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8/2025
서울 중구 충무로 갤러리 마프에서 8월 7일 《침전된 물질》전을 보았다. 이날 개막한 이 전시는 전남 신안 증도에서 레지던시에 참여하여 작업한 작가 9명의 작업을 소개하는 단체전이다.
보글맨션과 태평염전은 ‘소금같은, 예술’ 아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전남 신안 증도에서 국내외 예술가들을 위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전시 제목인 “침전된 물질”은 시간이 지나면서 천천히 쌓이는 침전물인 소금처럼, 작가들의 작업 또한 그간의 작품 활동이 축적되어 만들어진 물질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이번 전시는 레지던시가 있는 증도의 고유한 장소성과 국내외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들의 전문성이 교차하며, 감각적이고도 깊이 있는 시각적 언어들을 선보였다.
강상미 작가는 프랑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기묘한 존재들이 떠도는 세계를 탐구한다. 보이지 않는 이야기와 잊힌 기억을 불러내어, 물질성과 추상성이 어우러진 조형 언어로 작업을 구성한다. 유형과 무형의 경계를 사유하며, 인간 존재에 대한 시적 성찰을 제안한다.
김영은 작가는 소리와 듣기를 사회정치적, 역사적 산물이자 행위로 바라본다. 최근 작업에서는 소리와 듣기가 특정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어떻게 구성되고 기술적으로 발전해 왔는지, 듣기가 지식 생산과 탈식민화 과정에서 어떤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는지 탐구한다.
김은형 작가는 드로잉을 중심으로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탐구하며, 회화와 다른 매체 간의 경계 없는 결합에 주목한다. 전통 수묵화의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고정된 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실험을 이어왔으며, 최근에는 AI를 활용한 드로잉을 통해 새로운 서사의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한다.
딜리네스(Delines)는 시각 예술가 이윤이와 조재영이 결성한 아티스틱 리서치 듀오로, 변화하는 세계 속 생명과 장소의 감각을 탐구한다. 문학과 인류학, 여성적 글쓰기, 영상, 조각 등을 매개로 시각적 내러티브를 구성하며, 구체적인 장소를 일깨우는 예술의 가능성을 질문한다.
박희자 작가는 사진의 물질성과 매체로서의 특성에 주목하며, 이미지의 생성과 소멸, 그리고 기억을 기록하는 방식에 대해 지속적으로 탐구한다. 재현의 도구로서의 사진이 아닌, 시간과 감각이 축적되는 장소로서 사진을 바라본다. 사물과 이미지,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 사이의 관계를 재구성하며, 기록과 기억, 예술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사유를 시각적으로 풀어낸다.
전희경 작가는 생명력 가득한 자연을 모티브로 추상적인 회화 공간을 탐구한다. 유기적인 자연 요소에서 영감을 받아, 즉흥적이고 추상적인 필치로 화면을 구성하며 감각적 호소력이 짙은 고유의 조형 언어를 구축해 왔다.
줄리아 데이비스(Julia Davis)는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조각과 설치, 비디오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작업한다. 시간성과 지속성, 인간과 장소 간의 관계, 신체와 풍경의 상호작용에 주목한다. 특히 장소 특정적 작업을 통해 인간의 존재가 자연에 남기는 흔적과 그 반응을 작품으로 드러낸다.
마두 다스(Madhu Das)는 인도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소재와 풍경, 신체, 언어를 매개로 이주, 문화적 다양성, 개인의 정체성과 트라우마를 복합적으로 탐구한다. 공간에 스며든 기억과 이야기를 되새기며, 인류학적 접근이나 허구적 서사를 통해 주제를 풀어낸다. 이를 통해 관람자에게 이야기꾼처럼 다가가며, 개인과 공동체를 둘러싼 사회·정치적 조건을 물질성과 몸을 통해 시각화한다.
섬 마을의 염전에서 태어난 작업들이 서울 도심 속 전시장에 다시 놓이는 이 전시는, 관객에게 낯설고도 새로운 시간과 장소의 감각을 전한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침전된 시간의 밀도를 시각화한 작품들을 통해 천천히 쌓이는 것들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소금같은, 예술’ 입주작가 단체전 《침전된 물질》은 갤러리 마프(서울시 중구 서애로 33 5층)에서 9월 20일까지 열린다. 관람시간은 목, 금, 토요일 오후 1시 ~ 6시(일-수 휴무).