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7/2025
발행인 칼럼
이베리아 반도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다
9월의 끝자락, 바르셀로나의 햇살은 아직 여름의 열기를 간직하고 있어 LA와 별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가우디의 건축물이 곡선을 그리며 하늘을 향해 꿈틀거렸고, 거리의 사람들은 느긋하게 가을을 맞이하고 있었다. 여행의 시작은 이 도시에서였다.
며칠 뒤 포르투의 언덕 위에서 시가지를 내려다보며 바르셀로나의 풍광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그리고 여행의 마지막 도시 리스본에 도착했을 때, 그 생각은 더욱 짙어졌다. 다른 나라, 다른 언어, 다른 문화임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는 마치 오래 함께 살아온 형제 같았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두 나라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처럼 닮아 있었다.
이베리아 반도는 유럽의 서쪽 끝, 대서양을 향해 뻗은 땅이다. 두 나라는 반도의 대부분을 나란히 차지하지만, 그 경계는 놀라울 만큼 단순하다. 그러나 그 경계 안에는 천 년의 역사와 수많은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 있다. 언어의 뿌리도 같고, 종교도 같지만, 두 나라는 언제나 서로를 다른 존재로 여겨왔다. 닮았지만 같지 않은, 가깝지만 다른, 우리에게도 익숙한 풍경이었다. 한국, 중국, 일본의 관계처럼 말이다.
포르투갈은 12세기 초, 기독교 세력이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영토를 되찾는 ‘레콩키스타’ 과정에서 일찍이 독립 왕국으로 자리 잡았다. 반면 스페인은 여러 소왕국이 15세기에 이르러서야 통일되었다. 포르투갈은 작지만 먼저 근대 국가의 형태를 갖추었고, 스페인은 거대한 제국으로 성장했다. 대륙의 중심에 거대한 제국이 있고, 그 주변에서 독립된 문명을 꽃피운 작은 나라가 존재하는 구조는 동북아시아의 역사와도 닮아 있었다.
두 나라는 함께 이슬람 세력의 지배를 겪으며 같은 위기를 공유했고, 그 위기에서 벗어나 모두 바다를 향해 나아갔다. 바스쿠 다 가마는 인도로 향하는 항로를 열었고,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에 닿았다. 그렇게 두 나라는 한 시대를 풍미한 해양 제국으로 우뚝 섰다. 1494년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통해 지구를 동서로 나누어 식민지를 분할했다. 포르투갈은 아프리카와 아시아, 그리고 브라질을 차지했고, 스페인은 아메리카 대륙 대부분을 점령했다.
흥미로운 것은 두 나라의 경쟁이 피를 부르는 전쟁이 아니라, 일종의 ‘역사적 협약’ 속에서 조율되었다는 점이다. 서로의 영향권을 존중하며 경쟁 속에서도 균형을 유지했다. 이는 동아시아 삼국의 관계와는 다르다. 한국과 중국, 일본은 오랜 세월 공존보다는 대립과 복속의 역사를 거쳐야 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관계가 ‘형제의 경쟁’이었다면, 한중일의 관계는 ‘힘의 각축’에 더 가까웠다.
16세기 후반 스페인은 잠시 포르투갈을 병합해 ‘이베리아 연합’을 이루었다. 두 나라는 약 60년 동안 한 왕 아래 있었지만, 포르투갈은 끊임없이 독립의 불씨를 지폈고 결국 다시 주권을 회복했다. 짧은 통합의 기억은 이후 “스페인은 크지만 포르투갈은 자유롭다”는 자부심으로 남았다. 리스본의 골목을 거닐다 보면 그 자부심이 아직도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스페인의 도시는 웅혼(雄渾)한 기세로 유럽 대륙을 향하고, 포르투갈의 거리는 작고 느리지만 리듬 있게 시간을 흘려보낸다.
근대에 들어 두 나라는 나란히 쇠퇴의 길을 걸었다. 한때 전 세계를 호령하던 해양 제국의 영광은 사라지고, 내전과 독재의 시대가 찾아왔다. 스페인에는 프랑코가, 포르투갈에는 살라자르가 있었다. 긴 침묵의 시기였다. 그러나 1970년대 두 나라는 거의 동시에 민주화를 이루었고, 1986년 함께 유럽연합(EU)에 가입했다. 이제 두 나라는 경쟁보다 협력으로, 대립보다 공존으로 살아간다. 언어는 다르고 정체성은 각자이지만, 경제와 문화, 외교에서는 더 이상 벽이 없다. 이베리아 반도는 유럽에서 가장 평화로운 국경을 가진 지역으로 꼽힌다.
바르셀로나의 활기찬 광장에서, 포르투의 언덕 위에서, 리스본의 대서양 바람 속에서 나는 같은 질문을 되풀이했다. “이웃이란 무엇일까.”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스페인은 유럽의 중심에서 자신을 세계와 연결하고, 포르투갈은 그 옆에서 고유한 언어와 문화를 지켜가며 세계와 이어진다. 두 나라는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다름 속에서 공통의 미래를 찾는다.
여행의 마지막 날, 리스본의 벨렝탑 앞 광장에서 대서양의 바람을 맞으며 걸었다. 항해선을 타고 저 멀리 수평선을 향해 나아가던 옛 선원들처럼 이웃과 힘을 합쳐 세계로 향하는 가능성을 떠올렸다. 여행은 단지 풍경을 보는 일이 아니다. 그 속에서 사람과 나라, 그리고 관계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일이다.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역사는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주고 있다. 가까운 이웃은 멀리 있는 친구보다 어려운 존재이지만, 그만큼 더 깊은 신뢰와 존중의 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
한중일 삼국이 서로 도와가며 미래를 함께 열어가는 관계가 형성되고, 삼국의 협조가 한반도의 평화로 이어지는 세상이 도래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