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5/2025
발행인 칼럼
59년의 우정
서울 사는 중학교 동창생이 LA에 왔다. 우리는 머리 빡빡 깎고 검은 모자를 쓰고, 까만 교복을 입고 만났다. 벌써 59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긴 세월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걸었지만, 여전히 ‘친구’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었다. 이른 아침, 그의 도착 시간에 맞춰 LA에 사는 또 다른 친구가 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다.
서울에서 떠나기 전, 친구는 말했다. “도착하는 날, 공원에서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저녁까지 같이 보냈으면 좋겠다.” 나는 의아했다. 그냥 식당에서 모이면 더 편할 텐데 굳이 공원이어야 할까. 이유를 묻자, 그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솔직한 속내를 내비쳤다. “조금 다툼이 있었던 친구들이 있는데, 식당보다는 공원이 화해하기에 더 좋을 것 같아.” 속이 참 깊은 친구다.
사실 두 친구는 몇 해 전 사소한 오해로 등을 돌렸다. 한 친구는 아예 단체 대화방에서 나가 버렸고, 이후 모임에도 발길을 끊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서울에서 오는 친구’를 만난다고 하자 마음이 움직였는지, 불참하던 그가 모임에 나오겠다고 한 것이다. 그렇게 친구들의 모임은 묵은 매듭을 풀 기회가 되었다.
나는 이런 상황을 고려해 친구의 숙소를 준비했다. 우리 집과 공원 인근에 묵을 곳을 잡고, 다섯 명이 나눌 음식을 정성껏 챙겼다. 모임 당일, 우리들은 모처럼의 해후를 즐겼다. 불판 위에서 고기가 지글거리며 익어 가는 소리와 함께 지난 세월이 되살아났다. 흘러간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10대 소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오랫동안 서먹했던 두 친구가 마주했다. 조심스러운 눈빛 속에 희미한 그림자가 스쳐갔지만, 그들은 결국 손을 내밀었다. 어색하게 맞잡은 손끝에는 억지로 끌어낸 듯한 미소가 얹혔지만, 그 순간 나는 오랜 세월이 만들어낸 끈질긴 인연을 보았다. 완전한 화해라기보다는 “그래, 이 정도면 됐지 않겠느냐”는 묵계 같은 타협이었지만 그 자체로 소중했다.
한동안 모임에서 얼굴을 볼 수 없었던 친구는 이내 예전 모습으로 돌아왔다. 큰 소리로 웃고, 익살스러운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끌어갔다. 조금 오버스럽기도 했지만, 예전에도 그랬기에 모두가 웃어넘겼다. 오히려 그 익숙한 모습이 반가웠다. 마치 시간이 멈춰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 다시 옛날로 돌아간 듯했다.
뜻밖의 순간도 있었다. 바로 전날이 내 생일이었는데,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친구가 그것을 기억하고 케이크를 준비해 온 것이다. 나이에 맞춰 초까지 꽂아 불을 붙여 주니, 환영회는 순식간에 생일 파티로 바뀌었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내가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가슴이 뭉클했다. 세월은 흘렀어도 우정은 기억의 끈으로 이어져 있었다.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생일 노래를 큰 소리로 불렀다.
저녁이 되어 끓인 라면은 그 어떤 성찬보다 맛있었다. 냄비에서 피어오르는 김 속에 우리의 웃음과 우정이 섞여 들어갔다. 날이 어둑해질 무렵, 우리는 숙소로 자리를 옮겼다. 숙소 안에서도 웃음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소리를 줄여 보려 애썼지만, 아래층에서 천장을 치고 옆방에서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 서울에서 온 친구와 LA 친구를 숙소에 남겨 두고, 나머지 셋은 집으로 향했다. 그날의 긴 하루, 환영과 화해, 그리고 생일 축하가 뒤섞인 잔치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돌이켜보면 이날 모임은 단순한 환영 자리가 아니었다. 다툼으로 갈라졌던 관계가 다시 이어졌고, 잊힌 줄 알았던 생일이 되살아났다. 무엇보다도, 세월의 무게를 견뎌온 우정이 새삼스레 확인된 자리였다. 젊었을 때 우정이란 ‘함께 어울리는 즐거움’이었다면, 이제는 ‘다시 이어지는 마음의 끈’이 되어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는 단순해지는 듯 보이지만, 실은 더 섬세해지고 더 무겁다. 마치 물을 머금은 솜처럼, 사소한 감정조차 쉽게 흘려보내지 않는다. 젊을 때는 그저 웃고 떠들면 좋았지만, 이제는 말 한마디, 악수 한 번, 케이크 하나가 가진 의미가 더욱 크게 다가온다. 오랜 친구란 결국 나 자신을 비추는 또 다른 거울이다. 내가 걸어온 세월이 그 얼굴에 새겨져 있고, 내가 잃어버린 시간의 조각들이 그들의 목소리 속에 담겨 있다.
친구는 어떤 존재일까. 돈이나 지위, 성공 같은 것들이 삶을 치장할 수는 있어도, 세월을 건너온 벗만큼 삶을 지탱해 주는 힘은 되지 못한다. 서먹한 악수도 결국은 다시 잡은 손이고, 하루 늦은 생일 케이크도 오래된 사랑의 표현이다. 삶의 어느 순간에도 그런 작은 장면들이 모여 오늘을 버티게 한다.
한 친구의 방문으로 59년의 우정이 다시 모여 만든 화해의 순간. 그것은 그 어떤 축하연보다 값지고, 그 어떤 성취보다 오래 남는다. 언젠가 우리 모두 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이런 기억 하나쯤 가슴에 품고 간다면, 우리의 인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