이베리아 반도는 유럽의 서쪽 끝, 대서양을 향해 뻗은 땅이다. 두 나라는 반도의 대부분을 나란히 차지하지만, 그 경계는 놀라울 만큼 단순하다. 그러나 그 경계 안에는 천 년의 역사와 수많은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 있다. 언어의 뿌리도 같고, 종교도 같지만, 두 나라는 언제나 서로를 다른 존재로 여겨왔다. 닮았지만 같지 않은, 가깝지만 다른, 우리에게도 익숙한 풍경이었다. 한국, 중국, 일본의 관계처럼 말이다.

포르투갈은 12세기 초, 기독교 세력이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영토를 되찾는 ‘레콩키스타’ 과정에서 일찍이 독립 왕국으로 자리 잡았다. 반면 스페인은 여러 소왕국이 15세기에 이르러서야 통일되었다. 포르투갈은 작지만 먼저 근대 국가의 형태를 갖추었고, 스페인은 거대한 제국으로 성장했다. 대륙의 중심에 거대한 제국이 있고, 그 주변에서 독립된 문명을 꽃피운 작은 나라가 존재하는 구조는 동북아시아의 역사와도 닮아 있었다.

두 나라는 함께 이슬람 세력의 지배를 겪으며 같은 위기를 공유했고, 그 위기에서 벗어나 모두 바다를 향해 나아갔다. 바스쿠 다 가마는 인도로 향하는 항로를 열었고,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에 닿았다. 그렇게 두 나라는 한 시대를 풍미한 해양 제국으로 우뚝 섰다. 1494년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통해 지구를 동서로 나누어 식민지를 분할했다. 포르투갈은 아프리카와 아시아, 그리고 브라질을 차지했고, 스페인은 아메리카 대륙 대부분을 점령했다.

흥미로운 것은 두 나라의 경쟁이 피를 부르는 전쟁이 아니라, 일종의 ‘역사적 협약’ 속에서 조율되었다는 점이다. 서로의 영향권을 존중하며 경쟁 속에서도 균형을 유지했다. 이는 동아시아 삼국의 관계와는 다르다. 한국과 중국, 일본은 오랜 세월 공존보다는 대립과 복속의 역사를 거쳐야 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관계가 ‘형제의 경쟁’이었다면, 한중일의 관계는 ‘힘의 각축’에 더 가까웠다.

16세기 후반 스페인은 잠시 포르투갈을 병합해 ‘이베리아 연합’을 이루었다. 두 나라는 약 60년 동안 한 왕 아래 있었지만, 포르투갈은 끊임없이 독립의 불씨를 지폈고 결국 다시 주권을 회복했다. 짧은 통합의 기억은 이후 “스페인은 크지만 포르투갈은 자유롭다”는 자부심으로 남았다. 리스본의 골목을 거닐다 보면 그 자부심이 아직도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스페인의 도시는 웅혼(雄渾)한 기세로 유럽 대륙을 향하고, 포르투갈의 거리는 작고 느리지만 리듬 있게 시간을 흘려보낸다.

근대에 들어 두 나라는 나란히 쇠퇴의 길을 걸었다. 한때 전 세계를 호령하던 해양 제국의 영광은 사라지고, 내전과 독재의 시대가 찾아왔다. 스페인에는 프랑코가, 포르투갈에는 살라자르가 있었다. 긴 침묵의 시기였다. 그러나 1970년대 두 나라는 거의 동시에 민주화를 이루었고, 1986년 함께 유럽연합(EU)에 가입했다. 이제 두 나라는 경쟁보다 협력으로, 대립보다 공존으로 살아간다. 언어는 다르고 정체성은 각자이지만, 경제와 문화, 외교에서는 더 이상 벽이 없다. 이베리아 반도는 유럽에서 가장 평화로운 국경을 가진 지역으로 꼽힌다.

바르셀로나의 활기찬 광장에서, 포르투의 언덕 위에서, 리스본의 대서양 바람 속에서 나는 같은 질문을 되풀이했다. “이웃이란 무엇일까.”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스페인은 유럽의 중심에서 자신을 세계와 연결하고, 포르투갈은 그 옆에서 고유한 언어와 문화를 지켜가며 세계와 이어진다. 두 나라는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다름 속에서 공통의 미래를 찾는다.

여행의 마지막 날, 리스본의 벨렝탑 앞 광장에서 대서양의 바람을 맞으며 걸었다. 항해선을 타고 저 멀리 수평선을 향해 나아가던 옛 선원들처럼 이웃과 힘을 합쳐 세계로 향하는 가능성을 떠올렸다. 여행은 단지 풍경을 보는 일이 아니다. 그 속에서 사람과 나라, 그리고 관계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일이다.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역사는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주고 있다. 가까운 이웃은 멀리 있는 친구보다 어려운 존재이지만, 그만큼 더 깊은 신뢰와 존중의 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

한중일 삼국이 서로 도와가며 미래를 함께 열어가는 관계가 형성되고, 삼국의 협조가 한반도의 평화로 이어지는 세상이 도래하기를 기원한다.

셀폰으로 본 세상아침 호수하루 종일 비가 왔다. 밤부터 하늘이 뚫렸나 싶을 정도로 무섭게 쏟아졌다. 이른 아침, 퍼붓는 비를 맞으며 공원을 걸었다. 우의를 뒤집어쓰고 걸었다. 본래 두세 바퀴 도는데 한 바퀴만 돌고 ...
10/22/2025

셀폰으로 본 세상
아침 호수

하루 종일 비가 왔다. 밤부터 하늘이 뚫렸나 싶을 정도로 무섭게 쏟아졌다. 이른 아침, 퍼붓는 비를 맞으며 공원을 걸었다. 우의를 뒤집어쓰고 걸었다. 본래 두세 바퀴 도는데 한 바퀴만 돌고 왔다.

다음날 아침, 언제 비가 왔었냐는 듯이 맑은 하늘, 맑은 호수였다. 셀폰에 담았다. 하늘도 호수도 내 마음까지.

우리 동네 걷기 좋은 곳 - White Point Park - San Pedro 지역White Point Park은 White Point Nature Preserve 안에 있으며, 약 102에이커 규모이다. 이 보전...
10/22/2025

우리 동네 걷기 좋은 곳 - White Point Park - San Pedro 지역

White Point Park은 White Point Nature Preserve 안에 있으며, 약 102에이커 규모이다. 이 보전구역은 해안 생태계를 복원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해양 전망, 역사 유적(군사 방어 구조물 등)을 함께 볼 수 있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White Point Park은 White Point Nature Preserve 안에 있으며, 약 102에이커 규모이다. 이 보전구역은 해안 생태계를 복원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해양 전망, 역사 유적(군사 방어 구조물 등)을 함께 볼 수 있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공원 안에 멋진 산책로(White Point Trail)가 있으며,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걷기를 권한다. 오르막을 먼저 오르고, 내리막을 여유 있게 걸으면서 숨 막히는 경치를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봄에는 야생화가 피어나면서 풍경이 활기찬 색으로 가득 차게 된다.

특정 구간은 경사 또는 비포장 지형이므로, 등산화 착용을 권장한다. 해가 지고 나면 출입이 제한된다. White Point Trail에는 여러 경로와 루프(loop) 코스가 있다. 자전거는 허용되지 않는다. 반려동물은 허용되나 반드시 목줄(leash)을 해야 한다. 산책로에는 그늘이 없기 때문에 자외선 차단제를 착용하고 충분한 물을 준비하기 바란다.
여러 코스 가운데 대표 코스는 약 150피트 정도의 고도 변화가 있으나 약 1.3마일의 순환 코스로, 초보자들에게도 권할 만하다. 트레일은 방문자 센터와 정원 지대에서 시작하여, 넓은 흙길, 단일 트레일, 포장된 길들이 섞여 있다. 한 지점에서는 군사 벙커 쪽으로 올라가는 단일 트레일 분기점이 있으며, 이 경로를 통해 유적 구조물을 가까이 볼 수 있다.

트레일 전체 구간에서 해안 조망이 가능하며, 산책 중 해안 경관, 야생화, 복원된 식생군락 등을 즐길 수 있다. 방문자 센터 주변에는 정원 구역이 있어 식물 전시와 교육적 안내 요소도 함께 구성되어 있다.

주소: 1801 W Paseo Del Mar, San Pedro, CA 90732 시간: 월~일 6:30 AM–8:30 PM 전화: (310)561-0917

나는야 1.5세 아줌마나의 오랜 벗보미는 내 국민학교 시절을 통틀어 가장 따뜻한 기억의 색을 가진 친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반이었지만 그땐 그저 아는 얼굴 정도였다. 진짜 친구가 된 건 6학년 성당에서 세례...
10/22/2025

나는야 1.5세 아줌마
나의 오랜 벗

보미는 내 국민학교 시절을 통틀어 가장 따뜻한 기억의 색을 가진 친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반이었지만 그땐 그저 아는 얼굴 정도였다. 진짜 친구가 된 건 6학년 성당에서 세례를 함께 받으면서부터였다. 그때의 보미는 세상 모든 빛을 조금씩 품은 사람 같았다. 명랑했지만 결코 시끄럽지 않았고 조용히 늘 주변을 밝히는 온기를 지닌 아이였다. 목소리는 부드럽고 다정했는데 이상하게 그 말을 듣다 보면 자꾸 귀를 기울이게 됐다. 이야기를 하면 사람을 몰입시키는 힘이 있었고 말끝에는 늘 다정함이 남았다.

그녀는 사람을 기억하는 법이 남달랐다. 내가 좋아한다고 말한 사소한 물건과 지나가듯 흘린 말과 그날의 표정 같은 것들을 마음속에 담았다가 한참 후에 꺼내며 웃었다. "그거 좋아했잖아. 그때 이렇게 말했잖아." 그렇게 기억으로 마음을 잇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보미를 닮고 싶었다. 다정하고 세심하고 따뜻한 사람.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 그래서 그녀가 좋은 문장을 적으면 나도 따라 적었고 편지를 쓰면 나도 편지를 썼다. 그 당시 보미가 좋아하던 파란색은 나의 색이 되었다. 왜 그랬는지는 설명할 수 없지만 그저 보미가 좋아하던 것들을 함께 좋아하고 싶었다. 그 시절 내게 닮고 싶은 마음이란 그런 거였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우리는 참 다른 사람이다. 성격도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도 다르고 세상을 대하는 온도도 취향도 다르다. 하지만 그 차이 속에도 묘하게 닮은 결이 있다. 억지로 맞춘 적 없는데도 통하는 마음이랄까... 말하지 않아도 이어지는 어떤 감각. 그 끈이 오래된 우정의 본질일지도 모르겠다. 서로의 삶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도 그 결은 항상 조용히 이어지고 있었다.

중학교 2학년 여름, 나는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렇게 멀리 떨어져 살게 되었지만 우리의 연결은 끊기지 않았다. 보미는 내 생일이면 어김없이 전화카드로 국제전화를 걸어왔다. 몇 분 안 되는 통화였지만, 그 시간은 세상의 모든 거리를 무너뜨렸다. 편지 릴레이도 끊기지 않았다. 우리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삶을 이어갔다. 우리는 각자 좋아하는 노래를 녹음한 테이프를 보냈고, 일상과 친구들, 마음에 남는 글귀들을 편지지에 꾹꾹 눌러 담아 보냈다. 그 시절의 편지엔 푸르른 싱그러움이 가득하다.

20년 넘게 타국에서 살았지만, 그 편지들 덕분에 나는 늘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다. 낯선 나라에서 서글프고 외로웠던 날들 속에서도 보미는 내 삶에 들어오는 빛 같은 존재였다. 외로움에 젖은 마음을 데워주던 사람, 내 기도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변함이 없다. 세월이 흘러도, 거리가 아무리 멀어도, 그 기도의 자리는 여전히 그녀의 이름으로 시작해 그녀의 이름으로 끝난다.

대학생이 되어 잠시 한국에 나왔을 때 우리는 다시 만났다. 전라남도 땅끝마을, 보성, 부산, 강릉, 오동도... 가고 싶은 곳은 망설임 없이 며칠씩 짬을 내어 함께 떠났다. 차도 없었지만 우리는 어디든 갔다. 버스를 타고, 시골 마을버스를 갈아타고, 때로는 동네 주민의 트럭을 얻어 타며 웃었다. 낯선 곳에서 길을 잃어도 웃음이 먼저 터졌고, 어딜 가든 “좋다”는 말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 시절의 여행은 가난했고 어설펐지만 그 어떤 럭셔리한 일정보다 풍성했다. 아마도 마음이 가벼워서였을 것이다. 지도와 스마트폰이 없어도 길은 늘 있었다. 길을 잃는 것도 여행의 일부였고, 낯선 곳에서도 우리는 금세 익숙해졌다. 보미는 그런 친구였다. 낯선 곳에서도 곁에 있으면 길이 생기고 불안이 사라지는 사람. 그때의 여행은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래 남는 장면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며칠 전 우리는 구례로 여행을 다녀왔다. 평소 꼼꼼하게 일정을 짜는 보미가 이번엔 아무 계획도 세우지 말자고 했고 나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그때 마음이 가는 대로 휴게소에 들러 간식을 사 먹고 길가의 풍경이 너무 예쁘면 잠시 차를 세웠다. 구례는 처음이었지만 관광이랍시고 여기저기 들리지 않았고 풍경을 오래 바라보고 서로의 말을 들으며 쉬었다. 우리는 연신 “좋다, 아 너무 좋다”를 되풀이했다. 그 말은 풍경을 향한 감탄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오래전 우리를 향한 인사에 가까웠다. 여행 내내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사람들처럼 푸르던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새로웠고, 별것 아닌 일에도 감탄이 터졌다. 한때는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던 우리가 있었다. 중년의 나이에 다시 그 마음으로 웃고 있는 게 이상하면서도 좋아서 참으로 행복했다. 오래 전의 우리를 잠시 빌려온 듯한 시간이었다.

돌아오는 길, 창밖으로 들판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추수를 앞둔 벼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그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며 잎들이 파도처럼 흔들렸다. 우리는 음악도 끄고 조용히 그 풍경을 바라봤다. 아무 말이 없었지만 마음은 같은 방향으로 흘렀다. 오래된 친구와의 여행은 꼭 무언가를 해야 완성되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순간으로 채워진다는 걸 이번에 다시 알았다.

나는 다음 날 사진과 영상을 정리하다가 작은 우연을 발견했다. 녹화 버튼을 모르고 눌러 찍힌 몇 초짜리 영상 속에서 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구례에 누가 가자고 했지. 아 너무 잘했다." 그 며칠이 오래오래 나를 지탱해 줄 거라고. 아마 인생의 어떤 순간은 그렇게 단순하게 남는지도 모르겠다. 이유 없이 좋았던 시간, 함께 있어서 더 따뜻했던 마음, 그리고 그 기억 하나로도 삶이 조금은 덜 외로워지는 시간.

보미와 나는 여전히 같은 하늘 아래, 서로 다른 속도로 살아가고 있다. 삶의 방향은 달라졌고, 걸음의 리듬도 달라졌지만, 이상하게도 같은 결의 마음이 남아 있다. 오래된 친구 사이에는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온도가 있어서 말하지 않아도 안다. 연락이 뜸해도 마음은 늘 제자리로 돌아온다. ‘다음엔 어디 갈까’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우리가 어딘가에서 또 함께 걷게 될 거라는 걸.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다른 길을 걸어도 결국 우리는 같은 계절을 통과한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의 세상을 오랫동안 비추며 살아간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발행인 칼럼제니퍼의 편지지난 10월 5일, 오클라호마에 사는 친구 제니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그날은 연방정부의 새 회계연도 예산안이 통과되지 못해 셧다운(정부 일시적 업무정지)이 닷새째 이어지던 날이었다. 제니퍼...
10/22/2025

발행인 칼럼
제니퍼의 편지

지난 10월 5일, 오클라호마에 사는 친구 제니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그날은 연방정부의 새 회계연도 예산안이 통과되지 못해 셧다운(정부 일시적 업무정지)이 닷새째 이어지던 날이었다. 제니퍼는 한국에서 내가 근무하던 학교의 미국인 영어 교사였고, 지금은 오클라호마에서 소셜 워커로 일하고 있다.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Hope everyone is doing well. So far still working, however if the government shutdown continues to the end of October our SNAP funds may run out until the funding resumes.”

짧지만 묵직한 문장이었다. 만약 정부 셧다운이 오래 지속된다면 SNAP 자금이 고갈될지도 모른다는 내용이었다. SNAP(Supplemental Nutrition Assistance Program)은 미국의 저소득층 가정에 식품 구입비를 지원하는 연방 복지제도다. 예전에는 ‘푸드 스탬프(Food Stamp)’로 불렸고, 1960년대 빈곤퇴치 정책의 일환으로 도입되었다. 지금은 EBT(Electronic Benefit Transfer) 카드를 통해 지원금이 지급된다. 이 카드로는 빵, 채소, 우유, 고기 같은 기본 식품을 마켓이나 식료품점에서 살 수 있지만 술, 담배와 조리된 음식은 구입할 수 없다.

즉 SNAP은 단순한 복지제도가 아니라 “굶지 않게 하는 최소한의 안전망”이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도 수천만 명의 미국인들이 SNAP 덕분에 생계를 이어갔다. 제니퍼가 언급한 SNAP fund는 바로 이 식비 보조금, 즉 연방정부가 각 주를 통해 저소득층에게 배분하는 식품 구입 지원 예산을 의미한다.

문제는 SNAP이 연방정부 예산과 직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연방정부는 매년 의회의 승인으로 예산을 확정한다. 대통령이 예산안을 제출하고, 의회가 이를 승인해야 정부 지출이 이뤄진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민주당과 공화당의 극심한 대립으로 예산안 통과가 제때 이뤄지지 못하면서 셧다운이 반복되고 있다.

셧다운이 시작되면 비필수 업무는 정지되고, 국립공원 문이 닫히고, 공공기관의 민원 창구도 멈춘다. 그 와중에 SNAP과 같은 복지 프로그램은 자금 집행이 지연되거나 제한될 위험에 놓인다. 제니퍼의 편지는 바로 이에 대한 불안을 담고 있었다.

물론, USDA(미국 농무부) 계획서에 따르면 셧다운 초기 몇 주간은 예비 자금, 또는 이전 잔액을 활용해 SNAP 지급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다. 다만 셧다운이 장기화되면 11월 이후 지급이 지연되거나 축소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 불확실성이 바로 제니퍼 같은 소셜 워커들의 가장 큰 불안 요인이다.

미국의 예산정치는 구조적으로 대립을 내포하고 있다. 공화당은 “지출 축소와 작은 정부”를, 민주당은 “복지 강화와 사회 안전망 확대”를 내세운다. 예산안이 정책이 아니라 정쟁의 도구가 되어버렸다. SNAP 같은 복지 프로그램은 그 틈바구니에서 정치적 인질이 된다.

교착을 풀 해법은 없는가? 단기적으로는 있다. 의회가 임시 지출안을 통과시키면 정부는 기존 수준의 예산을 일정 기간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도 SNAP과 같은 필수 복지 프로그램은 당장 중단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응급조치일 뿐이다. 근본적 해법은 정치 구조의 개혁에 있다. 첫째, 자동 연속예산 제도(Auto-CR)를 법제화해야 한다. 일정 기한 내에 새 예산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전년도 예산이 자동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제도다. 이 장치를 마련하면 셧다운으로 복지 서비스가 중단되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 둘째, 초당적 예산 협의체를 제도화해야 한다. 정당은 싸울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의 밥상을 협상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된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 국민의 기본 생활을 함께 지키는 협의 구조가 필요하다. 셋째, 시민의 감시와 참여가 중요하다. 언론과 유권자가 셧다운의 피해 실상을 꾸준히 알리고, 정쟁으로 국민을 불안하게 만든 정치인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정치권도 바뀔 것이다.

우리 한인 가정에도 이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 정부의 셧다운은 공공서비스, 사회보장, 이민행정, 세금환급 등 다양한 분야로 파급된다. 특히 SNAP, WIC, 의료보조(Medicaid) 같은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한인 가정도 적지 않다.

제니퍼의 편지는 단순한 개인의 걱정이 아니다. 그 속에는 오늘의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정당정치의 근본적인 모순이 들어 있다. 정치는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정당의 이해가 앞서면, 정치는 국민의 삶을 가장 먼저 희생시킨다.

SNAP의 예산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한 끼 식사이자, 아이의 점심 도시락이며, 가족이 모여 앉는 식탁의 불빛이다. 정치는 거창한 이념의 싸움이 아니라, 바로 그 식탁을 지키는 일이어야 한다. SNAP의 불안은 곧 정치에 대한 불신이다. 그 불신을 끝내는 길은 단 하나, 국민의 삶을 정치의 중심에 다시 세우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셧다운의 해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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